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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불평등에 취약한 이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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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함? 사랑? 가족? 신뢰?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것은 생존임. 자기 자신과 자식의 생존.


그러나 이 생존을 하기 위해선 사람은 먹고 살아야함. 자원이 필요하고 요즘은 돈이라고 명명되는 재화가 되겠지. 그리고 이 재화의 격차는 모든 체제에 불안정 요소로 작용하지만 민주주의에는 더 그럼.

그렇다면 왜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더 문제가 될까. 간단히 말하자면 정치적 참여자가 많다라는것으로 퉁칠수 있겠지만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님. 이건 사람의 근본적인 감정인 질투에 관한것이기때문.


1. 질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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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것보다 아주 오래된 감정임. 사람 그 자체보다도 훨씬 오랜 기원을 지닌 감정. 최소 2억년전 포유류 시기에 기원한걸로 보통 추정되는데 다른 개체가 자신이 먹지 못하는걸 다른 녀석이 먹고 있거나 갖고있을때 도파민이 활성화됨.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차별적인 보상을 받는다면 그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음. 이건 개, 쥐, 원숭이에 의해서 발견되는데 이게 소위 원시적 형태의 질투.

그리고 5700만년에서 9000만년전 사이 최초의 유인원들이 등장하면서 이 원초적 질투는 좀 더 확장되기 시작. 이들은 집단으로 살아갔기에 다른 개체가 식량과 번식기회를 독점할때 그것을 보고 뇌의 여러 부분이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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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공포를 처리하는 편도체, 보상 및 학습을 담당하는 선조체, 도덕성과 감정조절에 관여하는 뇌섬엽이 활성화되는것. 대표적으로 2003년 네이처지에 수록된 원숭이들의 불공평한 보상 거부란 논문.

한 원숭이는 오이를 대가로 받고, 다른 원숭이는 당도가 높고 즉 칼로리가 높은 포도를 받을때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포도를 받은 원숭이보다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 생각해 오이를 내동댕이치거나 철장을 두들기는등 반항 행위를 보임. 심지어 둘다에게 먹을것을 줬음에도 가치가 높아보이는걸 주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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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도 = 고칼로리로 높은 생존율을 의미하고 이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단걸 좋아하는 이유. 실제로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이전 전근대만 해도 감미료는 매우 희소했음.

이런 물질적 보상 차이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명예나 지위라고 불리는것에 대한 질투심도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지위가 높음 = 더 많은 음식과 더 많은 번식 기회였기 때문. 이게 거대 유인원기로 약 500 ~ 700만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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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 개체가 더 높은 지위를 얻거나, 지나치게 많은 번식 기회를 얻으면 다른 개체가 이에 대해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것. 그리고 호모 에렉투스 시기부터는 단순 음식이나 번식 기회에만 질투를 갖는걸 넘어 집단내 질투로 발전.

예를 들어 집단을 이끄는 우두머리와 얼마나 더 가까운 관계인지, 누가 더 많은 고기를 분배받는지, 누가 더 많은 동료를 갖고 있는지 뭐 대략 이런것들. 사회 지위나 명예욕이나 결국 자신과 자손의 생존을 위한 자원확보의 연장선이란거.

 그리고 5만 ~ 20만년전으로 진화적으로는 상당히 최근에 좀 더 복잡한 언어 기능이 생기면서 불평등에 대한 서사를 전달할수 있게 되었고 이는 설령 직접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그 대상에 대한 불만을 야기하는 메커니즘이 됨. 이게 소위 뒷담화의 근원임. 대충 여기까지가 질투란 개념이 생기게 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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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질투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존재했냐하면 간단히 말해 그게 개인과 더 나아가 집단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 지금이야 자원이 넘쳐나는 현대 선진국에 살아 체감하기 힘들지만 인류 그리고 나아가 영장류와 동물이 살아온 기간 99.999% 동안은 생존을 위한 식량등이 넘치는게 아니었음.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더 나은 음식 위에서 나온 높은 칼로리를 제공하는 당도 높은 과일을 취하거나, 그런 자원을 통해 번식 경쟁에서 더 우위를 차지하는 행위를 하는건 자신의 생존 및 후손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야생으로 추방되어서 혼자가 되면 사냥 성공 확률, 재해를 대비할수 있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짐.

