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ㄱㄹㄷㅎ]
위연은 정사에서 제갈량의 오더에 충실히 따랐고 불만이 있었던 기록도 딱히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양의가 제갈량 죽고 후계자 포지션인 양 구는걸 위연이 빡돌아서 기존의 작전 싸그리 무시하고 행동합니다. 이걸 장완이 압송해오라고 한걸 양의가 기어이 죽이고 고인모독까지 시전하며 위연네 일족 숙청까지 강행합니다.
이런 좁디좁은 심보탓에 양의는 나중에 위나라 갔으면 더 높은 직위였을 거라고 막말했다가 귀양살이를 하고,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 비방하다가 갑분싸 되니까 자결합니다.
결론은 제갈량과 위연은 노 프라블럼. 하지만 양의 vs 위연은 너무 충돌이 심했고 제갈량 사후 둘 다 비참한 최후.
방통은 말 그대로 화살에 돌연사한 것이고, 관우는 죽게 내버려둔게 아니라 제갈량이 관우를 통제할 직위도 아니었고 권한도 없었습니다. 관우는 유비가 한중왕 되고 가절월을 내리는데, 한마디로 생사여탈을 대행하는 명실상부한 유비군 내의 독립군단 책임자가 된거고 제갈량은 그때까지도 군사장군 잡호장군이었습니다. 그럼 내정 2인자는 누구였냐고요? 상서령 법정이었습니다. 3인자는 누구였냐고요? 상서 유파였습니다. 가절월을 받은 사람은 유비 혹은 다른 가절월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터치불가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법정이나 유파라도 관우를 컨트롤할 힘은 없었습니다. 하물며 제갈량이 관우를 죽게 하려고 어떻게 할 방법 자체가 없었고 법정과 유파보다도 낮은 직급인데 무슨 관우를 죽게 유도했다는 음모론인지 원..
[@ㄱㄱㄹㄷㅎ]
위연은 정사에서 제갈량의 오더에 충실히 따랐고 불만이 있었던 기록도 딱히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양의가 제갈량 죽고 후계자 포지션인 양 구는걸 위연이 빡돌아서 기존의 작전 싸그리 무시하고 행동합니다. 이걸 장완이 압송해오라고 한걸 양의가 기어이 죽이고 고인모독까지 시전하며 위연네 일족 숙청까지 강행합니다.
이런 좁디좁은 심보탓에 양의는 나중에 위나라 갔으면 더 높은 직위였을 거라고 막말했다가 귀양살이를 하고,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 비방하다가 갑분싸 되니까 자결합니다.
결론은 제갈량과 위연은 노 프라블럼. 하지만 양의 vs 위연은 너무 충돌이 심했고 제갈량 사후 둘 다 비참한 최후.
방통은 말 그대로 화살에 돌연사한 것이고, 관우는 죽게 내버려둔게 아니라 제갈량이 관우를 통제할 직위도 아니었고 권한도 없었습니다. 관우는 유비가 한중왕 되고 가절월을 내리는데, 한마디로 생사여탈을 대행하는 명실상부한 유비군 내의 독립군단 책임자가 된거고 제갈량은 그때까지도 군사장군 잡호장군이었습니다. 그럼 내정 2인자는 누구였냐고요? 상서령 법정이었습니다. 3인자는 누구였냐고요? 상서 유파였습니다. 가절월을 받은 사람은 유비 혹은 다른 가절월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터치불가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법정이나 유파라도 관우를 컨트롤할 힘은 없었습니다. 하물며 제갈량이 관우를 죽게 하려고 어떻게 할 방법 자체가 없었고 법정과 유파보다도 낮은 직급인데 무슨 관우를 죽게 유도했다는 음모론인지 원..
[@내가나다z]
내일 중으로 제갈량 포스팅 올리겠지만 제갈량이 조조에게 가지않은 이유는 자리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조조진영에 모사진이 위에 4명 뿐은 아닙니다. 조조가 승상이 되면서 승상부에 보좌관으로 기용한 인물들이 짧게는 조비 대부터 길게는 서진 초기까지 최고위 모사들이 즐비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독자들이 아는 위나라 참모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조조는 적대를 품고있으니까 안갔다 생각하고
손권쪽은 이미 주유 장소 장굉 등 임관기간 오래된 모사꾼 내정가가 많으니 거기서 비비고 살긴 힘들다 생각했을거고
유표, 유장은 조조에게 맞설 인물이 아니라 생각했을거고 나머진 생략
그러던 와중 유비가 와서 말 좀 해보니
나름 패기도있고 관장조도 믿을만한거같고, 조조 겁나 싫어하는것도 맘에들고
마침 책사, 군사도 없겠다 선복이 추천도 했겠다
이정도면 내가 비비고 조조 떄려부쉴수있겠다 해서 임관
지내다 보니 유비는 말도잘듣고 사람도 괜찮아서 모실만하긴한데
의형제인 관우장비가 영.. 말도안듣고 고집도쌘거같음.
관우도 성격이 줘같기때문에 서로 엄청 대립했을거고 결국 관우도 죽게만든건 거의 펙트
그리고 제갈량이 유표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크게 2가지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원술처럼 주제모르고 천자를 사칭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유표가 원소의 전례를 보고도 후계자를 명확히 지목하지 않고 미루던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유기가 병약했다 한들 장자승계의 중요성을 군주가 몰랐을리가 없는데도 유종이 태어나자 어영부영하고 결국 본인이 급사하면서 형주가 두쪽나는 결과를 초래하죠.
아무리 한왕조 부흥을 위해서라해도 이건 웃긴게 유비는 한왕조 유씨와 거의 관계가 없는, 있다해도 피가 희석된 너무나도 머나먼 친척급임. 사실상 관계 없다고 보면 됨. 오히려 명실한 가족/친척관계이자 한왕실에서 제일 가까운 혈연은 유엽임. 그 유엽은 조조의 책사이자 충신 중 한명이였음. 어디서 족보도 없이 카더라로 들이민 유비와는 비교가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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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좁디좁은 심보탓에 양의는 나중에 위나라 갔으면 더 높은 직위였을 거라고 막말했다가 귀양살이를 하고,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 비방하다가 갑분싸 되니까 자결합니다.
결론은 제갈량과 위연은 노 프라블럼. 하지만 양의 vs 위연은 너무 충돌이 심했고 제갈량 사후 둘 다 비참한 최후.
방통은 말 그대로 화살에 돌연사한 것이고, 관우는 죽게 내버려둔게 아니라 제갈량이 관우를 통제할 직위도 아니었고 권한도 없었습니다. 관우는 유비가 한중왕 되고 가절월을 내리는데, 한마디로 생사여탈을 대행하는 명실상부한 유비군 내의 독립군단 책임자가 된거고 제갈량은 그때까지도 군사장군 잡호장군이었습니다. 그럼 내정 2인자는 누구였냐고요? 상서령 법정이었습니다. 3인자는 누구였냐고요? 상서 유파였습니다. 가절월을 받은 사람은 유비 혹은 다른 가절월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터치불가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법정이나 유파라도 관우를 컨트롤할 힘은 없었습니다. 하물며 제갈량이 관우를 죽게 하려고 어떻게 할 방법 자체가 없었고 법정과 유파보다도 낮은 직급인데 무슨 관우를 죽게 유도했다는 음모론인지 원..
마초는 제후라서 유비군에서 막내아들 유리와 마초의 딸과 혼인시켜줄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