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한심한 인생 사는 사람 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초반입니다.
뭐라도 하지않으면 우울함에 미칠것같아서 익명의 힘을 빌려 글을 적습니다.
타인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이기때문에, 원치않으신분은 읽지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아교육과 졸업 후, 유치원교사로 일하다 한달전쯤 퇴사하고 쉬는중입니다.
지금은 틈만나면 죽을생각만 하고있어요.
유아기때는 솔직히 기억 안납니다.
그냥 좋았었어요.
엄마 아빠 가게 근처에 아쿠아리움이있어서
엄마아빠랑 아쿠아리움도 자주가고, 롯데월드도 자주 놀러갔었어요.
그땐 제가 갖고싶은건 다 갖고 하고싶은건 다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때까진 우리집이 화목한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조금 크고 어느정도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고 인지할 수 있는 나이가될쯤
제 불행은 시작됬습니다.
저희집은 가난했고, 항상 돈도, 개인공간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엄마 아빠도 항상 스트레스가 극심했을것이라 생각이 되고,
돈문제로 다투셨습니다.
그 화는 고스란히 저에게로 돌아왔어요.
중학생때 방이 없어 거실 탁자에서 동생과 이야기하며 노는데
아빠가 쌍욕을 하며 시끄럽다고 조용히하라고 윽박 지르셨고,
술먹고와서 자고 있는 나의 머리맡에있는 소파를 엎어 다칠뻔한적도 있었습니다.
새벽에 아빠를 피해 이모집으로 간적도있었고,
툭하면 리모컨, 유리잔, 맥주잔, 액자등을 던져
밖이 시끄러울때면 하나있는 방에 박혀 쥐죽은듯 있다가 조용해지면 나와보았어요.
그때마다 보인 풍경은 울고있는 엄마와 주위에 나뒹구는 리모컨, 깨진 술병, 유리잔이었습니다.
기분이 나쁜 날에는
거실로 불러 소파를 잡고 엎드리게한다음
마당에있는 플라스틱 식물 지지대를 뽑아와 엉덩이를 때리거나,
쇠덩어리, 파리채, 대나무 옥수수봉(옛날에는 대나무같은 나무에 옥수수 다먹고 말린걸 꽂아놓는 것이있었어요.)
등으로 손바닥, 허벅지를 훈육을 가장해 때리셨어요.
유치원생때는 구구단을 못외웠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때리셨구요.
어린나이에 아빠가 경찰한테 끌려가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왜 끌고갔는지는 모르겠어요.
공부하고있으면, 리모컨을 던지면서 소리지르거나 비아냥대는건 흔한 일상이었고,
중학생땐 빵을 너무 좋아해서 살이 동실동실하게 쪘었어요. 154 55정도
그래서 항상 아빠가 저를 못마땅해하셨어요.
외모, 살로인해 욕도 많이하셨구요.
밥상을 차리고있는데, 주전자로 물을 따르고있으니
아빠가 젓가락을 들더니 제 눈앞에 왔다갔다하며
"확 눈깔을 찔러버릴까"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웃으셨습니다.
너무 오래전일이라 정확한 말은 기억안나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충격이어서 머리속에 흐릿흐릿하게 맴돌아요.
그래도 어릴땐 사랑인줄 알았어요.
엄마아빠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못나서 그런거고.
중학생땐 일주일에 삼천원 ~ 오천원정도 받았던것 같아요.
주기적으론 아니고 가끔
어차피 버스비나 가끔 친구들이랑 먹을거 먹고
증명사진찍어야하거나 학교에서 필요한건 사주셨기때문에
크게 불편한건 없었어요.
그래서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서 제 속옷서랍에 넣어놨는데
(추석이나 설날에 받은 용돈 다 포함)
100만원정도 모였을때 부터
돈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현장엔 항상 아빠가 계셨구요.
하루는 위치를 바꿔 아무도 열어본적없는 옷장 깊숙히 지갑을 숨겨놨고
비웃듯이 그날 저녁 돈이 사라졌습니다.
엄마는 너가 착각한거아니냐고 몰아가면서도
아빠한테 연락을 해서 물어보았고
아빠가 낮에 집에왔는데 그 옷장 깊숙한곳에 지갑이 있는것만 봤다며
돈은 안가지고가셨답니다.
