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미스터리 > 미스터리
미스터리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법, 복수법

안지영 2 1764
고려의 5대 국왕 경종이 제정했다가 이후 철폐한 법으로 말 그대로 '복수를 허용하는 법'이다. 그야말로 고려 역사는 물론 역대 한국 역사를 통틀어 최악의 법이라고 할만한데 다만 이를 통해 '국가 단위로 사적 제재를 허용한다면 무슨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아주 교훈이 될법한 역사적 사료이다.

한반도를 통일한 초기 고려는 기본적으로 봉건적 토지 권력을 확보하여 개인의 영지와 사병을 보유한 사실상의 지방 영주들인 '호족'들의 연합 정권(이는 후백제도 마찬가지)의 성격을 띄고 있었는데 그 원인들 중 하나를 꼽자면 고려 건국 시조인 태조 왕건이 단기간에 후백제라는 강적을 쳐부수고 신라를 대체하여 한반도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재산과 병력을 지닌 한반도 전역의 호족들에게 지지를 받을 필요가 있었기에 각지의 호족들의 지지를 받고자 지속적인 결혼 동맹을 신청하여 부인들을 엄청나게 둔 예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유화책에 힘입어 호족들의 지지 하에 신라를 굴복시키고 후백제를 멸하며 전국을 통일한 고려는 그 국가적 성격이 필연적으로 호족 연합 정권의 성격을 띌 수 밖에 없는데 당연히 건국 시조의 부인이 많은 만큼이나 왕위계승권을 주장할 왕자들도 엄청나게 탄생하였으며 그 왕자들의 뒷배경에는 다들 지방에서 한따까리하는 호족 가문들이 인척으로써 도사리는 상황으로 치닿게 된다. 중앙집권적 왕권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대 국왕이자 태조의 장남인 혜종, 3대 국왕이자 태조의 삼남인 정종의 급작스런 요절 등도 이런 미약한 왕권과 호족 가문들 간의 파벌 싸움, 내부 암투극에 영향을 받아 그리된 것으로 여러 학자들이 추측하기도 한다. 만약 혜종, 정종의 동생이자 태조 왕건의 넷째 아들로써 4대 국왕으로 등극한 광종도 선대 왕들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다 무너지고 말았다면 고려는 아마 일본과 같은 봉건제 국가의 길을 걸었으리라는 극단적 주장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4대 국왕으로 등극한 왕소 광종은 중국식 유교적 중앙 집권화를 바탕으로 전제 군주정을 이룩할 목적이 있었고 이를 위해 외국인 인사들을 기용하고 여러 호족 가문들을 조금의 명분적 꼬투리라도 잡으면 즉시 무자비하게 숙청하였으며 매우 강경하게 내부 호족 파벌들을 궤멸시키고 왕 일인에게 권력을 극단적으로 몰아넣기 시작하였다. 역사적으로 많은 왕들이 여기서 반란이나 암살로 실패하곤 하는데 광종은 거의 편집증의 끝판왕이라 해도 될 정도로 엄청난 의심을 바탕으로 일말의 반란 가능성이라도, 일말의 흘러가는 말이라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될만한 존재들은 계속해서 죽여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고자 했으며 그 피바람은 자신의 적자이자 장자이며 태자로 엄청난 정통성을 지닌 왕주(5대 국왕 경종)에게까지 위협감을 심어줄 정도였다.



마침내 노비안검법과 사병 규제로 호족들의 경제권과 군사권을 송두리째 약화시킨(아예 혁파하지는 못하였다.) 광종이 위에서 언급한 강력한 공포정치로 어느 정도 중앙 집권적 전제 군주국으로의 기틀을 다진 뒤, 승하하자 태자 왕주가 고려의 5대 국왕으로 등극하였다.



