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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혐주의] 일본에서 일어난 최악의 강력범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나성범 29 9582

※본 글에서는 납치, 감금, 고문, 강간, 살인, 시체유기에 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개인에 따라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으니 정말 거부감을 갖고 계신 분께선 지금이라도 나가시는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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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전문

1. 사건의 발단

2. 전개

-11.27

-11.30

-12.5

-12.6

-12.7

-1.4

-1.5

3. 결말

-세상에 공개되다

-부검결과 및 사인

-피해자, 가해자의 반응과 기레기의 만행

-사회적 충격

-가해자 신상

-판결

-가해행위

참고

-장례식 영상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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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시대의 마지막 해인 1989년, 전일본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한 사건이 공개된다. 


사건번호 헤이세이 21058, 女子高生コンクリート詰め殺人事件(여고생 콘크리트 포장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피해자-후루타 준코.jpg [극혐주의] 일본에서 일어난 최악의 강력범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피해자 
古田順子(후루타 준코)


피해자 후루타 준코는 사건 당시 고교 졸업과 취업을 앞둔 만 17세의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1988년 11월 25일, 극악한 가해자들에 의해 납치된 후 1989년 3월 30일,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일본 전역을 분노로 들끓게 만든 사건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피해자는 왜 그들에 의해 처참한 범행을 당했나?

범행이 시작된 1988년 11월 25일부터 가해 정도가 극악해지기 전인 12월 7일, 그리고 피해자가 최후의 고문을 당한 1989년 1월 4일부터 시신을 은폐한 1월 5일까지를 타임라인으로 재구성했다.


사건의 발단 

1988년 11월 25일 20시 30분 경, 주범 宮野裕史(미야노 히로시, 18세)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피해자를 발견한다. 히로시는 공범 湊 伸治(미나토 신지)에게 '자신이 알아서 해볼테니 저 여자를 발로 차라'고 지시한다.


신지는 피해자를 가격한 후 도주했고 넘어진 피해자에게 접근한 히로시는 "저 녀석은 유명한 변태다. 나도 저 녀석에게 칼로 협박당했다. 여긴 위험하니 데려다 주겠다"라고 말하며 피해자의 집 부근으로 동행했다.


피해자의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어두운 창고 앞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꿔 자신이 야쿠자 간부이며 너를 사고로 위장해 치어 죽이기로 되어 있으나 자신에게 몸을 바친다면 살려주겠다고 협박한다.


최초범행장소.png [극혐주의] 일본에서 일어난 최악의 강력범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최초 범행이 발생한 호텔 사진

그리고 피해자를 호텔로 데려가 강간한다. 강간 후 히로시는 "원래는 야쿠자가 너를 죽이기로 돼 있었지만, 넌 내 여자친구와 닮았으니 살려주고 싶다. 너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윗선과 잘 얘기해볼 테니 그때까지 여기에 있어라"라고 말하며 안심시킨 후 공범 小倉 譲(오구라 유즈루, 17세), 渡邊恭史(와타나베 야스시, 16세)에게 전화를 걸어 "여자 하나를 잡아두고 있는데 같이 돌려먹지 않겠냐"라며 불러내 히로시-유즈루-야스시의 순서대로 4~5차례 윤간했다.


윤간 후 밤거리를 배회하며 차 안에서 히로시는 "신지가 너를 좋아한다. 사귀어라"라고 명령했고 피해자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남자를 사귀기 곤란합니다"라며 거절했다. 이에 히로시는 "니가 감히 나와 우리 가족을 욕해? 너에게 굴욕을 직감시켜 주마"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지의 자택으로 이동, 피해자를 감금한다.


전개 [아래 내용은 위 내용보다 잔인하기 때문에 열람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신지의 자택.jpg [극혐주의] 일본에서 일어난 최악의 강력범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범행이 이루어진 신지의 자택


11월 27일, 행인을 폭행하던 히로시는 함께 어울리던 中村哲夫(나카무라 테츠오, 16~17세)와 伊原孝一(이하라 코이치, 15~16세)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겠다"며 불러내 23시경 신지의 집에 자고있던 피해자 앞에 나타난다. 