오빠는 너가 돈써놓고 우기냐고 쌍욕하며 정신병자 취급했구요.
지금생각하면
아빠가 내 지갑이 내 속옷서랍 깊숙히 있었던것,
지갑이 아무도 열어본적없는 옷장 깊숙히 있었던것을 알았던사실.
왜 잠깐 낮에 아무도없는 집에 들러
하필 그 옷장을 열어 깊숙히 있던 지갑을 보았는지
모든게 의문 투성이지만
그땐 너무 어렸고, 심증만 있었기때문에 그냥 넘어갔어요.
그래도 중학생때까진 괜찮았습니다.
아직 어려서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금방 회복되었어요.
중학생때 아빠한테 들은 외모관련된 아픈 말들때문에
독하게 다이어트해서 10kg를 뺐어요.
그렇게 고등학생이 됬습니다.
고등학생때부터 용돈이 점점 끊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도 솔직히 교복입고 다니고 주말엔 잘 안나갔기때문에 용돈은 크게 필요하지않았어요.
고등학교 3학년때쯤인가
흔히 만튀라고 불리는 성폭행이라고 말해야하나요ㅜㅜ 그걸 당했습니다.
여름이었는데, 학교가는길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달려와 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그때 남자와 여자의 힘차이를 처음 느껴봤어요.
항상 영화보면서 입이 막히면 아무말도못하는 주인공 보면서 답답해했는데
막상 제가 당해보니 정말 읍읍 소리도 안나왔습니다.
공포때문이 아니라 입이 틀어막히면 소리가 안나온다는걸 처음 알았어요.
한손으로 제 입을 막고
손이 점점 치마속으로 들어오는데
속바지 덕분에 쉽게 원하는것을 못해서 그랬는지
너무 무서워서 몸을 뒤트니 금방 손을 놓고 달아났어요.
급하게 몸을 돌렸는데 뒷모습만 보였습니다.
깡마른 남자였어요.
그후로 6년이 넘는 시간이지난 지금도
검은 옷을 입은 남자만 보면
저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랍니다.
너무 손이떨려서 그날 휴대폰을 놓치고 아무렇지않은척 다시 주워 학교에 가려는데
몇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남자 두명이 담배를 피며 제쪽을 보고있는 시선이 느껴졌어요.
아무렇지않은척 지나가는데 따라오는 시선이 느껴졌고, 눈도 마주쳤습니다.
조금 도와주지 라는 생각과 함께 얼굴에 생생한 손자국, 손의 촉감때문에
너무무서웠는데
어릴때부터 뭐든지 제 감정을 드러내면 더 상황만 악화될뿐이었으니까
정말 아무렇지않게 생활했는데
한번씩 그 트라우마가 생생히 떠오릅니다.
아빠가 가끔 야자끝나면(10:30 - 11:30쯤) 차로 데리러오셨어요.
아빠랑 한 공간에 있는게 너무 숨막혀서
괜찮다고 친구랑 가면된다고 거절했는데
그게 기분이 나쁘셨었나봐요.
차를 타고 집에가는 20분가량동안
저는 뒷자리에앉아 고개만 숙이고 아무렇지않은척
아빠의 언어폭력과 쌍욕을 감내해야했습니다.
대학생이되어서도 책값 제외하면 아무것도 지원해주지 않았기때문에
친구들이 밥을 먹으러 가자하면 항상 배아프다하거나 어디가 아프다며 혼자 책상에 엎드려있었고,
제 사정을 아는 친구 몇명은 음식을 싸와서 저랑 같이 먹어주었었어요.
너무 배고픈날엔 엄마 아빠한테 이야기해서 몇백원 받아 자판기 종이컵 커피나 우유만 꺼내마셨었습니다.
대학생때 성적으로 인해 4년내내 장학금을 받아
책값외에 대학에 든 비용은 한푼도 없었어요.
해도 MT비용정도.
항상 매 학기마다 150만원씩 생활비 대출을 받게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집 상황은 나아지지않았고요.
나중에 알게된건 그 생활비 대출로 받은 돈
아빠 빚을 갚고 유흥비에 사용됬다는것을 알았을때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나중엔 교외근로를 하여
90만원정도 벌었었어요.
