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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무숲

2018 봄비 오는 날

유큐벼치지애류벼 3 48 1
오랜만의 비다.

결정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따듯해진 날씨와 잔뜩 환기시킨 방 안의 공기는 완벽했다.
400g의 원두가 뿜어내는 향 덕분에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었고, 아무 할 일 없이 몇 시간 째 흘러나오는 노래와 진한 원두커피로 시작한 주말은 어느 때보다 완벽했다.
어젯밤 이불빨래와 대청소까지 마쳤으니 말이다.

참 많이도 누리고 산다.
괜찮은 집, 나의 노동력과 부모님의 비호 아래 몸을 뉘일 수 있는 이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설픈 학벌과 알량한 예술부심, 내면의 나태함과 반대급부의 결벽.

아, 이대로 괜찮은가.

마트에 진열된 나는 어떤 물건에 가까울까.
방부제 잔뜩 먹인 인스턴트보다 나은 인생일까.
할인 코너에 몰린 무른 양파가 나의 모습인가.

왜 나는 잠들지 못할까.
두려움과 후회 둘 다 맞다.
변하지 못함에 대한 인정이 제일 무섭다.
고층의 오피스텔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어깨가 뭉쳤다. 죽비같이 나를 내리친다.

아프다.
목부터 심장 안 쪽까지 뻐근하다.
잠이 안와 싸구려 와인 한 병을 비우고 미친듯한 홍대거리를 허벅지가 뻐근해질때까지 걸었다.
잠은 잘 수 있었다. 억지로 잠수시키는 수영 선생의 눌림같았지만.

아,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애초에 흘러가지 못할 굳고 한심한 덩어리였나.
부모님. 부모님 생각만 하면 타자를 치다가도 눈가가 뜨겁다.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이 트럭운전을 해도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트럭운전수보다 나은게 하나도 없는 걸요.
예전에 빨간 야구모자를 쓰고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이 뛰어다니던 그 아이는 어디갔을까요.
나는 살아야하는데, 어머니 아버지의 지치고 늙은 숨이 내 폐 구석구석까지 느껴지는데, 나는 왜 이 따위 타자밖에 치지 못할까요.

잠들고 싶다. 영원히. 모두에게 권태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언젠가 오길 바라면서. 짧고 게으른, 이 배부르고 나약한 생 행복했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3 Comments
뷰스러쵸디슈애프 2018.03.05 03:17  
초콜렛 하나 드시고 주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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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페로니초죠버혜 2018.03.05 03:19  
-잠이 안와- 부분을 -쉽게 잠들지 못해- 로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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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르아체호져즈더 2018.03.05 06:02  
나도 죽고 싶단 생각 자주해....남들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부러워들 하지만.... 난 그냥 힘들어

그런데 그냥 삼키고 살어 어쩔수 없잖아....

누구에게 선물은 못 주는 인생일지라도

내 죽음으로 마음 아프게 하는건 아닌것 같아서 그냥 삼키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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