히로시는 피해자에게 겁을 주려고 감기약을 각성제인척 복용하고 약에 취한듯 행동하며 피해자를 넘어뜨렸다. 코이치가 쿠션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누르자 피해자는 소리치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신지의 부모가 2차례 찾아온다.

먼저 어머니가 2층에서 나온 소음에 방문을 열어 확인하려했으나 조명이 꺼져 스탠드만 있던 상태였기에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피해자가 비명을 지르자 아버지가 올라와 무슨 상황인지 물었으나 신지가 "상관하지 마"라며 돌려보냈다.

일련의 과정으로 화가 난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허벅지와 다리를 폭행하고 음부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입을 막고 윤간했다.

2시간여 이어진 폭행으로 피해자는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11월 30일, 피해자의 부모가 실종신고할 것을 우려한 히로시는 피해자에게 5일에 걸쳐 "가출했으니 찾지 마. 친구의 집에 있으니 실종 신고는 취소해 줘"라고 전화하도록 했다. 히로시는 피해자가 전화하는 것을 감시하며 "경찰서도 멀고, 저 차는 야쿠자의 차다. 도주를 시도하면 내가 너를 죽이게 할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그날 밤, 신지의 어머니는 피해자와 처음으로 조우했고 피해자에게 "늦었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으나 신지가 "오늘밤은 이곳에서 있는다"라고 답하며 위층으로 데리고 간다.


12월 5일, 히가시나카코 역 열차추돌 사고가 발생하자 히로시는 "저 사고로 네 아버지가 죽었다. 알고있냐"고 거짓말하며 피해자를 농락하고 여러차례 답변을 바꾸며 불안하게 만든다.

신지의 방을 청소하다 생리대를 발견한 신지의 어머니는 "왜 집에 돌아가지 않았냐"고 물었으나 감시되고 있어 대답하지 못했다. 가출소녀라 생각하고 이름을 물었으나 "사이타마현에 사는 고교 3학년 학생이고, 취직이 결정됐다"라고만 답한다. 신지의 어머니는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테니 어서 돌아가라"고 했고 감시담당인 야스시도 동의해 식사 후 귀가시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식사 도중 귀가한 신지의 아버지는 신지에게 "여자친구인가? 내게도 소개해다오."라고 말을 걸었으나 묵살당했고 식사 후 피해자는 다시 2층으로 끌려간다.


12월 6일, 신지의 가족들도 낯선 소녀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고 신경이 쓰여 "이 집엔 남자가 2명이나 있어.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거지?""여긴 그 야쿠자 같은 것(히로시)이 있으니 얼른 돌아가렴."이라며 말을 걸었으나 미동도 하지 못했고 신지의 어머니는 "얼른 돌아가자"며 가방과 소지품을 들고 1층으로 내려왔지만 두려워 꼼짝도 못했다.

신지의 어머니는 피해자의 가방에서 나온 집 번호로 시부모의 집에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받는다.

"댁에 후루타 준코란 딸이 있습니까?"라 묻자

"지금은 준코가 집에 없습니다. 누구십니까?"라고 반문했고 신지의 어머니는 가짜 이름을 대고 전화를 끊었다. 

자택에서는 신지의 아버지가 피해자를 귀가시킬 채비를 시켰고 신지의 형인 湊恒治(미나토 코우지, 16세)와 유즈루가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집 근처 공원에서 코우지는 '귀가시키자'며 설득했고 피해자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제발 집에 가게 해달라"고 애원했으나 결국 신지의 부모가 자고있을때 재감금 당한다.

어머니 전화했다는 것을 안 신지는 수 시간동안 어머니를 폭행한다.


이 시점에서 신지의 부모는 피해자가 귀가한 것으로 인지했고 가해자 무리는 피해자를 풀어줄 생각을 버리게 된다.


12월 7일, 가해자들이 낮잠자는 틈을 타 경찰에 신고하지만 인기척을 느낀 히로시에게 걸려 무마된다. 강제로 전화가 끊겨 경찰이 다시 전화하지만 장난전화라고 해명한다.

피해자는 가해자들에게 "용서해달라"고 빌었으나 무시당했고 히로시는 물컵을 던지며 유즈루, 신지, 야스시에게 "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냐"며 호통쳤고 화가 난 세 명의 분노는 피해자를 향했다. 특히나 피해자에게 호감이 있던 유즈루는 누구보다 가혹하고 혹독하게 피해자를 고문했다.