자신의 목숨에 대해 항상 안절부절하던 광종(합리적 의심이기는 했다. 어떤 왕이든 그렇게 강압적으로 왕권 강화를 하면서 암살, 반란 시도를 안 겪을 수는 없기 때문에.)은 자기 아들 왕주마저도 의심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비록 어린 시절 총명하다는 평은 듣긴 했어도 아버지에 비해 훨씬 심약한 인물이던 경종은 이렇듯이 어린 시절부터 자기 친부에게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압박을 받으면서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다고 느낀 몰락 호족들에게 동정심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엄청나게 많은 호족 가문들이 광종 치하에서 무고하게 꼬투리를 잡혔든 정치적 이유로 제거되었든 정말 반란 모의를 하다 걸렸든 간에 계속해서 멸문 당하거나 이름만 남고 사실상 평민과 다를 바 없는 처지로 전락하였으며 이런 숙청 바람에서 국왕에게 절대 충성하고 유교적 중앙 집권화에 찬동하던 호족 가문들만이 광종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었는데(이들 대다수가 문벌 귀족화한다.) 몰락한 호족 가문들은 승하한 선대 국왕 광종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은 몰락했는데 버젓이 살아남아 떵떵거리는 생존 호족 가문들에게 강렬한 보복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런 몰락 호족 가문들과 결탁한 인물인 왕선과 그 일파가 경종에게 '억울하게 변을 당한 조상님들의 한을 풀기 위해 복수를 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였고 안 그래도 몰락 호족들을 동정하고 알게 모르게 심리적 트라우마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경종은 이를 허락하고야 만다. 몇몇 학자들이 이 경종의 복수법 허용을 지배 계층으로 자리매김한 생존 호족층까지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받아들인 경종의 정치적 결단이 아니냐는 추정을 하기도 하나 의도야 어쨌든 경종이 예기치 않은 상황에 몰려 당황하다가 엄청난 피해가 나고서야 법을 폐지했다는 것에 있어서 설득력은 약간 떨어진다.



경종의 의도야 어찌 되었든 간에 경종은 '국가의 승인 하에 사람이 사람을 사적으로 복수해도 된다는' 정신나간 법을 승인한 셈이었는데 이를 유럽의 결투 문화나 중동 아랍 부족 사회의 복수극과 다를 것도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유럽의 결투 문화는 상상 이상으로 제약이 빡빡하며 결투 승인을 상위 계약자(왕 또는 자신이 섬기는 영주 내지 주교 등등)에게 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에 그런거 씹고 처벌 받아도 괜찮으니까 그냥 결투하겠다고 나서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사시키기 어려웠다. 중동 아랍 부족 사회의 부족 단위 복수전의 경우 무작정 상대를 복수의 명분으로 쳐죽이겠다는게 아니라 씨족 단위의 이권 다툼용 전쟁 명분으로 쓰던 것이라 개개인이 함부로 복수하겠다고 날뛰다간 도리어 부족 간 전쟁을 함부로 유발한 원인으로 자체 제거될 수도 있는, 일종의 지역 문화 규약에 가까웠으므로 국가에서 아예 인간이 인간을 함부로 사적으로 해꼬지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여튼 975년, 비단 호족들 뿐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폭 넓게 '복수법'에 따라 원한을 가진 상대에게 사적인 복수를 행하는 것이 허락되면서 순식간에 전국 각지로 참극이 벌어졌다. 애당초 복수의 범위, 복수의 강도도 전혀 지정되어지지 않은 법이라 그냥 길 지나가다 수 틀려서 때려죽인다던지 민가 침입해서 강간 살해를 해도 복수라고만 하면 만사오케이인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



애당초 그 놈의 모호한 복수의 이유를 각 지역 토착 호족들이나 현령들이 어디까지가 옳은 복수이고 어디까지가 그른 복수인지 판단하기도 너무 힘들거니와 그냥 복수랍시고 일 저질러도 복수겠거니하고 신고가 잘 들어가질 않으니 가짜 복수더라도 잡힐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법이었던 것. 또 상대와 그냥 입씨름이나 드잡이질, 재산의 손괴 정도의 문제로도 복수를 하겠답시고 수 틀려서 사람 죽이는 짓들이 엄청나게 발생하니 나라 꼴이 개판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현실판 퍼지데이를 찍은 것.



결국 이 복수법에 의해 경종의 삼촌뻘이자 태조 왕건의 아들들로 왕실의 고위 종친급인 천안부원군(효성태자), 원녕태자까지 살해당하자 경종은 그제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즉각 법을 폐지하고 복수법 건의를 올린 왕선을 귀양보내버림으로써 모든 일이 일단락되었다.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 이 시기에 자기 손으로 저지른 엄청난 광기의 참극 등에 질려버린 것인지 경종은 이후 모든 것을 놓고 오로지 여색과 음주가무에만 집착하는 암군이 되었으며 얼마안가 요절하였다.



그 시대에 공식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사료는 없으나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네 줄 요약



1. 광종이 왕권 강화하면서 원한을 품은 일부 호족 세력들.



2. 광종이 죽고 경종이 즉위하자 몰락 호족들과 그 지지를 등에 업은 애들이 사적 이유로 복수를 하게 해달라는 법안을 건의해서 허락받음.



3. 복수법 시행. 1년 만에 개난장판.



4. 왕실 종친까지 죽어나가자 경종이 법안 폐지.

2 Comments
꽐라센도 2018.02.11 21:49  
군중한테 정의를 맡겨노면 이꼬라지남

럭키포인트 339 개이득

대통령 2018.02.12 00:47  
정말 미친 법이였네

럭키포인트 555 개이득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