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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단편소설-

공승연 0 284 0 0

 

어떤 분이 우원이 쓰고 있는 이 이야기가 제임스 호건의 SF 소설 ‘별의 계승자’와 흡사하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래서 며칠 전 그 책을 사서 주말 내 읽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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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는 책을 산 후에 구매리스트에 가도 이런 식으로 나오더라는.

 


결론적으로 상당히 비슷하긴 하다. 두 세가지 주요 포인트에서는 동일한 접근이라고 봐도 되는데 가장 큰 차이라면 이 책에는 화성 관련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1977년, 즉 바이킹의 인면암 사진이 공개되기도 전의 소설임을 감안하면 머 이상할 것도 없는 일. 암튼 이걸 보면서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 써도 아류 소리를 피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잘 쓴 소설을 읽고 먼가 좀 필이 꽂힌 건 사실. 그래서 오늘은 이야기의 배경을 지구로 본격 전환하기 전에 단편소설 형식으로 한번 접근해 볼까 싶다.

 

그들의 마지막 날에 대해.

 

 <기나긴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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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인젝터를 다시 점검해.”

 

두캇 상사의 명령이 떨어졌다. 벌써 세 번이나 점검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나 보다. 젠스는 빈정이 상했지만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저 굵고 낮은 목소리를 등 뒤에서만 들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인데, 2미터의 키와 날아간 얼굴의 반쪽을 지지하고 있는 탄소강 보강재의 칠흑같은 섬찟함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상사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거친 사람이지만 그가 없었다면 제 3 공병대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1백 명이던 인원이 겨우 24명으로 줄어 있었지만, 달티냐 기지가 적의 미사일 공격으로 괴멸되는 와중에 상사의 어울리지 않는 꼼꼼함이 그들을 구해냈다. 아무도 달티냐 기지가 직접 폭격 당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때, 저 지긋지긋한 상사 덕택에 그들은 매일 점호 직전까지 방어 실드를 점검하고 반충격 유체를 재주입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실드는 미사일을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붕의 3분의 1은 잠들었던 대원들이 무기를 챙겨 지하 방공호로 몸을 날릴 1분의 시간 동안 버텨주었다. 나머지는 그대로 내려 앉아 그 아래 잠자던 76명을 암석과 카본, 철, 그리고 실드에서 흘러나온 맥독성 유체의 반죽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말이다.

 

‘다 끝났습니다. 인젝터 이상 없음. 30분 내로 재 발사가 가능합니다’

 

젠스가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옆에서 종일 정비 작업을 같이 한 사리아가 크고 새된 소리로 대답했다. 상사에 대한 사리아의 충성은 단순한 병사의 그것 이상이다. 물론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남자 병사들이 갖는 치기 어린 경쟁심을 그녀는 갖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에게 상사는 제 3 공병대의 위대한 수호신이었고 어쩌다 한번씩 나누던 섹스는 전우애와 존경의 의미였을 뿐 남녀간의 감정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다. 최소한 사리아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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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스는 작업 중이던 언덕 위에서 몸을 일으켜, 발 아래 회색 평원에 솟아오른 기지를 바라보았다. 행성 전체를 합쳐 3천 개나 존재하는 대 미사일 방호기지. 그럼에도 저들이 쏘아대는 미사일의 70% 밖에 격추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30%는 그대로 경작지와 마을, 숲, 그리고 도시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가 아는 것만도 300번의 핵폭발이 있었고, 얼마나 더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걸까…?’

 

아무도 듣지 못하게 혼자 속삭였다고 생각했는데, 시리아가 차갑게 쏘아 붙였다.

 

“또 시작이네 젠스 상병. 전황 브리핑을 들었잖아. 이제 얼마 안 남았다구. 지금까지의 전세를 뒤집어놓을 획기적인 대책이 있다잖아.”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리아는 그 말을 다 믿는단 말이야? 누가 봐도 우리는 적을 제대로 타격하지 못하고 있어. 얼마 동안 이 상태냐구. 지난 주에는 케프리 시가 결국 당했잖아. 케프리의 인구 3천 5백만 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백만도 안돼. 이건 지는 게임이야 결국.”