이날 신고한 것을 끝으로 피해자는 강도높은 고문에 시달렸고 사망할때까지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1월 4일, 마작으로 10만 엔의 빚이 생긴 히로시는 야스시의 집에서 합류한다. 이 시점에서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12월 20일 이후 상태가 악화되어 방치 중이었다.

히로시는 "마작에서 진 것도 준코 때문인데 오랜만에 괴롭히러 가자"고 제안해 신지의 집으로 향한다.

20시, 히로시, 유즈루, 신지, 야스시는 다같이 피해자를 폭행했다. 힘이 다 빠진 피해자를 가운데에 놓고 얼굴에 촛농을 떨어뜨리고 소변을 먹였으며 한 명은 왼쪽에서, 다른 한 명은 오른쪽에서 안면부를 구타했다.

피해자가 카세트 플레이어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히로시는 죽음을 직감했으나 "꾀병부린다"며 폭행의 강도를 높혔고 1.74kg의 아령을 복부로 떨어뜨렸으나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라이터로 피부를 지졌고 피해자는 처음엔 움찔했으나 이내 반응이 없었다. 가해자들은 "죽은거 아니냐"며 두려워했으나 "원래 저런다"는 신지의 말에 안심한채 22시 경 사우나로 이동한다.


1월 5일, 코우지에게 "준코의 상태가 이상한거 같다"는 연락을 받는다. 피해자가 감금된 방은 안에서만 열 수 있었기에 베란다에서 상태를 지켜보니 피해자는 이불 위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가해자들은 "죽은거 같다"며 들어가길 꺼렸고 이들이 들어갔을땐 피해자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었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미친듯이 웃었다.


히로시는 피해자의 시신을 이불로 싸매고 여행용 가방에 넣은 뒤 테이프로 말았다. 그리곤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가득 채운 후 벽돌로 고정시켰다. 이들은 시신을 어디에 매장할지 의논했다. 먼저 아야세시의 강변이 거론됐으나 유즈루가 "집 근처라 변해서 나올거 같다"고 반대했고 도쿄만에 던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멀리가진 못하고 도쿄도 고토구 와카스 14호지 해변 공원 정비 공장 현장의 공터에 매장한다.

와카스.jpg [극혐주의] 일본에서 일어난 최악의 강력범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피해자를 매장했던 도쿄 와카스 해변공원, 현재는 잘 정비되어있다.

가해자들은 드럼통에 시신과 함께 꽃다발을 넣었는데 추모나 일말의 죄의식 때문이 아닌 그저 저주받을까봐 두려워서 그랬다고 진술한다.



결말 


세상에 공개되다

이들의 잔악한 범행은 1989년 3월 29일, 우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주범 히로시는 1988년 11월 8일에 있었던 19세 여성 강간치상 및 절도혐의로 수감되 조사중이었다. 이때 담당형사가 실수로 "너, 사람을 죽이면 안 되잖아?"라고 질문한다. 이에 히로시는 공범들이 모두 불었다고 생각하며 사건의 전모를 자백한다.


현실성 없는 이야기에 경찰은 반신반의하며 매장된 공터로 향했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드럼통을 발견한다.


305kg에 달하는 드럼통을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경찰서로 운송했다.


다음날인 3월 30일, 해체작업이 진행되었고 이윽고 부패가 진행된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히로시의 자백이 진실인 것을 알고 패닉에 빠졌고 이후 공판 중에도 진술을 듣는 중 배심원이 혼절하기도 했다.


부검결과 및 사인[부검결과가 매우 잔인해 흰색으로 썼으니 정말 궁금하신 분들만 보시길 바랍니다]

직접적인 사인은 구타에 의한 외상성 쇼크와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됐다. 사망 당일, 2시간에 걸친 폭행이 끝나고 피해자는 사망했다.


시신은 사망 당시부터 심각하게 손상돼 안면이 심하게 함몰 및 변형되어 있었고, 그 뒤로 시간이 흐르면서 부패까지 해서, 외관만으로는 사인을 비롯한 신원 확인조차 쉽지 않았지만, 손상된 시신에 남아 있던 지문과 치열을 조합하고 머리카락의 DNA 등을 검사한 결과, 1988년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 후 귀가 도중에 행방불명된, 사이타마현 미사토시 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후루타 준코(17세)임이 확인됐다.

