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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 겨울만 되면 생각나는 첫사랑 얘기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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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쌀쌀함을 느낄 때 마다 10년전 첫사랑이 생각난다


17세 이었을 때 일이었어 


우리 집 형편이 많이 좋지 못해서 나는 중학교 까지만 졸업하고 아버지 식당 일을 도와드리며 검정고시를 준비했어


그러다 이모부께서 서울에 있는 공장에 일자리를 내어줄테니 가족 다 같이 상경을 권했고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됐지


태어날 때 부터 쭉 살았던 동네를 벗어나 처음으로 서울이라는 큰 도시를 밟아서인지


촌에 살았던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하루 하루가 설레였어

아버지는 바로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셨고 나는 마냥 집에서 검정고시만 준비할 수는 없는 가정형편이었기 때문에


근처 조그만한 분식집에서 일을 시작했어
 

근데 분식집일을 시작하면서 우울함이 생기더라고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어서 수업끝난 학생들이 분식집에 많이 왔는데


나도 만약 학교를 다녔다면 멋있는 교복입고 친구들과 분식집도 갔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싫기도 했어


그렇게 서울에 올라왔다는 그런 설렘도 사라지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을 때 한 여학생이 눈에 계속 띄더라고


근처 고등학교를 다니는 여학생이었고 항상 떡볶이 2천원치를 사갔어


단발머리에 항상 이어폰을 끼고 다녔던 그 아이


그 아이를 보는 것이 나도 모르게 하루의 일상에서 유일한 낙이 되어버렸어


하교시간이 될 때면 밖을 계속 보며 그 아이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여자라고는 만나지도 눈도 못마주쳤던 나는 그 아이가 오면 해줄 수 있는 것은


떡볶이를 좀 더 많이 주는 것 뿐이었어 그래도 좋았어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것에..


그러던 어느날 여전히 그 아이는 떡볶이 2천원치를 사가는데 

그 아이가 말 하더라고

"항상 많이 주셔서 감사해요"

"이거 사탕드세요"라며 캔디사탕을 줬어


그때 그 말과 함께 사탕을 받는데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고


캔티사탕을 받을 때 그 아이의 손이 얼마나 작았고 이뻣는지 아직도 생생해


지금까지 그 아이와 나의 대화는


"떡볶이 2천원치 주세요"와 "네" 이 두 가지가 끝이었거든


그 일이 있고 나는 정말 내 생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꼈고 너무나 행복했었어


그 모습을 본 분식집 아주머니가 "너 쟤 좋아하지?"라며 묻더라고

나는 극구 아니라고 했지만 다 티가 났나봐


그 일이 이후로 그 아이는 내게 떡볶이를 사갈때마다 캔디사탕을 줬었고


아주머니는 자기한테는 안준다며 쟤도 너 좋아하나보다 라며 놀렸었어 


그래도 나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고 그 캔디사탕을 방에 있는 프링글스통에 담아 뒀었어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분식집 앞을 지나가는데 분식집 아주머니가 그 아이를 보고

"떡볶이 그냥 줄테니깐 들어와서 먹고가" 라고 했어


그 아이는 처음에는 아무말 없이 손사래를 하더라고

하지만 아주머니가 계속 그러니깐 결국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고


아주머니는 떡볶이랑 튀김을 그 아이에게 주시면서 "혼자 먹으면 심심하니깐 얘랑 같이 먹어"라고 했어

난 아주머니한테 끌려 그 아이 맞은편에 앉았어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고 머리도 띵하더라고...


그렇게 서로 떡볶이를 먹다가 뭐라도 말을 해야겠다 싶어 나는


"몇학년이에요?"라고 물었지 


"1학년이요" 그 아이는 답했어


나랑 동갑이었다는 사실에 왜 기쁜지는 모르겠지만 기쁘더라고


그리고 나서 "저도 17살이에요" 라고 말을 했지만


그 아이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인지 잘 못알아 듣더라고


나는 그 아이가 나한테 크게 관심이 없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 떡볶이 먹고 있었던 여자학생 애들 중 한 명이 

"쟤 청각장애인이라서 소리 잘 못들어요"라고 나한테 말하더라고


충격이었어...


근데 그 아이가 내 표정을 보더니 밖으로 뛰쳐 나가버렸고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그냥 앉아 있었어...


단순히 저 아이가 청각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저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어


사과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나는 분식집 일을 그만두고 공장에 들어갔어


원래는 더 일찍 들어갔어야 했는데 나는 그 아이때문에 분식집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어서 남아 있었거든


이제는 남아 있어야할 이유가 없어져 버려서 공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을 시작했어


오전 07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30분까지 공장에서 일을 하다 집에 와서 검정고시 준비가 내 하루였어


가끔 출 퇴근 하다 근처 고등학교 교복입는 애들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났어 많이 보고 싶었고


그럴 때마다 프링글스통에서 그 아이가 준 캔디사탕을 꺼내서 먹었었어


그러다 초 겨울쯤이었을 거야 퇴근을 하고 오랜만에 전에 일했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가려고 하는데


분식집 앞에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 보이는거야


단발머리에 이어폰을 낀 여자아이


순간적으로 그 아이인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난 몸이 굳어버렸어....