이렇게 생존을 위협받는만큼 뇌는 경고를 울리기 위해 질투등 사회적 고통은 물리적 고통만큼이나 고통을 느끼게끔 설계. 그렇기에 누군가 자기보다 앞서나갈시 소위 전대상피질이라고 하는 고통, 통증, 쾌락을 관장하는 부분이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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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다른 개체가 자기에게 승리할시 보상, 쾌감, 동기부여를 관장하는 복측선조체도 활성화되어 도파민을 내뿜으며 전문단에서 말했던 뇌섬엽에서는 불공정성에 대한 혐오를 느끼게 만듬. 즉 질투란 감정은 이전까지 진화 과정에 의해 설계된 하나의 생존 메커니즘이란거.

다시 말해 질투의 근본은 생존을 위한 자원과 번식 경쟁인데 이 중에서 자원 요즘 말로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질투가 강하게 나타남. 번식보다도. 특히 번식 기회조차 자원에 영향을 받고.



2. 원시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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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수십만년동안 절대 다수의 기간은 부족으로 살아왔음. 즉 첨단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감정 메커니즘이나 행동 패턴은 원시인의 그거랑 다를게 전혀 없다는거임. 

그런데 수천만 수억명이 살아가는 현대 국가와 달리 부족의 규모는 기껏해야 수십명에서 아주 커도 수백명 단위로 서로 누가 뭘하고 얼마나 식량을 차지하는지등 지근거리에서 항상 서로 감시가 가능했고 이는 부족장의 식량 독점을 막았음. 

그런만큼 부족장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단순 근력이나 카리스마가 아니라 관대함이었음. 근력은 아무리 최강의 전사라 하더라도 성인 남자 3명 이상이랑 싸우게 되면 필패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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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러니한점은 부족장들이 여러 부인을 두는거엔 오히려 엄청난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는거임. 그 이유는 결혼이란게 단순 성적 매력 또는 요즘말로는 사랑에 의한것만이 아니었기 때문.

당시 결혼은 가문들간의 정치 동맹의 성질이 더 강했고, 부인을 들인다는것은 그 부인의 가족들이 부족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자원 분배에서 더 좋은 부분에 대한 우선권을 가질수 있다는 얘기였음.

즉 부인을 둔다는것은 그 부인의 가족 및 친척들과 동맹을 맺는다는 의미기도 해서 오히려 그다지 탐탁치 않더라도 필수적으로 해야만 했음. 부족장 자신의 생존과 입지 확보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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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는 자신을 노리는 정치적 라이벌인 엘리트 전사들의 불만을 야기하기는 했지만 자기가 아예 모든 번식 기회를 독점하는 수준이 아닌 이상 부족을 이끄는데 큰 문제가 없었음.

그에 반해 식량을 지나치게 많이 취한다는것은 다른 얘기. 왜냐면 인간이건 동물이건 먹어야 생존이 가능하며 이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부족 구성원 전체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 그래서 욕심이 많은 부족장은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했음.

그래서 부족장들이 가장 먼저하는것은 사냥한 고기를 분배하는 역할이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절대왕정과 같은 압도적 권력자라기보다 여러 뛰어난 전사들중에서도 으뜸가는 전사이자 식량 분배자 정도 느낌이었음. 사냥등 부족내 기여도를 인정받아서 일반 부족 구성원 대비 2-3배 정도 더 취하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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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동서양 가리지 않고 부족 사회는 평등했다고 하며 현대인은 낭만주의적 입장으로 보곤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위에서 말했듯 그렇지 않으면 그에 따른 대가 즉 죽음마저도 감수해야했기 때문.

그런데 부족장이라고 평등하길 원해서 그런게 아니고 실제로 갈수록 불평등해졌음. 욕심이 있었기 때문. 어떤 욕심? 자원을 더 많이 가지고 내 자식에게 되도록 더 많이 물려주고 싶은 욕심. 그리고 이게 가능해지기 시작함.