 

사리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잠시 숨을 몰아 쉬던 그녀는 그러나 의외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아. 지금까지는 그랬다는 거. 하지만 상부에서도 인정했잖아. 계산 착오가 있었다고. 우리 광선 무기는 놈들의 땅에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거. 그걸 아는 상태에서 대책을 세운 거라고.”

 

그런 말들, 어떻게든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정부의 허황된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하지만 젠스는 그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큰 행성에서, 한때 연인이었다가 운명의 전쟁에 같이 징집되어, 3년 동안 수많은 죽음을 함께 겪고, 이제 허리에 개인화기 하나씩 차고 대 미사일 빔의 연료 주입기를 고치고 있는 처지에서 말다툼에서 이겨 본들 대체 무슨 소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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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때마침 다시 다가온 두캇 상사의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스, 사리아! 끝났으면 내려가자. 오늘은 일찍 숙소에 집결해 있으라는 명령이야.”

 

그들은 장비를 주섬주섬 챙겨 일어났다. 사실 적의 미사일 공격에서 제일 안전한 곳은 10 킬로미터쯤 떨어진 숙소가 아니라 방호기지 주변이었다. 그래서 공병대원들은 가급적 기지 인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고칠 것은 찾으면 언제나 있었고, 여름 밤은 노숙을 해도 추울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지붕이 무너지는 악몽에는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차량으로 숙소에 도착한 것은 반시간쯤 후였다. 달티냐 기지의 최첨단 경보 시스템이 무용지물이란 것을 안 이후 3 공병대는 언제나 천으로 된 텐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 텐트가 다른 점이 있다면 천정이 완전히 투명하다는 것, 그래서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오는 미사일의 로켓 화염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찍 발견하기만 하면 미사일의 궤적을 계산해서 안전한 곳까지 옮길 시간은 있었다.

 

지난 3개월 동안 대피한 적은 단 한번,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적의 미사일이 아니라 아무 해도 없는, 오히려 아름답기까지 했던 작은 유성일 뿐이었다.

두캇과 젠스, 사리아가 숙소에 들어왔을 때 이미 그곳에는 21명의 동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방영되고 있지 않은 스크린 앞에 모여서 그들은 평소와 다르게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상사의 굵은 목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모두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의 밝은 표정들에 젠스는 어리둥절했다.

 

그 중 가장 어린 미냐 일병이 흥분해서 외쳤다.

 

“상사님. 신무기요. 사실이래요. 조금 후에 거기에 대한 사령부의 방송이 있을 예정이래요. 우리가 이긴대요!”

 

미냐 일병이 저런 큰 목소리로 말하는 걸 들은 부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18세라고 하지만 15세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앳된 모습. 달티냐 기지의 참사에서 친오빠를 잃었을 때도, 마아니지 숲에서 부대 전원이 길을 잃고 7일간이나 헤매다 결국 파상풍에 걸려 왼손을 절단하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조용히 흐느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이 기대감 속에서 홍조를 띄고 있다…

 

“무슨 소리야. 신무기는 아직 개발 중이라고 하던데?”

 

사리아가 의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3년 동안 속속들이 진짜 군인이 되어 버린 그녀는 연약한 미냐를 좋아하지 않았다. 전투나 임무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어린애일 뿐이라고 늘 투덜거렸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한번은 일찍 죽어야 할 녀석은 죽지도 않는다고 술김에 소리치는 바람에 다른 대원과 주먹 싸움이 벌어진 일도 있다. 그때도 미냐는 아무 말도 없이 웅크리고만 있었다.

 

“아니에요. 다 만들었대요. 오늘 발표한대요’

 

평소와 다른 미냐의 발끈한 말대답에 사리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녀가 뭔가 소리치려는 찰나, 스크린에 환한 불빛이 켜졌다. 두캇, 젠스, 사리아, 미냐 그리고 숙소 안의 모두는 동시에 화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스카리스 대원수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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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었단 말이야…?”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케프리 시의 괴멸에 따른 정부의 붕괴 속에서도 그는 살아남았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미리 녹화된 영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전우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대원수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숙소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겠다. 전쟁은 끝났다!”