그게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제 힘으로 번 돈이었어요.
그래서 제 나름 계획을 세웠습니다.
30만원은 학교 졸업때까지 사용하려고 빼놨고
나머지 60만원으로는 옷도사입고
엄마 건강검진도 해드리고
아빠가 항상 안경 다리부분이 부러져 그 부분을 박스테이프로 돌돌 말고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워
안경도 바꿔드리려했습니다.
(아빠가 눈이 안좋으세요. 일반적인 시력저하라기보다 노안이랑 복합적인것같아요.
그래서 안경을 맞추려면 20~30정도 든다고 그래서 돈이 부담돼 못맞추고있다고 들었어요.)
주말에 가서 서프라이즈로 맞춰드리려했는데
전전날밤이었나
갑자기 저를 부르셨어요.
대뜸 저한테 엄마 카드값 오늘까지 매꿔야한다.
다음달 1일에 줄테니 지금 너가 대신 내라. 라고 하셨어요.
알고보니 제가 근로한 날짜를 세어가며 제가 가지고있는 돈이 얼마정도있는지 계산한후
말씀하신거였어요.
제가 싫다하니 당장 매꾸지않으면 엄마 카드 다 막히고 못산다느니 어쩌니
그당시 어린 제가 듣기엔 무서운 말들을 쏟아내셨고,
결국 저는 제가 번 첫돈을 모조리 드렸습니다.
당연히 돈은 못받았고,
제가 방에 들어가자 엄마 아빠가 싸우셨어요.
엄마가 ㅇㅇ이가 당신 안경 맞춰주려고했다고 말하자
아빠가 또 욕을 하시면서 쌍년이 뭐가 중요한지를 모른다느니
온갖 상처되는 말들을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제일 듣기 힘든건
언어 폭력과 함께 이루어진 헛웃음 같은 비웃음 소리였어요.
나중에야 알게된거지만,
항상 비아냥거리며 욕설을 내뱉고 저에대한 안좋은 말들을 쏟아내실때 저는 저희집이
작고 방음이안돼 들리는 줄 알았는데
일부러 저 들으라고 말씀하신거였어요.
엄마한테 아빠가
쟤 들으라고 일부러 더 이렇게 말하는거라고
지도 듣고 상황이 어떤지 알아야 느낀다면서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수능날에도 5만원이 없어서 수능을 못칠뻔했고
첫 취업(교수님 추천)했을때도 이력서에 넣을 증명사진 찍을 돈 만원이 없어서
결국 친구들한테 사정을 이야기하고 돈을 받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거지만
저에겐 돈이 없다며 만원도 주지 않으셨던 엄마가
뒤에서 오빠 친구들과 놀때 사용하는 밥값, 옷값 문제집값, 토익신청값등을 지원해주었다는것도
알게됬어요.
배신감이 컸지만, 그래도 엄마를 사랑하니까 이해했습니다.
그럴만한 사정이있겟지.
엄마도 중간에 끼어서 많이 힘들겠지 하구요.
집안일도 제가 다 했습니다.
오빠나 동생한테 시키라하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어요.
오빠랑 동생은 할줄 모르잖아.
저도 살기위해 한건데
빨래 돌리는게 뭐가 그리힘들다고
세탁물 넣고 세제 넣고 섬유유연제넣고
버튼만 누르면되거든요.
깨끗하게 정리해놓으면
칭찬 한마디 없으셨어요.
속상함을 토로하면 그제서야 안다면서
너무깨끗하다고 한마디하셨고,
그때마다 오빠는 항상 자기가 다한다며
니가 한게 뭐가있냐그러고.
엄마도 오빠는 진짜 일년에 한두번 엄마 아빠 있을때만 설거지 몇번하는거빼면
손하나 까딱안합니다.
그거 알면서도 오빠편을 들어줘요.
오빠가 장남이고 아빠없으면 집안에 가장이니까
니가 이해하라고
뭘 이해하라는건지 아직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너무너무 힘들어서
집안일을 안하고 그냥 자는척 해버렸는데
거실에서 말소리가 들렸어요.