3. 잉여자원과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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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건 농업의 시작으로, 이는 불안정하고 얼마안가 쉽게 상해버리는 고기와 다르게 안정적이면서도 오랜기간 저장할수 있는 곡물을 대규모로 보유할수 있게 됨. 소위 말하는 ' 잉여 식량 ' 이 생겨나기 시작한것.

이는 본격적인 빈부격차를 생기게 했고 부족장은 이 잉여 식량을 이용해  자신을 지지해줄 강력한 전사들을 끌어모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할수 있는 큰 건축물을 세우기 시작함. 즉 이제 굳이 평등을 추구하는 척을 할 필요가 사라짐. 실제 이집트 파라오가 권력을 다진 방법이 곡물창고의 통제였고.

이렇게 사람들의 견제를 벗어날수 있게된 부족장은 이전에 순도순 모여살던 수렵-채집기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부의 축적을 하게 되었음. 그리고 이는 곧 부족장이 전례없는 권력을 구축할수 있는 기반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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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성과 자원 접근 기회등이 불평등을 결정 짓는 요인 ]

심지어 수렵 채집보다는 훨씬 대규모로 가축을 기르고 확대된 버전이던 유목을 하며 수십 수백만 마리를 키우더라도 부의 축적과 확대 측면에서는 곡물을 쌓은 농경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음.

왜냐면 아무리 대칸이라 한들, 꼬우면 유목민들의 경우 부와 식량의 기반인 가축들을 데리고 떠날수 있었음. 그렇기에 문화가 보다 수평적이었으며 강력한 대칸 조차 자원과 전리품의 분배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만큼 유목민족의 칸은 농경지를 정복하면 대체로 부를 더 축적 가능하고 통치가 용이한 정주민족 체제로 전환.  이렇게 정주민족은 자원의 기반이 토지라 떠날수 없었고 복종할수밖에 없었음. 그래서  토지와 토지에 올라가는 건물을 움직이지 않는 재산 즉 '부' 동산이라 하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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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목민족들은 당하는 정주민족 입장에서 전쟁광처럼보이지 전쟁은 보통 그들 인생에서 5-10% 에 불과했으며 삶의 50% 이상은 양치고 말에 풀 먹이는 그런 삶이었음. 유목민도 인간이기에 먹어야 살고 애초에 그들의 기병전력 자체가 거기서 나오는거니까.

그러나 초기 농업의 경우 수렵-채집 시기보다 인구가 늘었다해도 여전히 수백명에서 잘해야 수천명이었던만큼 이전보다는 늘어도 일반 부족원 대비 많았으나 이후의 왕이나 황제 대비는 미약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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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부의 축적이 대를 이어가니 위기시에 잉여 식량을 통해 한 부족만이 아닌 여러 부족을 통합가능해짐. 그에 따라 점차 도시가 형성되고 직업군의 전문화 및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는건 덤.

그 결과 향유할수 있는 자원도, 이전에 부족장이나 한 두개 가지면 좋을 희귀한 강철로 된 갑주와 무기도 대량으로 자신의 전사들에게 보급이 가능해졌고.

이전 단순 축제와 전투를 관장하던 부족장에서 생과 사를 결정할수 있게 되어 신적인 존재의 부름을 받았다는 신성성까지 더해짐. 괜히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부르는게 아닌것. 그리고 이를 자연스럽게 체화시키게끔 한게 신분제나 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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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만 왕조가 영국에 지은 성들 ]

이렇게 잉여 자원을 통해 자신의 지지자들을 잘 먹이고, 강력하게 무장하는게 가능해져 자신이 부를 일반적인 부족원보다 수십배에서 수백배 심지어 수천배에서 수만배를 축적하더라도 그 반항을 찍어누를수 있게 됨. 

좋은 예가 정복왕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후 고작 만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 노르만족으로 150-200만에 달하는 잉글랜드를 통치할때 각 지역마다 성과 기사 수십명으로 수천명의 농민들을 제압가능하게 만든것. 그리고 이런 성들은 마을간의 교류를 차단해 단일 전선이 되기전에 각개격파가 가능케함.