여러가지 생각이 겹치더라고


너무나 보고싶었던 아이인데 나 때문에 지금까지 분식집을 안왔을 거라는 생각에 미안하고


나 때문에 상쳐받았던 저번 일 때문에 미안했지만 막상 가서 사과를 하기에는 용기가 안나더라고


그래서 그냥 지켜보고 있었어 그 아이가 갈 때까지


그 아이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가고 있을 때쯤 나는 분식집으로 가서 떡볶이를 사는데


분식집 아주머니가 아까 그 여자아이가 떡볶이 사갔다고 말씀하셨어


나는 그냥 모른척 무심하게 대답만 했어


그러다 아주머니가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가서 얼굴이라도 봐라"라고 말씀하셨어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어


그런데 집에 와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가슴이 찡하면서 눈물이 계쏙 나더라고..


그렇게 그날 잠을 청하려는데 아주머니 말씀이 생각났어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가서 얼굴이라도 봐라"


후회되더라고 고작 몇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이렇게 몇 달이 흐르면 더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번만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믿지도 않는 신이라는 신들에게 다 빌었었어..


그 다음 날에 혹시나 해서 퇴근하고 분식집을 가서 일부러 분식집 안에서


그 아이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떡볶이를 먹었는데 안오더라고.. 


그렇게 거의 매일 했는데 그 아이를 결국 못봤어


그렇게 그 아이를 못보고 공장이 바빠지면서 한달 정도 공장에서 기숙하게 됐어 


기숙이 끝나고 혹시나 해서 분식집에 갔는데 역시나 보이지 않았어


근데 아주머니가 "그 아이 왔었다 혹시 너 오면 이거 전해달래"라며 선물상자를 주셨어


처음 그 아이한테 캔디사탕을 받던 느낌이 났었어...


집에 오자마자 그 선물상자를 열어보니깐


캔디사탕봉지랑 벙어리장갑 그리고 편지가 있었어


그 편지 읽고 나서 정말 방에서 서럽게 울었어 너무 미안하고 너무 보고싶어서


편지 내용은 다 적을 수 없지만 대략 이러했어


항상 아무 대답을 못해서 미안했다는 것..


그 아이는 떡볶이를 사갈 때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봐 


말을 듣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는 대답을 할 수 없었고 그게 미안했었다는 거야.. 나는 부끄러워서 아무말도 못했었는데 말이지..


그리고 이어폰을 낀채로 나를 속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미안했다는 내용


떡볶이를 항상 많이 줘서 고맙다는 내용


그날 뛰쳐나갔던 것에 미안하다는 내용


그리고 나이와 이름이라도 알았었다면 좋았다는 내용


분식집에서 내 말을 못들었던 것 같아 "저도 17살이에요" 라는 말..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청력이 점점 악화가 되어서 수업을 못듣게 되는 바람에 특수학교로 전학을 간다는 말이었어


많은 생각과 감정이 겹쳤어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들었다면 후회 안했을텐데


학교 앞에서 기다려라도 볼걸 등등..


그리고 난 후 일상으로 돌아왔어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준 캔디사탕봉지를 뜯어서 프링글스통 가득 채웠고 그걸로 가끔 그 아이가 생각나면


꺼내먹고 벙어리 장갑은 구멍이 날 때까지 매년 겨울 때마다 끼다가 편지랑 잘 보관해놨는데


어리석게도 이사하면서 없어졌더라고 그 상자 없어졌을 때 진짜 인생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것 같더라


겨울되면 그 아이가 많이 생각나더라 잘 지내고 있을지 어떻게 변했을지


공부하다 갑자기 옛생각이 들어서 한번 글 써봤어 다들 한 해 잘 마무리 하길





 





























 

16 Comments
Jh0Y6EfF 2018.11.29 16:10  
야이쓰발람아 세줄요약은 기본이야 씝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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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ZMLfbr 2018.11.29 16:24  
[@Jh0Y6EfF] 니 인생도 세줄로 요약해줄까?
VbmX9zyq 2018.11.29 16:31  
[@Jh0Y6EfF] 미안 난 그럴만한 수준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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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mTS0gOp 2018.11.29 16:13  
글 잘쓰네 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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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AzWdPJ 2018.11.29 16:14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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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vkaGUb 2018.11.29 16:17  
크 취한다
나도 중학교때 처음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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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Ubkc0J 2018.11.2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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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ZMLfbr 2018.11.29 16:23  
ㅅㅂ 회사에서 울뻔했다...ㅜㅜ
글쓴이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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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bmX9zyq 2018.11.29 16:32  
[@ezZMLfbr] 고마워요!!ㅠ
C4tW01EH 2018.11.29 16:28  
읽으면서 문득문득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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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KjV29Y 2018.11.29 16:28  
소설아니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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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bmX9zyq 2018.11.29 16:32  
[@mGKjV29Y] 나한테는 소설같은 추억이지 ㅠ
GW6o9hG5 2018.11.29 17:16  
죠혼니 길으스 못읽갰다 ㅡ.ㅡ
미안하개 생각한다 ㅡ.ㅡ
심각한그믄 읽도록 하갰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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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DIXeyB 2018.11.29 17:43  
미안 너무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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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VW59wU 2018.11.29 20:46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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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vjL69M 2018.11.29 21:34  
내가 늘 홀로 사랑하는 애들에게 조언하는 말이 이있어.
“고백이라도 해봐.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나중에 또 인연을 만나면 그땐 후회하지 않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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