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바다의 신, 성웅 이순신
주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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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3 11:45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사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미천한 신분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하급무사 집안 출신에다가,
체격 또한 왜소했고
별명은
'코자루'였다
코자루는 새끼 원숭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낮은 계급일때,
다른 높은 사람들로부터
원숭아~ 원숭아 ~ 라며 불려다녔다.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화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 일화이다.
어느 한겨울날, 오다 노부나가가
문밖을 나서 신발을 신었는데,
차가워야 될 신발이 따뜻하여
'왜 겨울인데 신발이 따뜻하지?'라고
의문을 품었는데
알고보니 도요토미가 신발을 품에 안고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워놓아
그때부터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띄어
중용되기 시작했다는 유명한 얘기.
한때는 오다 노부나가가
실력위주의 인재등용과 중상주의로
굉장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를 존경했지만,
한편으로는
넘어야할 존재였다.
오다 노부나가의 그림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최고권력자가 되고나서도
콤플렉스가 되어 그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러한 콤플렉스는 대단히 안좋은 방향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정치적 장악력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장악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왜소한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이었다.
세간의 평가로는
평시에 어울리는 리더가 아닌,
전시에 어울리는 리더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그의 최대 과오가
임진왜란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들어 죽었다고해서,
그가 제 명 다 살고 죽은것 아니냐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일본에서
임진왜란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피해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본인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조선을 정복하자! 라고 했을때,
당시 일본을 완전히 통일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에 히데요시의
막강한 라이벌이 남아있었는데,
그게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난뒤
도요토미 히데요시 VS 도쿠가와 이에야스
두 세력이 붙었는데,
K.O승은 못거뒀지만 판정승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긴다.
헌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 장악력은 아직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못이긴다.
내가 만약 지금
천하인의 자리에 오른다면
나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언제 죽을지 모르고
그의 부하들을 통제할 수 없다."
라며 천하인의 자리를
도요토미 히데요시한테 양보하고
관동으로 떠난다.
그래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에 참전을 안했다.
그런 이유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부하들만 조선에 가서 많이 죽었고
한순간에 형세가 역전이 되어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그의 추종세력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투에서
도쿠가와가 승리하며
도쿠가와가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이다.
16세기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
임진왜란
도요토미의 생각과 달리
장기전으로 치달은 원정은
그에게 부담을 주었고
군사적기반을 잃게 만들었다.
도쿠가와의 싸움에서 진
히데요시 추종세력,
히데요시의 부하, 아내, 아들 모두가 죽어
핏줄이 완전히 끊기게 된다.
완벽한 몰락이었다..
일본을 통일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명한 공적이다.
하지만 결국,
조선침략을 감행했던 것은
우리 입장이나
동아시아 평화로 봐서
비난할 것이 아니라하더라도
당시의
일본군대가 아무리 쎄도,
사실 조선을 정복할 능력이 안됬다.
불가능에 메달렸던 그의 과도한 야망
그는
정복과 통치를 구별 못하고 있었다.
이 실책은,
지도자로써는 치명적인 실수이고
이 부분은 비난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임진왜란은,
일본쪽에서 봐서도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이다.
많은 피해를 입혔지만,
어찌됬든 임진왜란은 일본에게 패전이었고
통일시대(센고쿠)시대의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의 제시를
침략의 형태로 밖에 표출하지 못했던 그는,
결코 영웅이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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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일어나는 조선의 반격,
명의 참전,
보급의 부재 ....
장기전으로 흘러가는 임진왜란의 가운데,
일본군에 숨통이 트이는 한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