질투는 있었지만 덜해졌음. 일단 물리적 거리가 머니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아 감정적 동요가 덜했고, 거리감을 둘수 있었음. 듣는것도 질투를 야기하기에 충분하나 이는 종교적 정당성등으로 그것이 원래 질서라고 받아들이게끔 자라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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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위에서 말했듯 뒷담을 통한 자원 독점에 대한 집단적 견제는 인류에게 상당히 최근인 반면 시각적 질투는 수억년에 달하는것임. 그렇기에 그 강도는 차원이 다르고. 그리고 이게 올드 머니들이 가급적이면 부의 과시를 크게 안할려는 이유기도 함. 경험적으로 해봐야 좋을게 없다는거 깨달았거든.

다만 그렇다고 해서 신흥 부자들이 특별히 천박해서 그런건 아님. 기본적으로 그들의 부는 금방 얻은거기에 후대에 상실될 염려가 있었음. 그렇기에 옛날 부족으로 보자면 위신을 통해 자손들이 그 자원과 지위를 유지시키게 하는게 중요하니 그만큼 증명해 기존 기득권층에 낄려고 하는 자연스러운 행위임. 

그에 반해 이야기를 통해 빈부격차를 전달받는것은 정보통합과 사회작용에 영향을 끼치는 측두 두정엽접합부 자아인식 및 공감을 책임지는 전방 섬엽을 이용하는만큼 분명 질투는 자아내나 그 강도가 덜하고, 심지어 그런 부에 대한 호기심까지 자아냄. 여기에 질투보다 더 강하고 오래된 상위의 개념을 동원했음. 공포와 항상성.


4. 질투 억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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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원형은 약 6억년전인 무척추동물에서 나타나는것으로 알려져있음. 곤충, 지렁이, 갑각류등이 생명에 위협을 끼칠수 있는것에 떠는 행태나 충격이 오면 빠지는게 대표적. 뇌에서 세로토닌, 도파민, 옥토파민이 작용.

그리고 4억년전인 어류와 양서류에서는 확실한 공포에 따른 행동을 하는데 위협을 느낄시 몸이 정지되거나, 도망가거나, 숨는등의 행동을 함.

인간의 경우 조금 더 복잡해서 이 기본 바탕에 더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 고립 또는 지위 상실같은 실제 육체를 위협하진 않지만 상징적 두려움 또한 편도체와 HPA 회로를 통해 활성화되나 포유류의 경우 전전두엽 피질이 이걸 억제하기도 증폭시키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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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외 에너지 보존인데 모든 생물 아니 수십억년전에 탄생한 최초의 미생물부터 에너지를 통해 굴러감. 결국 사람이 음식을 먹는것도 에너지 섭취의 방식이고.

그리고 에너지는 무한한것이 아니기에 에너지가 적은 환경에 있으면 동면 상태로 들어감. 이게 원초적인 형태의 굳이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 낭비를 안하는 생물의 습성. 

그리고 대략 6억년에서 4억년 전 즈음해서 뉴런이 형성되고 단순히 동면에 들어가는것이 아니라 여러번의 시도가 실패할시 행동을 변화하는 쪽으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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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류의 경우 어류보다 좀 더 진화해서 단순히 순간의 행동만을 교정하는것이 아니라 감정의 분위기마저 바꾸게 됨. 이는 뇌의 편도체나 해마와 같은 변연계가 전전두엽 피질과 상호작용해 심지어 위협이 사라졌음에도 부정적인 감정 상태로 변화시킴.

예컨대 개가 여러번 탈출하려다가도 막히고 계속된 전기 쇼크를 받을시 나중에 탈출할 방법이 있어도  수동적인 상태로 바뀌며 조용히 누워있고 시도조차 안 함. 이게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스티븐 마이어가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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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인간의 경우 의미와 장기 인식에서조차 이것이 강하게 발현됨. 전전두피질은 계속 실패를 겪을 경우 자기에게 ' 나에게 왜 이런일이 닥치는가 ' 또는 ' 해봐야 소용없다 ' 라거나 ' 세상은 불공평하다 ' 라는 자문을 하게끔 해 자신의 정체성으로 각인시켜 보다 자포자기하게끔 만듬.

