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의 배 역설
주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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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00:29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후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인들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했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를 그 자리에 박아 넣었던 것이다.
커다란 배에서 겨우 판자 조각 하나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때 이 배가 테세우스가 타고 왔던 "그 배"라는 것은 당연하다. 한번 수리한 배에서 다시 다른 판자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낡은 판자를 갈아 끼우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 테세우스가 있었던 원래의 배의 조각은 단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신체는 신진대사와 노화과정을 거쳐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 몇 년 동안 이 과정을 겪으면 한 사람의 신체는 물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신체로 바뀐다. 이 변화된 사람은 여전히 같은 사람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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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Comment
붓다가 깨닭은 건 나라고 할 만한 자아가 없다는 거고, 그 없는 나 라는 존재에 집착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이 유발된다고 설명함.
물론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직접 깨달은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이런 내용이 재미있는 친구들은 불교에 대해 공부해 보는것도 좋을 듯.
우리가 보통 접하는 한국불교는 중국, 인도, 한국 토속 문화가 짬뽕되어 사실 붓다의 근본 교리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고도 볼 수 있다. 전혀 기복신앙이 아닌데도 부처를 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
자신의 영속성을 찾아가기 위한 길은 허무할 뿐더러 의미도 없으며 빈 깡통과 같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규명하고 찾으려 할수록 오히려 찾지 못하고 가라앉을 뿐일 것입니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금강경 사구게의 구절중 하나입니다. 색이나 소리같은 감각 기관으로서 자신을 구한다면 진정한 참나를 볼수 없을것이라고 부처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남도 나와 다르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찾는 행위는 자기 자신을 찾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