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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진정 좋은 선생님을 만났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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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집 형들 안녕


20대 중반 걸치고 있는 서울사는 개집러야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곳이 없어서 넋두리나 좀 해볼까 해서야


나는 살면서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신뢰 해본 적이 없었어


근데 고1 때 처음 봤어 그런 사람.




내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같던 사람


근데 그분이 오늘 돌아가셨거든


졸업을 하고  수 년이 지나도 일 년에 몇 번은 꼭 찾아가고 그랬어


명절에도 당연히 연락도 드렸고...그래서 돌아가신 소식도 동창들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들었네...


나한테는 세상 제일 존경스러운 사람인데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위인이 아녀서 위인전 같은 게 없어.


그래서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잊혀져서 가물가물할까 봐


 여기에 기록할까 해 


내가 왜 존경하게 됐는지



나는 열등감 덩어리였어.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재능에 대해서 열등감이 가득했어


합리화는 아니지만 그래서 항상 짜증이 가득했었고 그 짜증은 날 학교 밖으로 몰아가기 시작했어.


동급생, 선배 할 것 없이 시비가 붙으면 다툼이 났고 나는 항상 뻔뻔했어


내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날 항상 미친 놈이라고 그랬어 


자주 듣는 이야기니까 신경도 안 쓰였어 또 이러다가 학교도 곧 잘리겠구나 싶었고


그런 마음이 드니까 학교가 가기 싫더라고 그래서 안 갔고


근데 어느 날 집에 가니 낯익은 사람이 앉아있더라고 


담임 선생님이었어, 부모님한테 방학기간 한 달 동안 맡기라는 소리를 하고 계셨어


그렇게 나는 머리가 벗겨지고 있던 노총각 담임 선생님과 3주 동안 살게 됐어


그때 나는 처음으로 빨래,설거지,청소,분리수거를 했고 처음으로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울었어


2주를 내내 담임 선생님하고 저녁에 대화를 했고 난 항상 울었어


처음에는 왜 우는지 모르고 울었고 울다울다 나중에 알았지 나는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쩔어있다는 걸


그걸 직시하게 해주고 더 나아가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고 좋은사람이라는 걸 자각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


그 후 


난 내가 좋아하던 일에 재능이 부족해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쩔어있음을 인식하니 


더 노력하게 되더라, 그러다가 후련해졌어 그러고 그만뒀어. 


그리고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심리상담사를 목표로 살고있어.


학교도 2학기 때부터 잘 다녔고, 좋은 친구들도 만나서 즐겁게 학교를 다녔던 것 같아.


짜증도 화도 그 뒤로는 전혀 나지 않았다 해도 무방했어. 다툼도 없었고 무엇보다 사과가 쉽게 나왔어.


내 재능부족으로 공허했던 삶이 이렇게 풍족해지니 참 기쁘더라


나중에 선생님이 그러셨어


되물림이라고 비록 가고자 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너 또한 누군가에게 나처럼 해주지 않겠냐고


멋쩍은 웃음을 머금으면서 적어도 너한테 나는 이순신이고 세종대왕이 아니겠냐고




선생님이 이 글을 볼 일은 절대 없겠지만

그래도 적습니다.

감사했습니다.


5 Comments
dSa7Lefg 2018.10.19 21:35  
참교육자셨네
너 보면서 미소짓고 계실거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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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I9aJBR 2018.10.19 21:47  
나도 참되라고 이끌어주신 은사님이 계셔서
더 마음이 좋지않네
고등학교졸업한지 십년이 넘었어도
은사님 뵐때면 철없던 때로 돌아가서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한번 느끼곤 하는데
이제 글쓴이는 기억으로만 남아야해서
더 안타깝네 좋은곳으로 가셔서
또 더 좋은일을 하고계실테니 글쓴이도
기운내서 은사님 말씀하신대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본인처럼 감동할수있게
선물을 많이 남기길 바래
그럼 은사님께서도 많이 기뻐하실테니까ㅎ
이제 사회로 나갈텐데 용기 잃지말고
화이팅하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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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4dLT3Qq 2018.10.19 21:51  
나도 너 같은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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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T4BcL3 2018.10.19 22:30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항상 저런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데 언젠가 너같은 제자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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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fRmdwH 2018.10.19 22:32  
이거지.
학교에서 애들 가르치는 직업가지고 있으면서. 수없이 받았던 질문.
네가 생각하는 좋은 교사는 뭐야?
나? 난 못하는 애들 잘하게끔 만들어주는 교사. 이러면 다 웃었어 ㅋㅋ 머가 그렇게 단순하냐고.
근데 난 아직도 그래.
잘하는 애들은 어떤 선생이 맡아도 잘해.
시키는거 시키는대로 곧이 곧대로 하는 애들은 어떤 선생이 뭘 시켜도 시키는대로 할거야.
대부분 교사들이 이런애들 데리고 지도하면서 스스로 자기위안을 하지. 그런 교사한테 못하는 애들은? 걔네들은 누가 맡아도 힘들어.
난 이게 ㅈㄴ 비겁하다고 생각해. 걔네들이 능력이 없는게 아니라 그 교사가 가르칠 능력이 없는거다.
적어도 너가 기억하는 그 선생님은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좋은 선생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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