또한 장기 인식 즉 기억이나 계획에서도 영향을 끼침. 해마나 전전두피질은 항상 에너지가 부족한 환경이었다보니 즉각적 생존을 우선시하며 한 두번의 실패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음.

통제 불가능의 상황에서 큰 실패를 한다면 ->  ' 다른 미래 상황도 절망적일것이다 ' 라고 뇌가 작용해 이는 노력을 포기하고 미래에 실패가 있을것이라고 각인시킴. 그리고 이는 종종 만성 우울증으로 발전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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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는 부족시절에 강력한 맹수에게 덤벼들어 죽음을 재촉하는걸 방지해 생존율을 높여주는 생존 메커니즘이였음. 특히 그 시절엔 자원이 얼마 없어 허투루 칼로리 낭비를 하면 타격이었기에.

그러나 이는 동시에 농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왕으로 등극한 부족장이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강요시키기 위해 그대로 이용될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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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조그만 부족시기 집단의 생존을 저해할수 있는 지나친 갈취나 독점 행위에 대한 질투를 그걸 뛰어넘는 본능인 자신의 생명이 위협이 받을수 있다는 공포와 계속된 실패로 억제. 이는 현대까지도 쓰이는 저항세력 분쇄 기본 공식이며 신분제가 그토록 오래 유지된 이유임.

그리고 왕정 더 나아가 제국은 이런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고착화해 이러나 저러나 죽는다 -> 반란으로 가지 않게끔 최소한의 당근 ( 입에 풀칠할 음식 ) 과 채찍 ( 반란에 대한 반복적 징벌 ) 로 부족원들의 눈치를 보던 부족장이 절대자로 변모한거임. 그러나 민주주의에 의해 정치는 왕국과 제국에서 부족적 메커니즘으로 회귀.



5. 민주주의와 기술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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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 또는 민주주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등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의회가 존재하는 대의 민주주의 원류는 아주 원초적인 개념까지 따지면 초기 인도 유럽인들이 전쟁과 법률을 결정하는 부족회의.

의회 민주주의의 직접적인 조상을 찾자면 게르만 부족들 시절 전사들과 자유민들로 이루어진 성인 남성들이 지도자를 선출하고 주요사안에 대해 논하는것에서 시작했고 보통 공훈을 많이 세운 엘리트 전사와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의 발언권이 더 강력했음.

그리고 표라기보다는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크고 누구의 제안이 더 많은 부족원들의 갈채를 받는가 이런거에 가까웠음.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게르만족들이 서유럽을 제패하면서 이 정치 방식 또한 그대로 이식되었음. 물론 변형된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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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존재하지만 초기에는 압도적인 절대자보다 대귀족들중 으뜸정도의 느낌인것도 이런 부족적 전통과 이들을 제압할 자원의 부족에 기인함. 나중에 존 왕이 전쟁에 계속 패배해 프랑스 땅을 대거 상실하자 현대 민주주의 기반이라는 마그나 카르타를 작성.

다만 그 이후에 장미전쟁등으로 귀족들이 서로 죽이면서 다시 영국의 왕실이 강력해짐. 그러다가 또다시 세금 문제로 충돌해 왕을 처형하고 크롬웰이 취임하고 나중에 왕실이 복귀되었다가 명예혁명을 겪는등 이리저리 난항을 겪지만 여기서 주의해야할점은 의회는 일반 대중을 위한게 아니었음.

기존에는 소숫점에 지나지 않은 귀족과 성직자들이 귀족원에 시몽 드 몽포르가 좀 더 확대한게 각 지역에서 2명의 기사와 도시민중에서도 부유한 상인, 길드장등이 서민원에 합류하는것으로 기껏해야 전체 인구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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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등에게 더 개방되었다는 1500-1700년대까지도 최소 연간 40 실링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토지를 소유해야만 했는데 이 기준에 만족하는 성인 남성은 2-3% 남짓이었고.

