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차리토]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안되지않나.. 석전이 무슨 모든폭력이 허용되는 광란의싸움인거도아니고 기본,암묵적 룰이있었을텐데
이미 스포츠화된 현대복싱과 현대화되기전 조선시대 문화를 비교하는건 좀..
그렇게 현대화된 복싱도 안전사고나서 뇌출혈로 사망사고나는 스포츠인데 현대화되기전 폭력적문화가 안전해봐야 얼마나 안전하겠음?
사람죽는걸로 따지면 결투만해도 총으로 1대1 권총빵하는건데 결투는 신성시되는 싸움으로 취급하잔음 결투도 총맞으면 피철철 흘리며 끅끅대다 뒤질텐데
걍 그때 그시절 위험한 놀이라생각함
[@치차리토]
환경은 바뀌어도 사람은 똑같다
시대가 바뀌고 열병기로 싸우는 시점에선 의미가 거의 없지. 하지만 냉병기시대에서 조직을이루어 전술적인 경험을 쌓는데 그게 의미가 없을리가... 그래서 대포나오기전엔 집단적으로약탈하고다니는게 생활인 유목민족에게 농경민족이 전투에서 이기질 못하지
역사와 문화를 살피면서 특정민족과 특정시대의 사람들이 열등했다는식으로 생각하는건 편협하기도 하거니와 아무런 배움도 얻지 못하는 방법이다.
[@고추잡채]
냉병기 시대야 말로 1명 1명이 전투력인데 저래서 죽으면? 농사는? 전투는?
조선을 포함 전근대국가들이 훈련소 같은 곳을 만들어서 훈련!을 시켰지 결투를 시켜서 전투력 손해보는짓을 하지 않았음.
조선의 석전을 지켜봤던 선교사들이 여기에 온 시점이 이미 1800후반 1900초반임.
불과 100,200년 전임. 대포건 총이건 다 나온 시점인데 뭔 열병기 냉병기 타령임?ㅋㅋㅋ
님말대로 특정 시점끼리 비교하려고 해도 그렇단 말임.
님이 하는 말은 동학농민운동때 총으로 중무장한 일본,관군한테 죽창을 든 농민들에게 몸에든 부적을 믿고 돌진하라고 했던 전봉준을 보고, 극소수 빼고 전 몰살 당했던 그 사건을 보고
역시 저항의 정신을 배워야한다는거랑 다를게 없음.
현대 인권과 현대 사회적 가치의 기준에서
미개한건 미개하다고 판단 내리고, 끊어야할 악습은 끊어 내고, 유지할 좋은 모습은 계속 가지고 가는 것이 뭐가 배움을 얻지 못할 방법임??
[@치차리토]
원인을 무시하면 같은결론이 나더라도 배운게 아니다.
히틀러도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을보고 6월 이후에 침공하게되면 어려워진다는 결론을 얻었지만, 그 원인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결국 나폴레옹과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폴레옹이 모르고 미개해서 실수를 한것이 아니라 나폴레옹도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고, 이 이유는 히틀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악습을 끊어내야한다는 결론에서 그친다면 그 교훈은 아무런쓸모가없다.
애초에 왜 생긴 풍습이고 악습이 된것을 왜 몰랐는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너도 네가 미개하게 여기는 역사속 소시민이 될 뿐이다.
악습을 없애야한다는 명제를 누가 모르나,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와 문화가 왜, 언제, 어떻게 악습이 되는지 생각해볼 수 있어야 역사에서 교훈을 얻은거다.
'나라면 안그랬을텐데' 를 전제로 역사를 보는건 공부가 아니라 유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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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훈련... 조선이 회전이 가능한 군대를 키우는게 거의 불가능했던 이유를 좀 보자.
조선도 기동훈련 제도가 있었고 정도전이 진법도 정리하긴 했지만
개개인이 군마와 병장기, 훈련비용(밥)을 감당해야하는데다 두 개의 도씩 묶어서 하나의 군대를 편성했기때문에 동원도 매우 힘들었다.(강릉의 김씨와 인천의 박씨가 한곳에 모여 훈련하는것)
전투보다는 지방군벌이 나타나지않도록 관리하는데 특화된 제도인것이다. 심지어는 지방향리들의 활쏘기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런 제도는 군사력을 약화시키기도했지만 지방군벌의 성장을 막아 군사력의 필요성 자체를 억제했다. 이렇게 조선은 북쪽의 양계지방과 수군 말고는 군사력이 없다시피했다. 그러다보니 임꺽정같은 거물도적이 나타났을땐 포졸도 없어 강도 십수명에게 관아를 넙죽넙죽 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고려까지만해도 마을마다 무사계급이 있었고, 지역단위로 얼굴아는 사람들끼리 군대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마을마다 작은 요새가 있어서 유사시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싸웠다.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국가간의 전쟁보다 부족, 선단 규모의 약탈이 많아 정규군이 있어도 제때 대응할 수 없다.
