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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는 왜 마이크론에 넘어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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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는 왜 마이크론에 넘어가지 않았는가?>

 

 

어제 최근 출간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 책 **『수퍼 모멘텀』**을 읽기 시작했다.

만년 언더독이던 **하이닉스**가 HBM으로 도약해 오늘의 전성기를 맞이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 첫 장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2002년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에 넘어갔다면…”

 

그 문장을 읽는 순간, 24년 전 내가 현장에서 직접 겪었던 하이닉스–마이크론 매각 협상의 시간이 떠올랐다.

만약 그때 매각이 성사되었다면, 오늘의 **SK하이닉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4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서 더 흐려지기 전에, 그 시절의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1. 외환은행 사외이사로 참여하게 된 배경 (2001)

 

나는 2001년 3월, 외환은행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당시 나는 옥션 대표이사이자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이었고, 은행 입장에서는 IT를 대표하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무렵 외환은행에는 2000년 5월에 취임한 김경림 행장이 경영하고 있었다.

인품·평판·경영 능력을 두루 갖춘 분이었다.이사회 의장이던 박영철 고려대 교수와 함께 은행 정상화에 매진하고 있었다.

 

2. “하이닉스를 마이크론에 매각하라”는 정부 통보

 

2001년 12월경, 갑작스럽게 정부로부터 통보가 내려왔다.

“하이닉스를 매각해야 한다. 마이크론과 협상하라.”

 

하이닉스는 2001년 3월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로 사명을 바꾸었고, 8월에는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어 사실상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관리 체제에 있었다.

2000~2001년 메모리 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부채가 급증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국 경쟁사에 매각한다는 선택은 국가 산업 전략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3. 내가 매각을 반대한 세 가지 이유

 

이사회에서 나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① 반도체 원천기술은 ‘국보’다

1987~1992년 삼성 비서실 근무 시절,

기흥 3라인 건설과 64메가 DRAM 까지의 개발·양산을 직접 지켜본 경험이 있다. 반도체 원천기술을 가진 회사를

외국 경쟁사에 매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역사의 죄인이 되는 선택이라고 강조하였다. 원천기술은 국보라고 외쳤다.

 

② 하이닉스는 이미 중국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당시 하이닉스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의 첨단 산업화는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고,수요 폭증은 시간문제였다.

이 시점에서의 매각은 미래를 포기하는 결정이었다.

 

③ 반도체는 극심한 사이클 산업이다

반도체는 수급에 따라 가격이 폭락하기도, 폭등하기도 한다.

짧은 호흡의 재무 논리로 판단할 산업이 아니다.당시의 적자는 구조적 실패가 아니라 사이클의 저점이었다.

이러한 논리로 동료 사외이사들을 설득하고 외환은행 경영진을 설득하였다. 하이닉스 사외이사들을 만나서 삼성에서의 사례를 들며 설득하고 또 설득하였다.

 

4. 마이크론과의 협상, 그리고 김경림 행장의 결단

 

그럼에도 정부의 압박은 거셌다.

“빨리 마이크론과 MOU를 체결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결국 2002년 1월부터 하이닉스 대표이사 박종섭 사장이

**마이크론**과 협상을 시작했고,

3월 초 최종 타결을 위해 김경림 행장이 직접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때, 한밤중에 미국에 출장 중인 김경림 행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사님, 현금이 아니라 마이크론 주식으로 주겠다고 하는데 제 양심으로는 도저히 마이크론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답답하신 심정에 매각 반대론자인 저에게 전화하신 것 같았다.

 

나는 짧게 말씀드렸다.

“행장님, 그냥 귀국하시지요.”

 

며칠 뒤, 정부는 마이크론 협상안을 거부한 김경림 행장을 전격 경질했다.

임기를 1년 2개월이나 남긴 상태였다.

 

하이닉스 매각 문제로 외환은행은

유능한 은행장을 잃고 새로운 행장을 선임해야 했다.

 

5. 두 번째 시도, 그리고 2002년 4월 30일

 

정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채권단 대표를 이덕훈 한빛은행장으로

바꾸어 2002년 4월 다시 마이크론과 협상에 나섰다.

 

4월 22일 마이크론과 타결된 최종 MOU를 들고 이덕훈 행장과 박종섭 사장이 귀국하였다.

그리고 4월 30일, 하이닉스 이사회가 열렸다.그 사이에 하이닉스 이사들, 외환은행 경영진, 사외이사들은 모두 하이닉스 독자 생존에 뜻을 모았다.

대한민국 산업사에 한 획을 긋는 결단이 내려졌다. 마이크론 협상안 부결이었다.

 

6. 기적 같은 생존, 그리고 출자전환

 

이후 하이닉스 경영진이 개편되고,

황학중 외환은행 부행장이 중심이 되어 하이닉스 채권의 출자전환이 본격화되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대회의실에 모인 채권은행들,

찬성과 반대가 맞서는 치열한 회의 속에서 하이닉스의 숨이 다시 붙는 순간들을 지켜보던 장면이.

 

2002년 당시 정부의 권력은 막강했다.

은행장은 경질되었고, 압박은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하이닉스를 지켜낸 것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당시에 수많은 우량기업이 해외로 팔려나갔다.

 

7. 김경림 행장을 추모하며

 

이 글을 쓰며, 고인이 되신 김경림 전 외환은행장께(1942-2021)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은행장 자리를 걸고,불평등한 협상을 양심으로 거부한 용기에 머리를 숙인다.인품, 능력, 통찰을 겸비한

이 시대의 진정한 위인이었다.

 

8. 그리고, 더 큰 폭풍의 전조

하이닉스 문제가 일단락된 뒤,

2002년 말부터 또 다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외환은행을 매각하라.”

상대는 **사모펀드 론스타**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려 했던 주요한 이유가 외환은행이 보유한 하이닉스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매각 압박에 외환은행은 사모펀드 손아귀에 들어가고 기나긴 악연이 이어졌다.

 

 

하이닉스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한다.

 

Best Comment

BEST 1 혀으니  
당시 대통령및 여당 개호로새끼들
BEST 2 갓김치  
[@애플]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뭐랄까.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고 대계를 준비했던 분은 아닌 걸로 생각이 됩니다.
정치가이지 행정가는 아녔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명이 많다지만 암'도 있지요. 이낙연을 발굴한 것도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7 Comments
혀으니 02.11 23:42  
당시 대통령및 여당 개호로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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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02.12 10:01  
[@혀으니] 김대중이긴 한데
당시 현대반도체가 이렇게 될줄 누가 알았겠음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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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김치 02.12 13:21  
[@애플]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뭐랄까.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고 대계를 준비했던 분은 아닌 걸로 생각이 됩니다.
정치가이지 행정가는 아녔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명이 많다지만 암'도 있지요. 이낙연을 발굴한 것도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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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이이이 02.12 23:39  
[@혀으니] 참고로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는 추경호 한덕수 작품임. 궁금하면 한번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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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백수 02.12 12:13  
저때 살껄...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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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왕 02.12 14:18  
그때는 그놈의 아이엠에프 때문에 긴축과 구조조정의 시대였습니다. 채권단과 채권국들 특히 미국요구를 거의 다 들어줬을겁니다...그래도 애국자께서 하이닉스를 잘 지켜주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네요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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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가 02.12 21:34  
근데 하이닉스가 이렇게 잘될지 누가 알았나
1년전에만 들어가도 10배 가까이 벌었을건데
미래는 아무도 알수없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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