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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장문주의] 유교적 문화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 방역에 성공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

불량우유 6 2112 4 0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한 한국계 교수가 쓴 글을 퍼와봤어. 비판 대상은 한병철 교수 (한국에서는 '피로사회'라는 책이 한 때 이슈가 되었던)가 한 독일 언론에 기고한 글에 담겨진 유럽 학자들의 '유교주의 (confisuanism)'야.   

 

한국, 혹은 타 아시아 국가의 방역 성공을 유교주의적, 전체주의적 시각으로 폄하하는 유럽쪽 학계, 언론의 입장에 불편함을 느꼈다면 한번 읽어보고 헛소리 마셈! 하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세 줄 요악 붙여 놓았으니 읽기 귀찮거나 급한 게이들은 바로 아래로 가도 됨! >.^

 


 

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 방역에 성공한 이유를 설명하는 한병철교수의 글. 독일의 보수신문 디벨트지에 기고한 글을 3월에 읽고 공유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는데 박노자선생님이 올리셨다. 이 글 중의 가장 어이없는 문단이다.

 

"유럽과 비교할 때 아시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전염병 퇴치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증명된 체제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일본, 한국, 중국, 홍콩, 타이완 또는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들은 이미 문화적 요인(유교) 때문에 권위주의적이다. 주민들은 유럽인들보다 순정적이고 온순하다. 그들은 국가를 신뢰한다. 그리고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또는 일본에서도 일상생활이 근본적으로 엄격하게 짜여져 있다. 특히 아시아인들은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감시기제를 대규모 사용한다. 그들은 빅데이터에 전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짐작한다."
"Was für Systemvorteile hat Asien gegenüber Europa, die sich als positiv für die Bekämpfung der Epidemie erweisen? Staaten wie Japan, Korea, China, Hongkong, Taiwan oder Singapur, sind, schon kulturell bedingt (Konfuzianismus), autoritär. Die Menschen sind folg- und gehorsamer als in Europa. Sie haben mehr Vertrauen in den Staat. Und das Alltagsleben ist wesentlich strenger organisiert, nicht nur in China, sondern auch in Korea oder Japan. Vor allem setzen die Asiaten gegen das Virus massiv auf die digitale Überwachung. In Big Data vermuten sie ein riesiges Potential gegen die Epidemie."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아시아를 어느 정도 안다면 이런 식 표현은 못한다. 1990년대 전반 "문명의 충돌"이라는 표현을 동원해서, 앞으로의 세계는 동아시아, 일본을 제외한 유교문화권이 이슬람문화권과 연대해서 서구 기독교문화권과 충돌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고 예언한 사뮤엘 헌팅턴 정도나 사용하는 표현이다. 코로나가 정말 여러 사람의 민낮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유럽과 아시아 간의 간문화적 지성사에 대한 공부가 조금이라도 되어 있다면 이런 이야기는 절대로 쓸 수 없었을텐데...


동아시아인들이 유교문화 때문에 권위주의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지성사적 근원을 찾아 17세기까지 돌아가 보아야 한다.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유럽인들에게 중국이 유럽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설명하면서 들었던 근거가 바로 공자와 맹자에 가르침으로 요약되는 유교라고 전했다. 반면 성리학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오염되었다고 배척했었다. 예수회 선교전략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중국사람들은 공자와 맹자의 유교 가르침은 도덕, 즉 실천철학이며 그들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중국사람들의 도덕이 아주 높다고 전했다. 윤리도덕의 면에서는 중국이 유럽보다 더 높다고. 그들의 책을 읽은 유럽의 철학자들의 반응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예수회의 선교전략을 지지하는 그룹과 그것을 반대하는 그룹, 그것은 중국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둘러 싼 논쟁이 아니라 바티칸에서의 주도권을 둘러 싼 싸움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전례문제에 관한 논쟁으로 알고 있는 예수회와 도미니크 수도회 등 다른 수도회 간의 세력다툼의 전모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 놓은 동아시아를 설명하는 공식 [동아시아=유교]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동아시아를 보는 유럽인들의 선입견/편견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회 선교사들이 유교문화=권위주의 공식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것은 칸트에 의해 "자연과 이성"이 분리된 18세기 중반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18세기 중반까지는 오히려 유교가 지배하는 중국을 이상적인 국가모델로 보는 경향이 더 강했다. 특히 중국사회가 유교 교육 때문에 높은 윤리도덕을 가지고 있는 사회라는 설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철학자들 사이에서 "중국풍"이 불었었다.