[부검결과]

손발이 묶인 채였고, 얼굴은 눈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됐으며, 하반신은 얼굴보다 훨씬 더 참담한 상태였다. 온몸의 근육은 폭행과 화상 등으로 흐물흐물하게 녹아 있었고, 고름과 진물이 흘러 범벅이 되어 있었다. 

얼굴뼈 일부는 으스러져 있었고, 가슴에 빈틈이 없이 바늘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으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카락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새끼손가락의 손톱이 벗겨져 있었고, 왼쪽 유두는 펜치와 같은 공구로 집혀 손상됐으며, 제대로 붙어있는 치아는 하나도 없었고, 뇌 또한 축소되어 녹아 있는 상태였다. 코는 피와 고름으로 꽉 막혀 입으로 호흡했을 것이라 추정되며, 고막도 심하게 손상됐기에, 마지막엔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너무나 가공할 고통 속에서 입술을 깨물어,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모두 절단되어 있었다. 

피하 지방의 두께는 평균치의 100분의 6이 채 되지 않아 극도의 영양실조 상태였다. 원래 53kg이었던 체중은 36kg으로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준코의 위장에선 지네와 바퀴벌레, 소변, 그리고 기도와 식도까지 차올라 기도를 막아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정액 등이 발견됐다. 정액은 도대체 몇 명의 것인지 확인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그 양이 많았으며, 인간의 것이 아닌 정액 반응도 검출됐다. 성기에는 비타민 음료 병 2개가 꽂혀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위장, 그러니까 뱃속과 성기와 항문에서 발견된 게 맞다. 준코의 몸 아래쪽에 있는 장기들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대장에 큰 화상을 입었고, 그 외의 기관들의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다. 


피해자, 가해자 부모의 반응과 기레기의 만행

피해자의 부모는 당시 피해자가 야시오시 시내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뒤 귀가하지 않아,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낸 상황이었다. 무사히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렸으며, 일을 쉬어가면서까지 행방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피해자의 아버지인 古田晃(후루타 아키라)씨는 

"가는 곳마다, 지인들이나 모르는 사람들이나 죽은 딸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캐어 물으면서 물고 늘어지며 괴롭힌다. 지인들은 질문하고 나서 위로라도 해줬지만, 기자들과 그 기자들을 비롯한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것도 없었다" 

라며 울분을 토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당시 언론에서는 피해자의 얼굴이나 교복, 수영복, 핫팬츠 차림의 사진 등을 그대로 노출하며 행실이 불량한 아이였다느니, 불량배 패거리의 일원이었다느니 하는 등의 분명하지 않은 사실들을 그대로 기사로 내놓는 추가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주변인의 증언을 보면 피해자는 최상위권 성적에 결석도 1년에 두세 번 정도였으며, 아르바이트도 아주 성실히 임하는 등, 불량학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우 관계도 원만했고, 밝고 명랑하며 누구에게나 웃으며 인사하는 상냥한 성격에 미인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부모를 공경하는 아이였으며, 아르바이트도 졸업여행을 위한 것이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얼마나 처참하고 끔찍하게 죽어갔는지를 알고는 충격을 받고 쓰러져 장시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가해자 부모 중엔 아이러니하게 주모자 미야노 히로시의 부모가 상식적인 부류였다. 아들의 범행을 듣고 큰 충격에 빠져 가산을 정리해 5천만 엔을 건냈으나 피해자 부모가 거절했다.


미나토 신지의 부모는 "여학생이 2층에 있는 것을 내내 알고 있었으며, 그녀를 내보내기 위해서 그나마 제일 회유하고 노력했지만 아들이 두려워 어쩌지 못했고, 이미 돌려보냈다고 의심치 않았기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증거확보를 위해 위해 경찰관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방의 바닥과 커튼, 베란다 벽 등이 모두 새 것으로 바뀌어 있었고, 어머니가 깨끗하게 청소해 버려 집안에는 그 어떠한 증거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와타나베 야스시의 누나는 "내가 후루타 준코가 그 집에 감금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구출했을것이다, 자신은 전혀 몰랐다"고 증언했다.