부모 고생하는줄도 모르고 철없는년이라느니
10분정도 이어진 대화는 모두 저를 향상 욕설이었고,
엄마도 "그러게 말이다고, 지도 크면 깨닫는게 있을거다"하며
아빠 편을 들었어요.
지금까지 내가 다했는데
고등학생나이에 집안일 하루 안한게 그렇게 쌍욕들어야하는 일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고등학생때 너무 힘들어서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려고했는데
고등학생땐 부모님 동의서가 필요해요.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더니
그런생각 하지도말라하며 저를 한심한애 보듯 보며 지 할일도 잘 못하면서 뭘하겠다고 비웃으셨고,
오빠는 옆에서 니가 전교 1등 하고 말하라고 지앞가림도 못하면서 뭘하겠다고 그러냐고
쌍욕을 했습니다.
(그때 3~4등급이었어요.)
변명이지만,
항상 듣는 욕설에 이골이났었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이 피폐해졌었나봐요.
어느순간 가끔 삐 하는 이명도 들렸었어요.
항상 엄마 아빠가 만나면 싸우셨기때문에
공부할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오빠는 있었지만, 저는 저만의 개인공간이없었어요.
고등학생때부터 이어진 돈요구는 아직까지도 진행중이고,
가끔 술마시고 새벽에와서 제 이름을 몇번이고 목청껏 크게 불러서 가면
항상 돈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마시러 거실에갔다가 대뜸 저한테
만원만 줘봐라
라고 "부탁"이 아닌 "명령"으로 당당히 말하는거 듣고
진짜 왜살까 싶었어요.
아빠말고 저요.
엄마도 그 소리듣고 어이가없었는데 시끄러워질까봐 아무말도 안했다고 나중에야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돈이 너무 필요해서 게임을 시작했어요.
게임해서 번 아이템을 파니
꽤 쏠쏠한 용돈이 생겼습니다.
그 돈으로 조금씩 생활하기 시작하니
제 돈이 눈에 들어왔나봐요.
엄마한테
자식 돈은 부모가 관리하는거라면서
저의 돈을 다 가지고오라는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정작 부모님한테 가면 불리거나
원금을 돌려받기는 커녕
아빠 유흥비에 다 나갈것을 알기에
거절하고 안줬습니다.
당연히 쌍욕에 부모도 모르고 저만 아는 폐륜아 됬구요.
성인이 되고 취업해서 1년동안 번돈으로 천만원 정도되는 빚(생활비대출)을 갚고
(엄마가 저한테 대출을 받으라고했을때 나중에 갚아주신다하셨지만, 결국 1원 한푼 안주셨습니다.)
200만원 정도 저희 가족 먹을 식료품을 사고
530만원 정도 교정+충치치료
(지금까지 살면서 7살쯤 한 번, 중학생때 한번 충치치료 받은것 제외하고 한번도 치과치료를 못받아봤습니다. 당연히 돈때문에요)
를 하고나니 남는 돈이 많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 건강과
제가 오랫동안 앓고있는 가려움증(겉보기엔 이상이없는데 샤워를 하거나 가끔씩 몸이 미친듯이 간지러워 발작을 일으킬때도있습니다.)
때문에
샤워기 필터, 100%편백잎원액, 침구청소기 등을 사고
집에 먹을것이 없으면 먹을 것도 사다 채워놓으니
정말 제가 언제든 돈나오는 구멍으로 보이셨나봅니다.
거실에서 밥먹을 준비를 하는데
아빠가 저를 한 번 보더니 엄마한테 돈얘기를 하셨고,
당당하게
"괜찮아 ㅇㅇ이가 알아서 해결해주겠지"
하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공과금이나 티비요금같은 것을 못내면
이제는 당당하게
"ㅇㅇ이한테 내라고 그래"하고 이야기하십니다.
아빠는 화장실에서 항상 담배를 피세요,
피지말라하면 더피십니다.
하루는 기분좋게 아빠와 영화를 보고 양치하러 가려하니
아빠가 저를 불러세우며 화장실이 급하다하였고,
저는 양치를 입에 문채 아빠에게 양보해주었습니다.
30분이되도록 나오지않아 조금 이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양치고있는 딸을 불러 밖으로 내보내놓고
담배를 피셨던것입니다.
