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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단편소설2-

공승연 0 175 0 0

  

그 이후 그저 죽지 못해 전투에 참여했을 뿐이고, 명령 때문에 장비들을 수리했을 뿐이며, 이젠 그저 전우애로 변해버린 사리아와의 옛 추억, 그리고 어떻게든 감싸주고 싶었지만 드러내지는 못했던 미냐에 대한 감정 때문에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겨 버리다니. 저렇게 완벽하게.

 

이런 느낌에 빠져 있는 동안 전우들은 모두 얼싸안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니, 젠스 자신도 이제 그러고 있었다. 핵미사일 한발에 기화해 버린 사일라섬 출신의 여걸 나브란과 안고 뒹굴었고, 책벌레였지만 이제는 누구보다도 강인한 전사가 된 도레프, 그리고 추악한 적의 지상군이 출몰했던 전쟁 중기에 눈앞에서 가족이 도륙당한 사냥꾼 출신의 브란투… 그들 모두와 얼싸안고 쓰러졌다.

 

24명 모두, 아니 죽은 대원들까지 합쳐 젠스 상병이 그 사연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끝났다. 승리와 함께 복수를 이루고 만 거다.

 

흥분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젠스는 사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한쪽 구석에서 두캇 상사와 길고 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풋….’

 

언젠가부터 화면에는 이 승리를 이끌어낸 영광의 신무기가 비춰지고 있었다. 그것은 식민지의 궤도에 떠올려진 거대한 인공위성이었다. 광선무기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형의 내부 반사체를 가급적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저렇게 큰 구조물을 만들어 내다니. 가까이서 물자를 조달할 식민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원들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대원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동안, 왠지 또 차분해진 젠스는 슬그머니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막사 옆의 엄폐물 - 지상군은 이미 오래 전에 물러갔고, 핵공격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을 - 을 지나 그는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작은 언덕으로 혼자 올라갔다. 이 시간이면 육안으로 적의 행성을 볼 수 있다. 어스름해진 하늘의 반대편에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고 그것은 저들 중 하나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번이나 했던 일인데 이상하게 그 녹색 행성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잠시 어리둥절했던 젠스는 방금의 영상을 다시 떠올린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저기 저 볼품없는 붉은 별이 바로 그것이었던 거다. 육지와 생명체는 물론 물과 대기까지도 모조리 증발되어 버린 그 별은 이제 저렇듯 흉하게 타버린 시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이 모든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으로 저 악마들의 시신을 목도한 지금, 이제 더 의심하거나 두려워할 것은 없다. 어딘가에 약간의 잔당이 있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 우리의 상대가 되지는 않는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이 세계의 재건일 뿐이다. 상처를 치유하고 질서를 회복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의 고향 행성 Zion 은 이겼고 또 살아남았다. 그것만으로도 희망은 충분하지 않은가?

 

어느덧 해가 기울면서 언덕 너머 멀리 노을이 지고 있었다. 구리 빛 노을 속에서 그는 조금씩 감상적이 되어 갔다. 이제 막사로 돌아가서 미냐를 찾을 것이다. 그녀를 껴안고는 두캇과 사리아보다 더 격정적인 키스를 할 것이다. 그리고는 함께 시골에서 정착해 작은 과일나무들을 키우며 살고 싶었다. 살아남은 것에감사하고 많은 자손을 남길 것이다.

 

젠스 상병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의 한 구석... 노을은 이제 아름답기 그지없는 금붉은 색을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그때, 그 위에 못 보던 별 하나가 젠스의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지…?”

 

별은 조금씩 커지는 것 같았다. 착각인가…? 호기심 속에서 잠시 바라보고 있던 그는 이내 깨달았다. 커지는 게 아니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유성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쪽에서 작은 섬광이 번뜩였다. 빛은 크지 않았지만 눈이 부실 정도로 환했다. 아마 큰 유성이 대기권에 진입해 폭발한 것이리라.

 

‘참 묘한 우연이군…’

 

젠스는 유성이 사라진 하늘에서 마지막 태양빛을 머금고 뻗쳐 오는 긴 노을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미냐에게 돌아갈 시간이다. 더 늦으면 다른 녀석이 선수를 칠지도 모른다. 수줍은 그녀도 그에게만은 친절했다.

 

하지만 기대감을 품은 채 종종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던 젠스는 몸이 위로 살짝 뜨는 것을 느꼈다. 어지러워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려서 현기증이 난 걸까? 하지만 어지러움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몸이 위아래로 조금씩 떴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지진인가…?’

 

젠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땅이 흔들리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니, 소리라기 보다는 울림이었다. 초저주파 진동 때문에 배와 흉강 내부가 울렁거렸다. 메스꺼워 토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이상한 열기가 훅 하고 뿌려졌다.

 

‘왜 이렇게 덥지…?’

 

젠스는 어느새 혼미해지려는 머리를 들어 해가 지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과는 다른 미쳐버린 노을이, 길게, 서서히, 거대한 불길이 되어 온 세상을 덮쳐오고 있었다.


 





그는 무겁고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본능적으로 막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안에서는 누가 틀었는지 흥겨운 음악이 크게 들려 왔다. 하지만 음악소리는 점점 커지는 압도적인 진동음에 이내 묻혀 갔다.

 

그는 막사를 향해 소리치려 했다. 사리아, 미냐, 상사님…

 

하지만 그러기엔 등이 너무 뜨거웠고 입은 이미 바짝 말라 있었다. 다음 순간 젠스는 그만 땅바닥에 던져지듯 나뒹굴고 말았다. 군복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벌거벗은 채였다. 머리카락도 이미 타버리고 없었다. 무력감과 함께 심한 통증이 엄습했지만, 바닥에서 뒹굴면서도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온 힘을 다 했다.

 

그 순간, 젠스는 기적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이내 머리 속에서 기억이 하나씩 지워져 갔다. 어머니와 아버지,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 사리아와의 설레는 만남, 전쟁의 발발, 수많은 전투와 임무, 동료들의 죽음, 승리의 기쁨.

 

그리고 마냐에 대한 애정과 조금 전의 그 유성까지도.

 

…이제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기나긴 노을> 끝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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