가장 말종은 오구라 유즈루의 부모였다. 어머니는 사건이 밝혀져 자기 자식이 대가를 치른 것에 분노해 "이게 다 준코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심지어 준코의 묘를 부숴버리는 충격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조롱이라도 하는 듯 버젓이 이 사건 발생지 인근에 음식점을 차리는 등 행태를 일삼으며, 준코를 원망하고 있다

아버지는 사과가 아니라 "노코멘트하겠다"란 반응을 보였다 


사회적 충격

이 사건이 일어난 4년 뒤에 일어난 이치카와 4인가족 살인사건의 범인은, 준코 살인사건의 범인들이 징역형을 받은 것을 근거로 "나의 범행은 별 거 아니다"라고 주장할 정도로 잔혹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과 같은 기간에 도쿄, 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도 발생하여 쇼와시대의 마지막 해에 사회적 불안에 고조되었다.


주변국에도 충격적으로 다가와 미국, 유럽 언론에서도 보도되었고 한국 역시 보도되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42300289104006&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4-23&officeId=00028&pageNo=4&printNo=292&publishType=00010


가해자 신상

1. 미야노 히로시

미야노 히로시.jpg [극혐주의] 일본에서 일어난 최악의 강력범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1970년 4월 30일 생, 현재 이름 横山裕史(요코야마 히로시)

가해자 중 최연장자이자 주동자,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으나 아버지의 간통으로 탈선하기 시작, 상급생의 이지메로 받은 화를 부모나 여성에게 표출, 90여명을 강간함.

단순 양아치 수준이 아닌 야쿠자와 연계된 극청회의 간부였음.

2006년 가석방됐으며 현재까지도 일말의 후회나 죄책감을 갖고있지 않음


2. 오구라 유즈루

오구라 유즈루.jpg [극혐주의] 일본에서 일어난 최악의 강력범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놀랍게도 중학생때 사진이다)
1971년 5월 11생, 현재 이름 神作 譲(카미사쿠 조)

부두목, 아버지는 지방검찰 고위 간부, 190cm의 장신이고 왼손가락이 6개임.

공판 당시 "그래도 놀아줬으면 된 거 아니야?"라고 유족 앞에서 낄낄거리며 웃음.

진짜 주범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으며 아버지 빽을 이용해 가벼운 처벌을 받은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음.


3. 미나토 신지

1972년 12월 16일 출생

범인 중 최연소자, 부모는 공산당원.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것으로 의심

2018년에는 살인미수로 체포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11688


4. 와타나베 야스시

와타나베 야스시.jpg [극혐주의] 일본에서 일어난 최악의 강력범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1971년 12월 18일 생

원래 이지메 피해자였으나 누나가 히로시와 사귀면서 이지메에서 탈출

유일하게 반성하고 있으며 죄질도 그나마 덜함.

그러나 개 버릇 남 못준다고 2018년에 살인미수로 체포.


5. 나카무라 테츠오

1971년 생, 현재이름 岩井哲夫(이와이 테츠오)

범행 가담에 거부하다가 주범들에게 폭행당했음.

현재는 고향의 술집에서 당시 사건을 우스갯소리처럼 떠들고 다닌다고 한다 


6. 이하라 코이치

1972년 생, 현재이름 垣東孝一(카키히가시 코이치)

사건 후 소년원에 보내졌고 현재는 자녀 2명을 두고 있음.

우라와시에서 거주했으나 쫓겨나 이루마시 혹은 히노시로 이사


기타 공범

남자 17명, 여자 1명이 있고 대부분 극청회 소속이다. 이들은 살인과 학대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판결

도쿄 지방검찰청은 "상호 공모에 의한 미필적 고의에 따른 살인, 외설 목적의 유괴, 약취, 감금, 강간, 사체유기 등의 각 죄로 피고인들이 가정 형편에 있어서 불우하게 성장했음을 감안해도 일본 소년범죄 사상 보기 드문 중대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매우 잔악하고 무자비하게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겨 사회적인 물의를 빚은 점을 참작해야 한다"며 미야노 히로시에게 무기징역, 오구라 유즈루에게 징역 13년, 미나토 신지와 와타나베 야스시에게 단기 5년 장기 10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피해자를 위 사건 공소 사실의 범죄로 인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이르렀다는 검찰의 주장은 인정되고, 그 범죄의 심각성 또한 반인륜적이여서 형사 책임은 무겁지만, 아직까지 미성숙한 미성년자들에 의한 집단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극단적인 사태에 놓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리 판단을 하지 못해 불행한 측면에 빠졌음을 감안해야 하고, 수감 생활 도중 반성문을 제출한 것을 보아 교정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각각 17년, 단기 5년 장기 10년, 4년, 장기 3년을 선고한다.