크리스티안 볼프와 같은 철학자는 왕이 중국의 왕처럼 현명한 계몽군주가 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중국의 왕실에서처럼 왕자들을 제대로 교육할 체계를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계층이 강력한 정치적 집단으로 성장한 영국 프랑스와 달리 아직 시민계층이 강하지 못하고 반면 귀족이 여전히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프러시아에서의 계몽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계몽군주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당시 프러시아의 황태자였던 프리드리히 대제의 가정교사가 볼프의 제자였다. 프리드리히 대제가 왕으로 등극한 후 첫 번째 내린 결정이 마부르크대학으로 망명가 있던 크리스티안 볼프를 다시 모셔오는 일이었다. 볼프는 1721년에 할레대학 학장의 이취임식 자리에서 공자가 모세, 예수와 같이 인류문명에 위대한 사람이라고 설명한 "중국의 실천철학에 관한 강의"를 했고, 이 강의를 핑계로 학내에서 그를 싫어하던 경건주의자들이 왕을 부추켜서 1723년에 볼프를 프러시아에서 추방했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 왕이 지식인을 핍박한다는 항의가 일었고, 볼프는 이미 초빙의뢰를 받았던 마부르크대학으로 갔다. 이 싸움의 실제 배경은 중국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당시 신생대학이었던 할레 대학의 학내문제였다. 자신의 제자에게 자리를 주려는 교수들 간의 세력싸움에서 최종적으로는 볼프가 밀린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대제의 즉위와 함께 금위환향한 볼프는 할레에서 가장 좋은 지역에 집을 짓고 당대 가장 영향력있는 사상가로 삶을 영위했다. 그는 칸트 이전의 독일 철학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철학자였다. 그의 영향 하에 중국의 왕은 이상적인 계몽군주의 모델이었다.


중국과 유교를 보는 초기계몽시기의 패러다임이 변한 것은 18세기 중반 이후 유럽의 지식인들이 계몽군주의 개혁역량에 실망하고, 자유주의 사상이 부상하면서 일어났다. 프랑스에서는 몽테스키외, 독일에서는 칸트의 등장과 겹쳐진다.


칸트의 철학이 그 때까지 독일철학, 특히 정치사상을 지배하던 볼프철학을 극복하는 첫 단계는 자연과 이성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자연과 이성의 분리는 칸트에게 중국을 보는 시각에도 전환을 가져왔다. 1764년에 칸트가 대학에서 지리학을 강의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중국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오래 된 문명과 높은 도덕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긍정적으로 설명했다. 당시 칸트에게서 지리학 강의를 들었던 헤르더가 깨알같이 써 내려간 칸트의 지리학 강의노트를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1763년 64년에 헤르더는 대학에서 칸트의 강의를 들었고, 그 때 수업 중에 정리한 것이 지금도 국립중앙도서관 헤르더 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1772년에 다른 학생이 정리한 강의노트를 보면 칸트가 중국과 공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칸트는 그가 왜 자신이 그 이전에 했던 것과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그즘에 당시에 읽었던 책 중에 새로 나온 세계여행기들과 그를 바탕으로 쓰여진 세계사를 읽고 거기에 나온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사실로 믿은 것 같다고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18세기 전반에도 이런 여행기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고서가 더 많이 읽혀졌었다. 그러나 1772년이면 예수회는 바티간 내의 권력다툼에서 완전히 패하고 해산되기 직전이었다.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전달해 줄 지식인이 유럽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18세가 중반 이후 칸트를 비롯한 유럽의 지식인들이 예수회 선교사들이 출판한 중국과 유교에 관한 저술 보다 상인이나 모험가들이 쓴 중국여행기를 선호했다. 그 이유는 그런 여행기에 등장한 중국의 선창가 모습에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본토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광동의 항구에서 외국인에게 허락된 몇 개의 거리만 걸어본 상인 모험가들이 이야기해 주는 중국은 전제군주가 지배하고 먹고 살기 어려운 주민들은 자식과 아내마저 팔아먹는 험악한 곳이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칸트와 같은 대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 국가의 수도에서 몇 십년씩 지내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공부한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고서보다 단지 몇주, 또는 몇달 동안 중국의 선창가만 다녀온 사람들의 보고서를 더 신뢰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18세기 당시에는 단지 그곳에 가서 자기 눈으로 보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권위를 가지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칸트가 여행가들의 보고서를 완전히 믿었다고는 볼 수 없다. 만일 그랬다면 중국인의 피부색이 노랗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었다. 칸트는 북경의 관료들과 지식인들을 만난 선교사들이 중국인은 유럽인처럼 피부가 하얗다고 설명한 보고서와, 항구의 선창가에서 일하는 중국인들만 본 상인들이 중국인들의 피부가 검다고 설명한 여행기를 종합해서 중국인들의 피부는 노랗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럽 지성사에서 처음으로 중국인을 황색이라고 분류한 사람이 칸트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설명은 아마도 중국인들이 담즙이 많이 나와서 그럴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자유주의자들이 중국의 왕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군주로 묘사하면서 자기의 군주에게 당신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 했다. 그들은 실제 중국의 왕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유럽의 왕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모델로 중국의 전제군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아직 이성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제군주의 통치 하에도 살수 있지만 유럽인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대학에서 칸트의 지리학 강의를 듣고 중국에 열광했던 헤르더에게서도 이런 변화를 볼 수 있다. 유럽 지성사에서 중국과 유교를 보는 패러다임이 변화한 것이다. "중국=유교=전제군주=규율=억압=순종=근면" 이런 공식이 그 후 정착되었다. 헤겔이 중국의 역사를 정체된 것으로 설명하는 사상사적 뿌리가 여기에 놓여 있었다.


