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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구의 5분의1이 날아간 사건 (호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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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대기근 (1670~1671)



조선 현종 11년 2년에 걸쳐 발생한 대기근으로


가뭄, 수해, 병충해, 태풍, 전염병, 구제역, 한파, 우박 등 2년동안


역대급 재앙이 종합선물세트마냥 한꺼번에 일어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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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고려, 조선하면 왜적과 북방민족의 침입으로만 고통 받은 것으로 알고있지만,


조선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시기는 바로 이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0. 기근의 원인 (전세계적 소빙하기)


실제 당시 17세기 지구의 평균 기온이 1도떨어지는 소빙하기가 나타났고


이 시기에 지구촌 곳곳에서는 많은 재해들이 발생하게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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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구촌 곳곳에서 재난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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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little ice age라고 되어있는 기간과 경신대기근의 기간이 일치한다)

(출처: http://yellow.kr/blog/?p=939)



조선 역시 이러한 범세계적인 재해를 피할 순 없었고


극심한 가뭄과, 전염병, 이상기후로


국가의 행정체계가 붕괴되기 직전까지 가는 대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부터 조선에서 일어난 대재해 경신대기근에 대해 알아보자





1. 재난의 시작: 극심한 가뭄 (1670년 2~5월)


1670년 2월


보통이면 지방 곳곳에서 모내기를 시작하고 파종하는 등의 


본격적인 농경활동이 이루어져야 했지만


서울에는 갑자기 느닷없이 눈이 내리기시작하고 


갑자기 전국 곳곳의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기기시작



4월에는 논밭에 서리가 내리고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아 


아예 1년 농사가 완전히 나가리 된다.


그것도 전국 조선팔도 모든 지역이 흉작이 되버리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한다.


더불어 메뚜기 떼, 황충 떼를 비롯한 병충해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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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의정 정태화는 이번 재해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왕에게 국가의 존망이 달려있다고 보고하기에 이른다.






2. 더 극심해지는 재난: 태풍과 홍수 (1670년 6~9월)


2~5월에는 그렇게 비가 오지도 않더니


6월 부터는 청개구리 마냥 반대로 비가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조선팔도 곳곳에서 수해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상소문이 


서울로 빗발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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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선시대에 대체로 한반도 남부지역만을 강타하던


태풍이 조선팔도 전지역을 시원하게 휩쓸며 국토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더욱 기이한것은 


거의 초여름, 한여름에 해당하는 6~8월에 우박과 눈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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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당시 폭우와 태풍, 가뭄으로 제주도의 인구는


무려 절반이 줄었다고 기록되어있다.





 

3. 대기근의 절정, 조선 사회가 붕괴되다 (1671년)


위와 같은 이상기후의 여파로


당시 조선 팔도 전역의 농경은 그야말로 폭망했는데


당시 농업국가였던 조선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대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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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곳곳에서 전염병까지 돌기 시작하는데 


이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나갔고


각 군현의 길거리에는 굶어죽거나 


전염병에 걸려 죽은 백성들이 넘쳐났다고 기록되어있다.


경상도, 전라도 등지에서는


수 백명, 수 천명 많게는 수 만명의 백성이 


굶어죽었다는 보고가 중앙으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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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에 소의 도축을 허용하고


(소는 농경에 있어 중요 수단이기에 함부로 도축을 금했음)


또한 일종의 배급제를 담당하는 진휼청을 설치하거나 청에서 쌀 수입을 검토하는등


조선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머리를 짜냈으나


당시 과학기술과 행정력으로 대기근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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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 진휼청: 기근이나 재난발생시 이곳에서 굶는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설상가상 전국에 구제역까지 돌면서


총 2만 1000여마리의 소가 집단 폐사하면서


조선의 상황은 더더욱 악화일로을 걷게된다.




더이상 먹을 것도 꿈도 희망도 없었던 상황에서


조선이 그렇게 강조하던


삼강오륜, 성리학, 예학 등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했고


전국에서 식인행위가 발생하고


부모가 아이를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가족끼리 서로를 약탈하고 죽이는 등


패륜죄가 급증하기 시작하는데


평상시 유교국가인 조선이었으면 당연히 강상죄로 엄히 다스렸겠지만


워낙 상황이 심각했던지라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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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일본의 텐메이 대기근: 식인하는 사람들) 


거기다가 시체의 옷까지 뺏어다 입고다닐정도 였다니


그냥 당시 조선은 국가라기보다는 지옥도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겠다





4. 조선의 행정체계가 붕괴되다


당연히 앞에서 설명했듯이 백성들의 피해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이런 재난에서 가장 중요한게 국왕의 리더십과 국가 및 관료들의 행정력이라고 하지만


이미 경신대기근의 상황은 


당시 과학이나 인간의 역량으로 극복하기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는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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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불가능한 대재난에 절망하는 조선 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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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록이 경신대기근에 대한 관료들의 주된 평가 중 하나다)



1671년 


전염병이 한양 내부와 궁궐 내부까지 번지면서


왕을 지키는 숙위병사까지 감염 및 사망자가 발생해 


궁 내부 방역체계에 비상이 걸렸고


궁궐 내 궁녀들 사이에서도 병이 돌면서 사망자가 속출한다.


양반들이나 사대부들도 사망자가 늘어났고 


심지어 왕실, 종친들 사이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리고 서울 내 관리들은 사직서를 내면서 서울을 빠져나가기도 하였으며,


조선 내 장관급 재상 인물이 10명이나 사망하고 


조선 지방관의 사망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왔으며,


심지어 정치의 중심인 영의정, 우의정도 목숨을 잃는 등


조선의 행정체계는 붕괴직전까지 가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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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영의정 허적은 14번이나 사직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결국 전염병은 궁궐 내부 왕실까지 퍼지게 되는데


실제 현종의 다섯째 누나인 숙경공주까지 전염병으로 죽자


왕과 왕비, 세자는 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기에 까지 이르게된다.


만약 현종마저 전염병에 걸렸다거나 목숨이 위태로웠다면 


조선은 정말 더한 혼란에 빠져들었을 것




 

5. 결과


당시 중세사회에서 가뭄으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백성들이 얻어맞는것이 대부분인데


경신대기근은 신분, 관직, 성별 가리지 않고 


백성, 승려, 관리, 왕실 등 조선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조선정부에서는 20~3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기록했으나


학자들은 보고되지 않은 숫자까지 합치면 


자그마치 40~85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이는 호적상 등록된 조선인구의 5분의 1정도 되는 수치인데


실질적으로 조선인구가 1500~1600만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 전체인구의 5% 정도로 보는게 더 타당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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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조선에서 임진왜란을 경험한 사람들은 위의 기록과같이


진왜란보다 경신대기근이 더 비참했다고 평가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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