2심 도쿄고등법원에서는 "피고인들이 반성하고 이후의 소년범으로서 교정 등의 갱생 필요성을 감안해도 유족이 엄벌주의로 처벌하기를 탄원하고 있고, 해당 사건의 죄책이 사회적 통념에 비춰보아 매우 흉악하고 중하다"며 양형을 가중했다.

결국 미야노 히로시 징역 20년, 오구라 유즈루 단기 5년 장기 10년, 미나토 신지 단기 5년 장기 9년, 와타나베 야스시 단기 5년 장기 7년이 확정되었다.


심지어 기타 가해자 100여명은 약식처벌로 끝났으며 신지의 형인 코우지는 소년보호처분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


법정에서조차 "준코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가 죽는다는 생각조차 할 여지가 없었다.","준코는 단지 운이 없어서 바보같이 잡혔던 것뿐이다."고 말하고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적반하장으로 "억울한 사람을 이렇게 끌어들이고 부끄럽지도 않냐"고 하고는 욕설까지 퍼부었으며 피해자에게 미안해서가 아닌 "병 신같이 잡혀버린 내 자신이 불쌍해서" 눈물흘린 범죄자에게 너무 가벼운 처벌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가해행위[굉장히 잔인하고 혐오스럽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흰색 글씨로 작성]

신지가 "여자를 하나 잡아두고 있으니 헌팅할 필요 없다"고 지인에게 공언해 최종적으로 신지의 지인 수백 명 가량이 준코의 감금을 알고 있었고, 40일 사이 500~800여회에 달하는 폭행과 강간에 관여했다. 공판 기록에 의히면 이 사이 준코는 소년들에 의해 기절하고 강제로 깨어나고를 천 번 넘게 반복했다. 감금 초기인 11월 28일에는, 주범들 이외에 같이 어울리던 폭주족의 부하인 불량소녀가 화장이라며 매직펜으로 준코의 얼굴에 수염을 그렸다. 재판과정에서 어느 목격자(방관자)의 증언에 따르면, 나체로 묶인 준코의 주위에 술, 담배가 널려 있어 참혹한 분위기였다고. 그리고 준코가 움직이기도 힘들어진 이후에는 방치하고 자기들끼리 놀러 나갔다. 

준코의 면전에서 "자살로 위장해 목을 매달자", "분쇄기로 갈자", "고기는 다진 게 좋다", "바다에 공구리를 치자"는 식의 말을 주고받았다. 

준코는 매일같이 "풀려나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고, 믿어줄 때까지 뭐든 하겠다"고 가해자들에게 애원했다. 이에 소년들은 알몸으로 춤추고 노래하기, 자위행위, 미친 짓 등을 시켰다. 당시에는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소년들은 준코를 일으켜 세워 억지로 시켰다. 이로 인해 준코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카락이 모조리 빠졌다. 

하루는 준코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자, 히로시는 "돌아가면 엄마한테 뭐라고 이를 거냐"고 묻는다. 준코는 "이르지 않겠다. 지금까지 신주쿠에서 놀다 왔다고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소년들은 "신주쿠에서 교복 차림으로 지금까지 그렇게 놀 수 있을 것 같냐"고 하며 더 심하게 준코를 폭행했다. 당시 준코는 여벌옷이 없어서 신지가 어린 시절에 입던 옷을 입었다고 한다. 

준코는 500~800여 회의 강간으로 부검 결과 임신 상태였고,성기와 항문의 구멍이 합쳐질 정도로 하체가 원형을 유지하지 못했다.

12시간 이상, 유즈루가 밖에서 끌고 온 대형견의 성기에 준코의 입으로 교접시켰다. 

