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래서 촉나라는 인구가 백만이어도 1차북벌 이후에는 20만 명 동원이 불가능했던 것이, 초록색 사천분지가 제법 넓기는해도 그것만으로는 식량보급이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오나라는 무릉평원이랑 동정호 평원, 단양~오군일대에 경작면적이 제법 되었지만 이 단양~오군 일대는 장강 근처를 벗어나면 그냥 미개발 황무지들이었습니다.
오나라는 거기다 세습령병제라는 문제점때문에 국력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존망의 위기인 적벽대전 때도 우리가 흔히 아는 12맹장(정봉은 그 때 없었지만)중에 4명밖에 참가안하고 병력동원도 3만명밖에 안되죠. 나머지는 남쪽 토착민들 쫓아내고 대치하느라 나머지 아까운 장수들과 군력을 소모하고 있었죠.
[@스미스]
그렇긴한데 가장 위쪽 유주는 뻑하면 기마이민족들이랑 전투나서 위나라 조정에서 도움줘야할 정도로 오히려 식량이 소모되는 곳이고, 삐죽 튀어나온 산동반도(청주 동쪽)지역은 발해만의 해적때문에 노상 털리고, 그 밑에 해안선을 따라가는 서주는 조조가 대학살 3번 저질러서 인구 반토막나고 달래주기 바빴습니다. 그렇다해도 곳곳에 군둔이 있어서 군용식량 보급을 했고 유주 왼쪽의 기주와 저 위나라 영토 한가운데 연주, 파란 형주와 오렌지 동오 사이 붉은 지역인 예주에서 어마어마하게 식량이 생산되었기에 중원을 차지한 나라의 군사적 저력이 유지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