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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북한 GDP를 갈아마신 거대 토목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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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D541C500000578-5131843-image-a-84_1512037664685.jpg 80년대 북한 GDP를 갈아마신 거대 토목공사
1970년대 북한은 경공업과 농업 기계화가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 등 경제적으로 무척 안정돼있었습니다.

외제 사치품들이 유입되고 컬러 티비 방송이 시작되고 지방의 여전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평양에서는 놀라운 경제성장이 화려한 껍데기를 씌워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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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북한은 대동강 하구에 댐을 건설해 대규모 담수호를 확보한다는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조수 탓에 대형 선박이 드나들기 힘든 남포시에 거대한 갑문을 건설해 서해안 간척지에 쓸 수자원도 확보하고 남포항도 확장할 수 있었죠.

김일성은 대동강을 개발해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밀어붙였습니다.


건설지는 처음엔 남포시 동전리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갑문 내부에 쌓일 흙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의견에 따라,



화면 캡처 2025-08-05 121125.png 80년대 북한 GDP를 갈아마신 거대 토목공사

저기로 결정됐습니다.

위치 결정을 위한 회의에서 김일성은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위치를 조정하고, 둑이 너무 방대해진다는 의견은 권위로 눌러 계획을 강행시켰습니다.


이후 소련 기술자들을 초청하여 건설 예정지를 탐방하고 설계와 시공 교류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련 기술진이 내린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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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마."



기술자들의 판단 근거는


1.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이 북한에겐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며

2. 8km에 달하는 하구에 거대한 댐을 짓고 연약지반과 조수간만 문제도 극복하는 기술적 난점을 북한이 극복하기도 힘들며

3. 건설 후 예상되는 경제 효과가 투자 비용을 넘어가리라 예상되지도 않음


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지어봤자 손해니까 하지 말란 소리.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김정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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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네 기술 빼갈까봐 안해준대요"


이렇게 적당히 숨겨서 보고했고 김일성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민족이 주체적으로 완공한다" 라는 명분으로 건설 강행을 지시하게 됩니다.


착공이 시작된 것이 1981년 5월 4일.

건설 목표는 3년 이내 완공, 할당 비용은 최소 40억 달러. 당시 북한 GDP의 무려 30%를 차지하는 거금입니다.

실제로는 60억 달러가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대한 공사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조선인민군 육군 20만 명이 동원됐고 시멘트만 110만 톤을 퍼붓는 등 북한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른바 '건설 돌격대'라고 불리던 이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작업 할당량을 부여받고 쉬는 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으며 추락과 장비 사고를 비롯한 각종 안전 사고로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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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설의 서산간척사업 당시 폐유조선을 활용했던 물막이 공사. 현대 건설의 소개문에는 정주영 공법이란 별칭도 적혀있음.)

거기다 자신들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혁신적 공법이라 주장하는 선박 침몰 공법을 도입했는데, 폐선박을 동원해 물길을 막고 그 위에 제방을 쌓는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했듯 북한의 기술력은 아직 열악한 수준이었다는 거죠.

기술적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강행된 새로운 공법은 제방 기초가 불안정해지고 침하 현상을 유발하는 결과를 낳아, 방파제가 갈라지고 갑문이 망가지는 등 각종 사고를 일으키면서 수천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습니다.


특히나 건설지역은 갯벌, 그러니까 연약지반입니다.

지질 조사 후 적절한 보강 공사를 통해 연약지방개량 공법을 가해야 하지만 김일성이 지시한 3년 속도전을 위해 많은 과정이 생략됐습니다.

제방 침하와 하부 침식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결국 완공 시한은 2차례나 연기되어 5년째인 1986년 6월 24일에야 완공을 선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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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식에 참여한 김일성)
 

화려한 준공식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서해갑문 건설을 '위대한 주석님의 불멸의 영도'와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현명한 영도' 아래 이루어진 세기적인 위업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자력갱생'과 주체적 기술의 승리를 강조하며, 외부의 도움 없이 인민의 힘만으로 자연을 정복했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완공 기념 우표와 기념주화도 발행하여 대대적으로 이를 선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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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된 서해갑문은 길이 약 8km, 3개의 갑문과 35개의 수문, 남측 갑문을 통해 최대 5만 톤급 선박까지 출입이 가능하고 위에 4차선 도로와 철도를 부설하여 남포에서 황해남도를 오갈 수 있게 하는 등 규모에 걸맞는 모습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서해갑문은 북한 경제의 끔찍한 자폭이 되었습니다.