준코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신지의 집에 있던 운동기구를 모아 만든 220kg 이상의 금속 바벨로 손발과 얼굴의 뼈를 으스러뜨렸다. 

감금 초기, 유즈루와 이름이 같은 과자를 가져와 준코에게 "이것이 뭐냐"고 물었고, 준코가 존칭을 안 쓰면 "유즈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고, 준코가 존칭을 쓰면 "사물존칭을 쓴다"고 구타하고 불질렀다. 

빈사 상태의 준코를 꾀병이라고 욕하며, 바닥에 눕히고 1m 이상의 높이에서 20~30kg의 아령을 얼굴에 던졌다. 

준코의 눈과 얼굴이 너무나 부어올라 코 높이를 넘어 부을 때까지 구타하며, "그 얼굴이 더 좋다"며 웃어댔다. 준코의 얼굴은 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는데, 막바지에는 눈이 심하게 부어서 앞도 잘 못 봤다. 

곪은 상처에서 쉴 틈 없이 쏟아지는 피와 고름을 보고는, 가해자들은 손발을 비닐봉지로 감싸고 구타했다. 이때 준코에게 웃으라고 강요했고, 웃지 않으면 더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이렇듯 약간이라도 저항하면 더 심하게 폭행해, 준코는 저항하지 못하게 됐다. 급기야 준코는 어떠한 언어적, 물리적 폭력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음주와 흡연 경험이 없는 준코에게 자신들이 피다 만 담배를 피우게 하거나, 50~100개비의 궐련을 한 번에 피우게 했고, 신지의 집에 있는 70도가 넘는 독한 술을 다량 먹였다. 준코가 토하면 그 모습을 즐기면서 토사물을 강제로 먹였다. 

준코의 새끼손가락의 손톱과 왼쪽 유두를 펜치로 뜯었다. 준코의 가슴에 바늘을 빼곡하게 꽂거나, 준코의 몸에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재떨이로 사용하기도 했다. 

볼과 눈에 촛농으로 양초를 고정하고, 성기와 항문에 달군 백열전구, 쇠꼬챙이, 목검, 쌍절곤, 공업용 가위, 철봉, 담배, 유리병, 페트병, 불꽃놀이 도구, 벌레 등을 넣고 폭행으로 산산조각 냈다. 이는 요실금, 변실금, 심각한 출혈을 야기했다. 괄약근이 늘어나는 건 덤. 게다가 공사장에서 훔친 전동드릴을 성기에 넣어 자궁을 갈아버리는 범죄역사상 전례없는 극악무도한 짓도 저질렀다. 

준코를 눕히고 끓는 물을 뿌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겼다. 소년들은 이를 '열탕 샤워'나 '열탕 커머셜'이라고 불렀다. 목욕을 시켜준다면서 물고문도 했다. 

각종 가혹 행위에 준코의 상태가 악화되고 몸에서 악취가 풍기자, 히로시는 신지의 부모가 눈치챌까 두려워 준코에게 종이팩에 일을 보게 했다. 종이팩의 소변을 마시라고 강요했고, 실수한 대변도 억지로 먹였다. 이것들은 나중에 준코의 위에서 발견된다. 

크리스마스에 소년들은 준코를 앉히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며 폭행했다. 준코는 폭행이 끝나고 바닥에 있던 'Merry christmas'라고 쓰여진 종이를 보고 한참을 울었다. 

사망 1주일 전, 영양실조와 스트레스로 준코가 배를 감싸며 쓰러져 히로시에게 "물을 마시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히로시는 상처에 영양을 준다며 마지못해 우유를 먹였지만, 준코는 토하고 말았다.그걸 본 소년들은 다같이 준코를 폭행했고, 사과하는 준코의 하복부를 수십 회 구타하고 혹한 속에 상의를 모두 벗긴 뒤 베란다에서 여러 개의 담배를 피우게 했다. 이에 견디지 못한 준코가 구토하자, 히로시는 "따뜻하게 해주겠다"며 준코의 다리에 라이터 기름을 뿌리고 점화했다. 12월 하순부터는, 준코는 힘이 다 빠져 발버둥도 치지 못했다. 

준코는 처음엔 "살려달라"고 했지만, 감금 말기부터는 매일같이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사망 직전엔 뇌가 활동을 멈췄다. 시신 발견 당시 뇌가 쪼그라 들어 녹아있었다.