새벽에 술을 먹고와서 술기운은 핑계고 가족들을 괴롭히고
저의 이름을 새벽에 큰소리로 부릅니다.
결국 동생이 나갔더니
하시는 말씀이 너무 가관입니다.
잘들으라고
나는 앞으로도 너희가 싫어하는 행동만 할거라고
이때 내가 아무리 너희가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해도
와야지 너희한테 뭔가를 해줄거라고
당연히 아빠 돈한푼 없습니다.
돈이있더라도
저는 아빠가 그돈으로 혼자 제가 마음이 약해지지않게 잘먹고 잘살길 바라지
저한테 나눠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도없고
받고싶은 생각도없습니다.
돈이뭐라고 돈으로 저를 협박해 마음대로 움직이려하는 모습이
진짜 아빠가 맞나 싶습니다.
돈을 요구한적도 없어요.
배고픔에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으려 200-300원 요구했고,
수능날, 증명사진찍고싶어서 5만원 1만원 요구한게다입니다.
그마저도 못받아서 친구에게 손벌렸구요.
그런데 꼭 제가 돈에 미친사람 처럼 이야기합니다.
항상 뭔가를 시킬때도 니가 잘하면 너한테 다 해줄거라면서
정작 해준거없습니다.
해준거 쌍욕밖에없습니다.
유치원에서 너무 힘이들었어요.
1년 넘는 시간동안 잠도못자면서 일했고,
주말에도 아침에일어나 새벽까지 거짓말 안하고 안쉬고 일만했습니다.
저는 제가 미숙한줄 알았는데
퇴사할때쯤 저혼자 6인분의 일을 다 떠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항상 새벽 5시30분에 나가서 40:30 - 6시쯤
늦는날엔 10시쯤 집에 오니
당연히 몸이 축나지않고 못배긴거죠.
엄마아빠한테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니
처음엔 니가 일이 미숙해서 그런다
이게 사회생활이다
니 생각처럼 편한줄 알았냐
참고해라 다 참고 일한다
니가 잘하지 그랬냐
라고 말하였고,
오빠도 그 말을 들으면서
닥치라고 니만 힘드냐고
니가 잘 못하니까 그 선생님들도 그런거 아니냐고
지가 사회생활 개같이해놓고 시끄럽게 쫑알거냐고
그러더라구요.
아빠도 지가 못해놓고 그런다며 비아냥 거리셨구요.
선생님들과는 잘 지냈습니다.
다만 선생님들이 다들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고, 공통점들이 있으셔서
다들 일을 봐주었고,
그 일들은 고스란히 저한테 왔던것 뿐입니다.
다들 알면서 자신한테 일이넘어올까 쉬쉬했던거구요.
제 눈에는 너무 예쁜 아이들이었지만, 조리사선생님까지 혀를 내두를정도로
힘든 아이들을 저희반에 몰아넣으시고는
모른척했습니다.
결국 저는 일하던 도중 기억을 잃고
스트레스로 인해 토하는건 일상이었어요.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은 공적인 일이라 자세히 말하기 힘들지만,
너무 힘들어서 결국 아이들 모두 졸업시키고
퇴사하였습니다.
퇴사하고 한달 정도는 스트레스로 악몽을 꾸고
식은땀도 나고
속이 너무 울렁거려
가만히 앉아있어도 머리에서 삐소리가나고
토할것처럼 명치부분이 아팠어요.
지금은 조금 회복됬나 싶었는데,
죽고싶습니다.
고등학생때부터 삶의 의미가없었어요.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인생이 너무 허무했어요.
그래도 부모님의 보이지도 않은 사랑만을 믿으며 악착같이 살아왔는데
이번에 견디다못해 엄마한테 따로 나가 살자했습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아빠를 두둔하더라구요.
아빠가 너한테 한건 그때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거라고
니도 잊을건 잊으라고
나도 잊고싶은데
유아기부터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은 쉽게 잊혀지지도않고
잊을수도없어요.
이젠 아빠 얼굴 목소리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리고 토가 나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가 로또라도 당첨돼서
제가 마음이 불편하지않게
저없이도 행복하게 살수있게
돈이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이제와서 번돈으로
어디 반지하 가면 보증금하고 월세 겨우내며 살수있겠지만
모아지는 돈은 없을겁니다.
