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미스터리 > 미스터리
미스터리

36 vs 800 신화를 만든 대한민국 국군의 베티고지 전투

에그몽 3 937
2.png 36 vs 800 신화를 만든 대한민국 국군의 베티고지 전투
 

베티고지 전투 (1953.7.15~1953.7.16)

베티 고지는 6.25전쟁 당시 서부전선의 요충지로 북쪽으로는 육로뿐이라 

중공군과 인민군은 손쉽게 병력을 투입할수있었지만 국군은

임진강을 도하해야하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 베티고지는 반드시 사수해야하는 고지였습니다.


1.jpg 36 vs 800 신화를 만든 대한민국 국군의 베티고지 전투

<베티고지 전투를 지휘했던 소대장 김만술 소위>

김만술 소위가 이끄는 국군 1사단 11연대 2대대 6중대 2소대는 베티고지 사수임무를 부여받고 

35명의 소대원과 함께 베티고지로 투입됩니다. 

김만술 소위의 소대가 투입될 당시 베티고지의 동봉과 중앙봉은 국군이 점령한 상태였으나

서봉은 아직 중공군이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김만술 소위는 전투에 앞서 소대원에게 이런말을 했다고합니다.

"비겁한 자는 평생에 여러번 죽지만 용감한 자는 오직 한번만 죽는다고했다. 군인이 용기를 갖지못하고

비굴하게 살아남는다면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두고 두고 남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산다." 

3.jpg 36 vs 800 신화를 만든 대한민국 국군의 베티고지 전투

 
<베티고지를 묘사한 삽화>

김만술 소위는 서봉을 공격하였으나 국군의 병력은 36명 1개소대에 불과했고 

중공군은 800여명 2개대대의 병력으로 이내 국군을 포위합니다. 

하지만 김만술 소위는 포기하지않고 포위망을 탈출해 중앙봉으로 후퇴, 방어전을 실시합니다.

이후 18시간동안 고지를 9번 뺏고 빼앗기는 사투를 벌였고 다음 소대와 진지교대를 하는순간까지 

고지를 사수하였습니다.

전투가 끝난후 소대의 생존자는 김만술 소위를 포함해 12명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은 314명이 전사하고 8명이 포로로 잡히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김만술 소위는 베티고지 전투의 공로로 2계급 특진과 함께 태극무공훈장,미군 십자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3 Comments
상의만입은곰돌이푸 2021.10.06 00:00  
넷플릭스에서 만들어서



짱꺠놈들 보기좋게
불법스트리밍으로 지들 역사를 보게 해주면 좋겠다

럭키포인트 26,406 개이득

NationalTaxServ… 2021.10.18 13:33  
[@상의만입은곰돌이푸] +1

럭키포인트 23,397 개이득

힐노예 2021.10.07 12:01  
ㄹㅇ 현실이 더 픽션같네...
저게 가능한거야? ㄷㄷ
서로 화력무장차이가 심했나?

럭키포인트 5,878 개이득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