지역단위의 침략이 많지만 지역단위 군대는 없는 이런 상태에서 고대에 쓰던 오래된 방법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이런 배경을 살펴보면 조선의병이 어떻게 소규모 야전과 수성특기를 얻었는지 어느정도 납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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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에서 정신따위를 교훈으로 뽑는건 역사가 아니다.
지금 교훈을 떠올려보자면
힘이 없으면 애초에 좋은 선택지도 안나온다는것과
히틀러의 집권이 우리나라의 독립으로 이어지는 세계화 시대에 와있다는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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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살펴보는게 옹호하고 지지하는걸로 보인다면
프로파일러는 범죄자편으로보이나?
[@고추잡채]
님아. 님 정성들여서 쓴 글이라 몇번 읽어봤어요.
악습이 생겨난 진짜 원인을 알아야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말 에는 어느정도 공감해요.
조선의 저 말도 안되는 군사 정책도 이해 하고, 그 이전의 고대사로 부터 침략에 대비해 이어져 왔던 마을간의 힘겨루기의 일종이었던 것도 알아요.
근데,
그런 본질적 원인을 안다고 한들, 뭐가 바뀌나요?
제가 왜 어느정도 공감한다고 했냐면요.
본질적 원인이 100% 라 생각하지 않아서에요.
원인과 상관없이 지금 발생하는 현실을 현실로서 받아들이고 그걸 놔둘건가 근절할건가를 판단하는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 수십, 수백의 장정들이 서로 짱돌을 던져대고, 곳곳에서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부러진 부상자가 속출하며, 심지어는 승세를 탄 쪽이 상대방 마을로 쳐들어가서 집까지 부술 정도” 라는 구한말 기록
“ 석전중 돌로 사람을 죽였으나 죽은 석전꾼의 가족들에게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움에 떨었지만, 원래 석전놀이는 상대편의 사상자를 발생시키려고 돌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고작 그거 가지고 문제를 삼은 조선인은 아무도 없었다는” 구한말 기록.
“분노한 군중들이 짱돌을 들고 관아에까지 쳐들어와 돌팔매질을 해 조선 정부가 여러번이나 석전을 금지했던” 기록
이미 현상 그 자체만 놓고 봐도 근절해 마땅한 미개한 풍습이죠.
그때 그시절 그런 풍습이 임란때 왜구를 쫓아내는데 일부분 기여를 한거, 농경사회에서 전투력을 기르기위한 방편이라 아무리 말 한들,
지금에서는 미개하다고 할 수 밖에 없어요.
왜?
현상 그 자체가 미개하니까요.
유럽에선 이런 악습을 토마토 던지는걸로 승화 시켰죠.
우리나라도 눈싸움 같은 형태로 뼈대만 남아있으나,
그마저도 눈에 돌 집어넣고 하는것 때문에 나이 들면 잘 안하려 하죠?
승화시키든지 그게 안되면 근절하든지,
원인도 좋지만, 현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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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미래의 관점에서도 제가 미개한 소시민의 일부가 될꺼라고 하셨는데,
네 그것도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분명 미래의 가치에서볼 때 지금의 어떤 것이 미개해 보이겠죠.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그렇게 판단하면 될 일이죠.
그러나,
방향성의 부분에서 볼때, 인권, UFC와 같은 절제된 폭력, 좀 더 적은 사상자
이런 부분에서는 미래에가도 변치 않을 가치라 생각하거든요.
전 그래서 과감히 악습이라 치부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끝에 언급하신 부분은
제가 오해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저런 악습을 쭉 서술한 글에서
단순히
“농본사회에서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라고 적어놨는데,
과연 어느 누가 저 말을 원인을 살펴보자, 진지하게 본질적 물음을 던져보자. 라고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의문이 드네요.
저의 미흡한 눈으로는 단순히 쉴드 치는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전 프로파일러는 범죄자편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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