결국 동아시아를 유교문화로 규정하는 유럽인들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동아시아의 현실과 전혀 상관없이 유럽 내의 정치역학과 사상논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유럽의 정치사상사를 간문화적 시각에서 접근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8세기 중반 이후 유럽 사상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유교에 관한 패러다임이 근대화를 추구하는 동아시아의 지식인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그 선입견을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양분을 얻고 있다. 코로나와 관련해 유교문화를 언급하는 동아시아의 지식인이 있다면 그들도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유교문화 #DieWelt

 

* 글을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다. 내 교수자격 논문인 책 "Anti-Europa" 첫번째 파트에서 다루었던 이야기이다. 이제는 정말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야 할 것 같다.


** Die Welt지의 기사가 첨부된 글을 공유하면 그 기사면 확산되어서 아예 기사를 빼고 글을 다시 올린다.

 


 

세 줄 요약

 

1) 유럽인들의 편견인 [동아시아=유교]는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2) 이러한 유럽인들의 시각은 실상 현실과 상관없이 자기들간의 정치역학과 사상논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ex. 수도회 간의 주도권 다툼)

3) 즉 유럽과 아시아 간의 간문화적 지성사에 대해 아는 사람이면 동아시의의 업적이 유교 문화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절대 하지 못한다

 

 

 

- 내가 쓴 글 아닙니다.... 내용과 문체에 대해 나한테 너무 욕하지 마세요 힘들어염...

-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쌍욕하고 싸우진 맙시다. 유럽쪽, 혹은 서양의 편견 - 특히 유교주의 (Confucianism)에 대한 비판이라 한번 가져와 봤읍니다. 


[펌]

Best Comment

BEST 1 병재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유럽새끼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위생이 더러운지 명확하게 알게 됐지
6 Comments
병재 2020.04.29 21:27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유럽새끼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위생이 더러운지 명확하게 알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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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 2020.04.29 21:40  
중국의 귀족들과 교류하며 몇년에 걸쳐 실질적인 문화를 전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이 시대적흐름에 의해 퇴보하고 중국문화를 얘기하는 주체가 몇주, 한달정도 뿐인 상인들로 변하였고 중국평민들과의 교류로 얻어진 정보들은 중국이미지를 나쁘게할만큼의 충분한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편견된 중국의 나쁜 이야기가 유럽의 지식인들에겐 진실여부는 중요한 논쟁거리가 아니었고 자신의 군주를 가르치는 반면교사거리로 치부되면서 이런 잘못된 중국과 유교의 선입견은 지금까지 이르렀다
이런내용인데
이런 배경지식으로 전문가랍시고 각종 전문용어로 동아시아의 현상을 끼워맞춰서 해석하다보니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가 나오는거고 우매한 서구권시민들은 이걸 필터링 없이 받아들이는거지 결국 18세기에 잘못 전달된 선입견하에서의 잘못된 동아시아재해석이 21세기 현재 코로나를 빙자해 또 벌어지고있다는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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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낙지먹고싶다 2020.04.30 03:28  
ㅋㅋ 지덜은 예수쟁이들 머갈 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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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바 2020.04.30 15:20  
출처좀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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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패트리 2020.05.01 01:17  
유럽에 환상가진 사람들은 이기회에 정신좀 차려야지
소매치기도 많고 인종차별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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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2020.05.01 10:11  
좆미개 암내코쟁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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