그러다보니 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이자 전 영국식민지였던 미국 국회도 본질적으로는 ' 백인 남성 + 지주 ' 란 조건을 만족하는 최소 중상류층 이상에 나름 식자층들의 모임에 가까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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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당수 건국의 아버지들이 이상적으로 여겼던 미국은 앵글로 색슨 백인 엘리트들이 지도하고 그 밑에서 농민들은 순종적으로 일을 하며 유럽과 무역이나 하는 평화롭고 목가적인 농업 국가였음. 즉 대중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제국을 위한 정치제도가 아니란거.


물론 금융과 산업을 통해 경제 발전을 추구해야한다는 알렉산더 해밀턴 정도를 제외하면. 즉 현대 미국의 모습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바랬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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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이는 중우정치등에 대해 경계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놓은 안전장치기도 했음. 그러나 이들은 분명 혜안이 있었음에도 점쟁이까진 아니라서 두가지를 간과했음. 정치 제도 변화와 기술 발전.

도널드 트럼프가 존경한다는 대통령인 미국의 전쟁영웅이자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겐 학살자였던 앤드루 잭슨이 엘리트 배경이 아니었던만큼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백인 남성에게도 투표권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

이러다보니 기존 미국 동부 엘리트들과 지주들의 지도하에굴러가야 했던 미국 정치는 급격한 변동을 겪게 됨. 또한 이들이 크게 간과한것은 기술 변화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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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까지만해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데는 보통 2달에서 길면 3달도 걸렸고 1500년에서 1780년까지 약 300년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는 기껏해야 70-100만명 정도로 추정됨.

그에 비해 1800년부터 1900년대초까지 3000만명이 넘는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에 이민. 미국은 독일부터 아일랜드 그리고 이탈리아까지 기존 앵글로 색슨 위주의 사회가 도저히 유지될수 없었음. 이는 기존 선박으로 6주에서 10주가 걸리던 항해가 증기선을 통해 1주 내지 5일로 줄은거에 크게 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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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큰 미국 땅덩이상 권한이 약하고 엘리트가 주도하는 연방 정부와 지주와 토호들이 주도하며 자치권을 가지던 주란 구상 또한 철도와 전신등 운송 및 통신 수단으로 어그러짐.

1840년대 마차로 미국 동부에서 서부 오레건까지 가는데 무려 4개월에서 6개월이 걸렸음. 철도가 완공된 1890년- 1900년에는 그게 고작 4일에서 5일로 30배에서 40배의 기간이 단축됨.

또한 1800년도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편지로 소식을 전하는데 3일에서 5일, 뉴올리언스까지는 2주에서 3주, 1849년도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2달에서 3달이 걸렸음.

 그러나 1890년 1900년 전신기의 등장 이후 이는 분초 단위로 바뀜. 이는 이전에 거리에 의한 소통 단절로 조직화할수 없던 전근대와 다르게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조직 행동이 가능해짐. 반대로 지배자 또한 빠르게 진압 병력를 투입할수 있어 연방 정부의 힘 또한 더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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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본토가 작은만큼 미국 수준의 혁명적 변화는 아니었으나 산업혁명과 함께 자본가 세력이 대두되었고 이 자본가그리고 자본가에 고용된 수백만의 노동자 계층의 힘이 커지며 점진적 변화를 겪게 됨.

1832년 기존 토지 보유 영국 남성을 포함해 도시에 연간 10파운드 이상의 월세를 창출하는 주택과 상점을 가진 남성 또한 편입. 즉 지주, 상인, 자본가, 변호사, 의사등.