 

그리고 그는 마치 반응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젠스와 사리아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두캇 상사조차도, 그 거칠고 기계적인 얼굴에 놀란 빛을 띄우고 있었다. 그러나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3년간 불리한 전황 속에서 우리는 전 인구의 40%를 잃었다. 370 개 지역이 핵공격을 받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자연과 도시는 저 외계의 원수들에게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기술은 저들의 모행성을 공격할 화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젠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대원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니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과학자들은 그런 동안에도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우리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많은 노력과 희생 끝에, 우리는 식민지의 힘을 빌어 우주공간에서 극비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다행히도 얼마 전 그 완성을 볼 수 있었다.”

 

사리아가 화색을 띠며 의기양양하게 젠스를 돌아보았다.

 

스카리스는 계속 말했다. 이런 소식을 전하면서 아무런 표정도 없는 것으로 보아 합성된 영상인 것 같았지만, 그런 것에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더 이상 말로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지금부터 볼 영상은 6시간 전인 정오 무렵에 적 행성을 촬영한 것이다.”

 

그리고는 대원수의 늙은 얼굴이 사라지고, 화면은 노이즈 상태로 변했다. 기껏해야 10초도 되지 않았을 시간이 마치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잠시 후, 너무도 익숙한 적 행성의 추한 모습이 거대한 화면에 가득 나타났다. 이를 본 대원들이 분노와 저주의 신음을 흘렸다.

 

스카리스의 목소리가 배경으로 흘렀다.

 

“이제 행성의 중앙부를 주목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는 다음 순간, 화면의 좌측에서 거대한 붉은색 섬광이 행성을 비치는 듯 했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있던 찰나, 적의 행성 중앙부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너무도 커서 마치 행성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분명히 흔들렸다.

 

그리고는 불길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섬광 맞은 반대편 우측으로 엄청난 양의 파편이 튕겨져 나갔다. 파편의 양이 너무 많아 행성이 통째로 파괴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우주 공간이라 당연한 일이지만 고막을 뚫는 폭음이 들리지 않는 게 어색할 지경이었다.

 

대원들은 눈이 휘둥그래져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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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

 

젠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지만, 역시 충격 속에 영상을 지켜보던 사리아가 자신의 입에 손을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 영상은 6시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을 촬영한 것이다. 우리 과학자들의 신병기에 의해 적의 모행성은 완파되었으며, 핵미사일을 포함 모든 무기는 물론, 행성 표면과 지하의 모든 생명체들도 소멸하였다”

 

합성된 영상인데도 스카리스의 얼굴은 마치 떨리는 것 같았다.

 

“완벽하고 최종적인 승리다. 적은 사라졌고 우리는 이겼다!”

 

그리고는 5초쯤 지났을까. 막사 안에서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미냐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뛰고 있었다. 사리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 눈물이 뺨을 따라 흘러 내렸다. 두캇 상사의 상어 같은 눈에도 분명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전쟁 초기에 가족을 모두 잃고, 얼굴의 반쪽만 남긴 채 복수의 칼을 갈던 그였다. 승리하기 전엔 죽을 자격도 없다는 그, 사실 대부분의 병사들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그런데 젠스는 이상하게도 차분했다. 물론 기뻤다. 다만 실감이 나지 않았던 걸까. 영원할 것 같던 전쟁이 이렇게 싱겁게, 어느 한 순간에, 그것도 우리의 승리로 끝나 버리다니. 1년 전 강화 협상을 위해 중간 지역으로 가던 대표단의 우주선마저 파괴해 버린 저들을 보고 그는 모든 희망을 잃었었다.

 

‘우린 결코 저렇게 잔인할 수는 없을 거다. 우리가 패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야’

 

그 이후 그저 죽지 못해 전투에 참여했을 뿐이고, 명령 때문에 장비들을 수리했을 뿐이며, 이젠 그저 전우애로 변해버린 사리아와의 옛 추억, 그리고 어떻게든 감싸주고 싶었지만 드러내지는 못했던 미냐에 대한 감정 때문에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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