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왕의 사후 묘호인 '조(祖)'와 '종(宗)'은 창업과 수성(守成)의 공덕에 따라 구분되며, 건국이나 국가 위기 극복(조) 혹은 안정적인 통치(종)를 의미한다. 초기에는 창업 군주가 '조', 이외는 '종'이었으나, 이후 세조 등 반정이나 공로가 있는 경우 '조'를 칭하며 권위를 높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조선 시대 조(祖)와 종(宗)의 차이 및 주요 왕
조(祖): 나라를 처음 세우거나(태조), 위기를 극복하여 왕실을 다시 일으킨 공(정통성 재확립)이 큰 왕에게 붙여진다.
주요 예시: 태조(건국), 세조(계유정난), 선조(임진왜란), 인조(반정), 영조, 정조, 순조 등.
종(宗): 덕을 쌓아 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거나 문물을 정비한 왕에게 붙여진다.
주요 예시: 태종, 세종, 성종 등.
차이점: '조'는 창업 및 공로, '종'은 덕과 수성을 강조하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권 강화나 명분론에 따라 '조'를 쓰는 경우가 증가하였다.
기타: 왕위에서 쫓겨난 경우 '군(君)'(연산군, 광해군)으로 호칭된다.
조선시대 묘호는 사후에 신하들이 왕의 업적을 평가하여 종묘에 모실 때 결정되었다
[@FM2026]
저는 가끔 생각 하는게 세조가 계유정난 해서 세조-예종-성종-연산-중종-인종-명종-선조 까지 안갔으면 이순신 장군이 그렇게 발탁이 됐을까 싶음... 이순신 장군이 그렇게 특진 할 수 있었던 건 암군이지만 사람 보는 눈은 있었던 선조가 아니였다면 그리 특진해서 임진왜란을 평정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해봄ㅋㅋㅋ 단종에서 이어진 왕조에서 뽑아서 등용 했을 수 도 있었겠지만 그건 알 수가 없으니까요
[@하앍]
명분,패륜-있지도 않은 권신(?)을 들먹이며 조카 끌어내림. 그렇게 해서 올라가서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군주였던 아버지 세종과 그에 준하는 유전충 형 문종이 해놓은 거 사실상 거의 전부 백지화해서 시간 지나서 중기에 꽃 필수 있었던 조선의 성리학적 관료제 시스템 개박살냄.(집현전 폐지)
진관체제를 완성시킴으로써 혹여나 있을 대규모 군사 쿠데타 원천 차단 및 진관체제 단점에 대한 여파로 딱 백년만에 임진왜란도 아니고 을묘왜변으로 개박살남 보법(군역에 대한 경제지원시스템) 체제가 망가짐으로써 군역에 대한 부담이 늘며 유민 증가. 즉 세조가 없었으면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이 혼자 하드캐리할 상황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확률 높음.
일천즉천제도로 과장이지만 조선은 노비가 70&가 넘었다는 말까지 나오게 한 원흉
공신세력 챙겨주기 위해 시대에 맞지않게 잘 굴러가고 꽤 공정했고 정리가 잘 됐던 지방통치체제를 제대로 붕괴시켜 지방수령들을 그저 권신들의 뒷주머니 용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시초.
제도에서 그냥 살인-사형 이런식으로 정리해서 안 그래도 전례가 중요했던 성리학 시스템 국가 조선에서
그냥 전례니까 그대로 유지해라 하는 개막장식 법제도 고착화 전례.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세조가 없었고 그대로 평군만 나왔어도 조선 중기 이순신,권율,김시민,류성룡,윤두수,이항복,이덕형 등등이 잇몸 작살날 각오로 악물고 하드캐리 안 하고 어 왜놈이 20만이 왔어? 그럼 어디 한 번 제대로 막아볼까 하고 경상도 라인에서 막을 수 있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