1867년에는 도시 노동자 성인 남성들 그리고 1884년에는 시골의 소작농과 광부까지 투표권을 얻게 되고 1918년에는 어느정도 자산을 가지거나 결혼한 30세 이상 여성들도 투표가 가능해지게 됨. 얼마 안지나 노동당이 자유당을 대체하기 시작하고 1928년에는 모든 성인 남녀가 투표권을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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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대 평균 근무시간 연 3500시간에 육박했던 영국 ]

그리고 이 자유당을 노동당이 대체한것에서 볼 수 있듯, 노동자들의 권익 주장과 발언권이 강해졌는데 이는 당시 서구 전반에 만연한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이 이런 노동자들이 정치에 본격 관심을 가지는 배경이 됨. 

전근대 대귀족이나 왕족보다 더 많은 자본을 쌓게 된것도 있지만, 사실 노동자의 근무 조건만 본다면 19세기 초중반보다는 20세기초가 나았음. 그러나 19세기 초반까지만해도 상류층과 전문직 일부만이 정치에 참여 가능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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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달라진 점은 국가 정책의 키를 노동자들이 쥘 수 있게 되었다는거고 설령 부가 증가해 칼로리를 보장 받아도 뇌는 여전히 항시 칼로리가 부족했던 부족 시절 뇌랑 다를게 없기에 배가 부르다해도 불평등은 곧 자신과 자기 자식에 대한 위협으로 뇌는 인지.

 게다가 이전 공포 및 무력함을 각인 시키는 왕정이나 귀족정의 족쇄가 풀려 대중민주주의는 이전 발성이 좋고 갈채를 받던 부족 회의 확장판으로 전환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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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에서 말했듯 이는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함께 문명 시작 이래 지배계층에 억눌려왔던 인간의 본능인 빈부격차로 인한 부자에 대한 불만과 질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는것이었고.

이에 더해 21세기에 더욱 심해진것이 SNS의 등장임. 앞에서 얘기했듯 단순 이야기로 듣거나 글로 읽는 불평등은 보다 뇌의 추상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고작 수십만년에 지나지 않으나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동영상등은 마치 실제 눈앞에서 보는 현실과 유사하기고 근원을 따지면 수천만년에서 수억년 단위기에 보다 더욱 격렬한 혐오나 질투를 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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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부자가 되면 안된다: SNS에서 시각적으로 노출되는 빈부격차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 증가 ]

유튜브나 틱톡등이 책이나 신문보다 인기가 끄는것도 이런거 때문이고 다만 문제는 이는 이성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상대적으로 감퇴시키고 그렇기에 많은 부자나 엘리트들은 책이나 신문등을 선호하기도 하는 이유.

그리고 이는 애초에 글은 지극히 최근인 반면 시각은 훨씬 오래되었기 때문. 옛날 전근대 심지어 또는 근대조차 민중 대다수는 이야기 또는 글자 매체로 상상만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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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스크 재산이 미국인 중위 재산 약 400만배에 달한다는 기사 ]

그러나 부자들의 생활이나 삶을 이제 눈으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보게 되며 훨씬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됨.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출산율 감소에도 심각한 영향.

실제로 양극화가 심해지기도 해서 이전과 같은 역대급 부자들은 덜 등장하는편이지만 일반인과 부자들의 자산 격차는 수만배에서 심하면 수백만배까지도 벌어짐. 전근대 왕과 평민조차 이 정도 격차는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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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규모상으로는 부족을 애진작 탈피하고 국가 또는 제국 마인드로 굴러가야 될 국가들이 이전 부족시절의 메커니즘으로 회귀해 포퓰리스트들이 떠오르는것.

결국 민주주의 국가들 전반에 기득권과 부자에 대한 증오가 정치의 원동력이 되버림. 이걸 없앨려면 계속 자신의 부와 지위가 상승할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이 있어야 하나 저성장과 양극화로 많이 퇴색된지 오래.


4 Comments
김개동 09.12 22:31  
슬로건은 정의니 평등이니 하지만 그런 정치운동을 추동하는 감정은 대부분 질투에 불과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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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앤모티 09.13 13:12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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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애솔 09.13 22:21  
인간이 현재까지 찾아낸, 그나마 제일 좋은 제도가 민주주의임.
부자에게 적대심을 갖고 재분배니 뭐니 이딴소리 시작한게 누구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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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햄 09.14 17:5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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