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해안도시라서 가능한 것도 한몫하죠. 3세기면 큰 배라고 해봐야 원양 항해는 어림도 없고 해안선이 보이는 수준에서 중간중간 무한 기항하면서 장거리 무역하는 방식이라서, 바람만 좀 안맞아도 망하고 빠르지도 않으니 유사시를 대비해서 육지가 안보이는 거리까지 벌릴 수도 없는 초기적인 항해무역이죠.
일단 북아프리카라면 카이로->수에즈->메카를 거쳐서 아덴만으로 삐져나와서 사람하나 없는 페르시아만 해안선 따라서 조심조심 가다가 겨우 오만의 무스카트까지 가고, 유럽 쪽에서 오더라도 지중해 건너서 중동의 바그다드를 거치고 페르시아 최심부 바스라 항구에서부터가 시작이죠. 인도 서북부 가장 외진 곳의 카라치를 거쳐서 인도 해안선 다 돌고, 말라카해협까지 어찌어찌가서, 캄보디아부터 베트남의 그 긴 해안선따라서 올라올라가다가, 하이난 섬부터 중국해안선을 따라가서 최소한 항저우까지는 와서야 바람 잘타고 경주까지 종점찍는 식의, 지금의 눈으로 보면 비효율의 극치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렇게하는게 유일한 동방<->서방의 교역방법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