보고배운게 유치원일인데 유치원 보수가 경력이 쌓여도 생각보다 많지가않아요.
1년동안 엄마아빠가쓴 빚갚고
교정, 치과치료하고
엄마 산부인과 비용내주고, 약사드리고
엄마 설날에 아빠한테 치이며 고생하는게 안타까워(당연히 저도 도와드립니다.)
용돈 30정도 드리고 이것저것하니
천만원밖에 안남았습니다.
돈은 또 모으면 되지만
지금 독립한다해도
남은 부모님이 너무 걱정이에요.
아빠가 술만 마시고 오면 엄마한테 항상 건강으로 협박했어요.
있지도않은 시한부 행세하며
1월달까지만 산다더라
돈얼마 줘라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
그때까지 하고싶은거 다하면서 살고싶다며
대출까지 권했습니다.
65세이상인가 노인들한텐 뭐가 공짜인가봐요.
그거 타먹겠다고 새벽에 민증가지고 엄마를 힘들게했어요.
결국 엄마가 말려서 안하고 그냥 잤는데
그게 진짜 하려고한게아니라
그냥 그 상황을 즐기는것 같습니다.
엄마가 매달리고 쩔쩔매는 그 모습을요.
지금까지 제 증상은 그렇게 심하지않았어요.
그냥 삶에 의욕도 의지도 없는정도
제 할일 하면서 잘 살았고,
주변에서도 일잘하고 성실하다고
무슨일이 생겨도 너는 그럴애가 아니라며 두둔해주었습니다.
원장님도 저한테만 일이 많이 넘어온게 미안하셨는지
가끔 저 퇴근할때 버선발로 뛰어나와
오늘 고생했다고 많이힘들면 꼭 이야기하라며 배웅해주시는 날도 많았구요.
제가 맡은일에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가족들이 어지른것도,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기, 양말, 휴지, 쓴 면봉같은것도 그냥 바닥이나 티비다이등에 던져놔도,
다음날 제가 다 치웠습니다.
그러니까 더 당당하게 어지르더라구요.
동생한테 같이 청소하자고 말하니
"청소는 언니가 하는 일이잖아"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
할말을 잃은적도 있습니다.
아직도 그 표정은 못잊어요.
처음엔 그냥 생각만했었는데,
최근들어 설거지하다 손목에 칼을 대어보기도하고
매듭을 묶어 목에 걸어보기도하고
혼자 자려고 누워 두손으로 목을 졸라본적도 있습니다.
근데 제 인생처럼 성격도 찌질한가봐요
무서워서 못죽겠더라구요.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텍스트로 담기엔, 말로 다 풀기엔 너무 많고 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고 비참해
머리속에 파노라마? 영화 필름처럼
그냥 슥슥 스치듯 떠오르는것만 적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렇지않게 행동했고,
평범하게 살아왔으니까
티를 내면안돼고,
티를 내어도 한심한년 취급받았으니까
이젠 힘이든다고 티를 내는것도 무서워요.
너무 힘들때는 혼자 호텔방을 잡아 하루종일 울어도 보았어요.
그 다음날 와서는 아빠가 물어보더라구요. 왜 나갔냐고
걱정보다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것같았어요.
그래서 홧김에
아빠때문에 나갔다고. 아빠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나갔다고 눈도 안마주치고 말했어요.
눈마주치면 울것같아서
그랬더니 거실에 나가서
시발년 미친년같은 욕설을 내뱉으며 키워준 은혜도 모른다느니 인생 헛살았다느니
저 들으라는 식으로 필터도 안거치고 막말을 내뱉었어요.
다른건 다 참아도
어릴적 저희를 벽에 붙여놓고
저희 앞에서 이혼하면 누구랑 살거냐고 재촉하며 대답을 들었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글을 쓴 목적도
그냥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화를 내거나 힘들어하는 티를 내면
니가 뭐한게있다고 힘드냐며 저를 정신병자 취급 했기때문에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는것도 너무 큰 용기가 필요해요.
청소년 상담 센터에 가도
결국은 똑같더라구요.
처음엔 교과서적인 말만 하더니
나중에는 너도 뭔가 잘못한거아니냐 부모님이 괜히 그러진 않을거 아니냐고.