막대한 건설 비용과 자원은 당시 북한 경제가 감당하기엔 지나친 양이었습니다. 막대한 경제자원이 집중되면서 다른 산업에 갈 자원까지 소모되었고 이는 90년대 북한 경제 붕괴에까지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야심차게 지은 갑문항인만큼 항구 기능의 활용이 중요했는데, 5만 톤급 선박까지 통행 가능한 규모로 지었지만 막상 북한은 아직 그 정도로 큰 선박들이 활발히 오갈만큼 큰 규모로 교역을 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갑문을 열고 닫기 위해 막대한 전력도 소모하는데 전력난으로 기능이 마비되면 항구도 함께 마비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위에서 언급했듯 이 갑문은 교량의 역할도 겸하기 때문에 육상 통행과 선박 통행 중 하나는 희생돼야 하고 이는 갑문을 수시로 열고닫느라 선박도 열차와 자동차도 통행 시간을 손해봐야하는 어정쩡한 결과가 됐습니다.

원래는 세트로 운영할 발전소 시공도 계획에 포함돼있었으나 건설기한에 맞추기 위해 생략되어버렸죠.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층으로 설계해야 했지만 북한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에다 남포항의 물 흐름이 갑문 건설로 정체되면서 겨울이 되면 80일 동안 항구가 얼어붙는 심각한 문제까지 발생했습니다.

80일 결빙은 단순히 그 기간동안만 항구 못 쓰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물자의 운송, 비축, 그리고 스케쥴 조정까지 방대한 물류 마비를 유발합니다.


그렇다면 수자원 확보는 어떨까요?

우선 갑문이 건설되면서 대동강 하구는 해수 순환이 막히고 커다란 담수호로 변했습니다.

문제는 상류로부터 생활하수와 공업폐수가 쌓이면서 수질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물고기 집단 폐사 문제까지 발생했다는 겁니다.


농업 및 공업용수 활용을 위해선 대동강 수위를 일정하게 조절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력난과 위의 문제들로 갑문의 비효율적 운영이 심각해지면서 이 기능조차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다 강제로 물길을 막은 바람에 강 하구에 서식하던 숭어들이 산란기에 바다로 나갈 수 없게 되면서 대동강의 숭어 생태계가 박살이 났습니다.

김일성이 단골 식당 주인에게 숭어가 없어 명태국이나 끓인단 소리를 듣고 물고기길 확보를 위해 긴급협의회를 소집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후 평양의 숭어국집들이 문을 닫거나 간판을 대동강 숭어국집에서 평양 메기탕집으로 바꿨다는 걸 보면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한 모양입니다.

처음 시공 때부터 물고기길을 따로 고려한다면 모를까, 이미 허겁지겁 완공해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물고기길을 뚫으려 해도 답을 내놓긴 쉽지 않았겠죠.



아직도 북한은 서해갑문 공사를 자신들이 이룩한 20세기의 기적이라며 세계적인 건축물이라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민들이 말하길, 인천대교와 비교하는 것도 민망하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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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막대한 자재와 예산, 외화까지 갈아마신 서해갑문은 이러한 처참한 결과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건설비용을 회수하기는 커녕 막대한 유지비만 들어가고 더군다나 90년대 경제붕괴로 교역이 마비되면서 갑문은 사실상 애물단지로 전락했습니다.

이렇게 재정이 무너진 상황에도 갑문의 막대한 유지비와 전력수요는 고스란히 재정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의 북한의 거대한 실패 정책을 대표하는 사례 중 하나인 서해갑문은, 지금도 여전히 남포의 중요한 인프라 시설로 기능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이것이 통일 후에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란 의견엔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돈낭비와 비슷한 짓을 몇 번이나 더 해버린 끝에, 90년대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맞이하게 됩니다.

북한이 얼마나 허황되고 황당한 체제인지를 상징하는 토목사업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ㅊㅊ- https://www.fmkorea.com/best/8746211139

4 Comments
하엠봉 08.05 21:57  
숭어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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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봉망해서옴 08.06 08:28  
갯벌에 연약지방개량공법 안쓰고 지었다길래 폭싹엔딩 기대했는데

튼튼하게 짓긴했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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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 08.06 09:20  
권위주의의 단점 남 말 안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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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andori 08.08 09:59  
[@타타] 말을 안듣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사람 주변에는 사실을 가리면서 그 앞에서 딸랑이만 잘 흔드는 사람만 남는 듯...

럭키포인트 21,789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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