-장례식 영상


-참고 


1989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콘크리트'

나무위키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피해자 친구의 추도문으로 글을 맺겠습니다.

'준 짱, 어서오세요. 이런 식으로 재회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팠죠? 괴로웠죠? 아무것도 모르고 생활했던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언제나 온화하고 밝았던 준 짱. 문화제 때 모두와 만든 핫피는 잘 어울렸었죠.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저희는 준 짱의 죽음을 절대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끔찍한 범죄가 없어진 평화로운 날을 보낼 수 있도록 사회인이 된 저희들도 노력하겠습니다. 또 괴로운 일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갔던 준 짱을 생각하며 힘내겠습니다. 교장선생님이 특별히 졸업장을 들고 와주셨다고 하네요. 이로써 3학년 8반 47명은 전원 졸업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준 짱... 이제 고통도 괴로움도 없어요. 편히 잠드세요. 잘 가, 준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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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1 망일  
이걸 가석방해?
29 Comments
망일 2021.05.06 00:23  
이걸 가석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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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모굴라스 2021.05.06 01:03  
일본 애들은 사형도 잘 때리던데
역시 빽 있는 애들한태는 안돼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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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빈 2021.05.06 03:22  
너무 화난다 진짜..... 저건 사람새끼가 아니다.. 악마도 저런짓은 상상도 못하겠다...... 가담한 가해자들 하나하나 다 쳐죽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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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석 2021.05.06 03:22  
글만 봐도 속이 안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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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병 2021.05.06 04:51  
그대로 되갚아주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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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문가 2021.05.06 05:03  
원래 일본인중에 악마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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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동이 2021.05.06 07:37  
와... 아침부터 속이 거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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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흔 2021.05.06 09:33  
와...읽는것만으로 뇌가 쪼그라드는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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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짱 2021.05.06 10:56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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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dqk 2021.05.06 11:33  
능지처참 + 삼족을 멸해야 되는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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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2021.05.06 11:53  
읽기만해도 소름이 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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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2532432 2021.05.06 12:12  
저걸또 영화로 만든 왜국의 클라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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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사마 2021.05.06 14:14  
내용만 봐도 토할거 같네
우리딸이 저상황이었다면 나는 가해자 다 죽이고 똑같이 고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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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본드 2021.05.06 14:22  
쪽빠리들 잔인성 뭐 씨 바 일제시대때 어땠을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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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었다 2021.05.06 15:51  
저렇게 가혹하게 사람을 죽였는데 종신형이 아니라는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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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키재기 2021.05.06 15:54  
진짜 악마네.. 악마가 따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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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a 2021.05.06 16:08  
핵맞음 새끼들이라 기상천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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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나 2021.05.06 17:02  
이거 어렸을때 내가 너무 분노했었는데.....

내  실수 였던게 이게 만화로도 있음......

보고 너무 역해서.......잠을 며칠을 못자고 고생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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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팅 2021.05.07 01:03  
[@최예나] 저도 어릴때 저걸 그린 만화를 보게됐는데 충격 그 자체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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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북좌 2021.05.06 21:09  
섬원숭이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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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쌍 2021.05.06 22:50  
이미 본 사건이라 다시 읽고 싶지 않아서 패스
우리나라도 몇년전에 저런 사건이 있었지 사람 같지 않은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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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부는룰루리 2021.05.07 00:13  
악마를 보았더니 악해지는 거 같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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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왕 2021.05.07 09:35  
일제강점기때 있었던 일이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겠구나..
하물며 그때는 윤리의식이 현대보다도 덜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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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자 2021.05.07 10:03  
흰색글씨읽으려고 드레그하는순간 천둥 존나크게 쳐서 와악하고 소리질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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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인간18호 2021.05.07 11:04  
진짜 레알 미친놈들이네... 사람이 아닌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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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범 2021.05.08 04:19  
어떤새끼가 댓글마다 비추 누르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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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면 2021.05.08 22:33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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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팡 2021.05.09 11:06  
씨바 내 가족한테 저랫으면 내 인생갈아넣고 다 죽여버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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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예 2021.05.15 20:54  
비추 누르는 원숭이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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