병원에가도 솔직히 모르겠어요.
해봐야 약만 받아올것같아요.
어딘가 글을 쓰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것같아요.
저는 비록 아기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물주(엄마가 저한테 직접적으로 했던말입니다),지갑취급 당하며
쌍욕듣고 집안일이나 해주며 살고있지만
혹여 여기에 아이를 키우시는, 아이를 계획중이신 분들이 있으시면
아이앞에선 싸우지 말아주세요.
며칠전 산책할때 엄마에게 들었던 "아빠가 그당시에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거다. 너도 잊을건 잊어라"라는 말을 듣고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그래도 부모님, 가족뿐이라고 여겼던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더라구요.
결국 저는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일것같습니다.
가족들한테 받은 아픔과 상처때문에
사람을 오래 깊이 알아가고 사귀는것도 쉽지않아요.
그 사람과 친밀해지면 자연스럽게 의지하고 기대하게될까봐
무섭습니다.
저도 제가 뭐라고 쓴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익명의 힘을 빌려서라도 누군가한테 도움을 받고싶었나봐요.
글을 쓰는데 조금 마음이 편해지네요.
어디서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 제 약점이 됬으니까요.
도와주세요.
저도 살고싶어요.
그냥 그동안 너무 수고많았다고.
한마디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Best Comment
친오빠와 오빠 친구가 도움을 주어(그당시엔 오빠도 어렸었습니다.) 겨우 그 오빠를 쫒아냈는데,
아직도 그 눈빛과 말투는 잊을 수 없어요.
어릴때부터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적은 없지만, 수많은 성폭행과 성희롱에 노출되었고, 폭력과 폭력적인 말에 노출되다보니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댓글에 연애를 권해주셨는데, 남자친구도 사귀어봤어요.
어릴적 트라우마로 인해 타인의 체온이 필요했고, 애정결핍도 있는것같아요. 저도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스킨쉽은 좋아하지만, 직접적인 관계, 성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너무 무서워 결국 성관계없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남자친구도 몇번 바람을 폈습니다.
처음 사귈때는 저의 착하고 정많은 성격을 좋아한다던 남자친구들도 나중에는 결국 호의를 당연시여겼고, 따분하게 느꼈어요. 이용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사람을 사귀는 일이 조심스러워졌어요.
저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음 하는 마음으로, 적어도 제가 맡은 반 아이들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이 되길 바래서 초2때부터 유치원 교사의 꿈을 준비하였고, 꿈을 이뤘습니다.
첫만남에 아이들이 저의 손을 잡고 엄마라고 부르며 좋아해주던 모습, 졸업식날 이제 만나지 못한다는것을 알았을때 갑작스럽게 "왜?"라고 물으며 저를 꼭 껴안아주던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퇴사하고도 아이들이 너무 좋고 보고싶지만, 무의식중에 제 우울한 감정이 타인의 감정에 민감한 아이들에게 전달될까 두려워 유아교육에선 잠시 손을 떼고, 현재는 좋아하는 영어 회화공부를 하며 조금이나마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있으며, 다른일을 배워 직업으로 삼으려고 알아보고있습니다.
저도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직이기때문에, 솔직히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댓글 읽으며 많이 울었어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제가 힘든 상황을 이야기했을때 욕설이아닌 말을 들어봐서요.
울고나니까 죽고싶다는 생각이 안드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마음이 가라앉네요.
언제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버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책도 자주 나가고, 달리기, 자전거타기, 홈트와 같은 운동도 합니다. 축제같은곳에 가면 즐겁고, 사람을 만나면 즐겁게 놀기도해요.
그럼에도 죽고싶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아침마다 뉴스를 봐요. 학교다닐땐 tv로 6시뉴스를 많이봤는데 직장 다니면서 6시 이전에 출근하기때문에 할일 다 끝내놓고 쉬는 시간에 인터넷 뉴스를 봐요. 자살이야기 나올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보다 '저 사람은 성공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저를 보면 진짜 미쳤구나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모습이 아닌 안좋은 모습도 보여보고, 어린애처럼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속상한 말도 해보고싶었어요.
안좋은말 많이 나올줄 알았는데, 위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