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타이지와 천연두, 면역이 권력이 된 순간


청태종 -홍타이지
홍타이지가 어릴 때 천연두를 앓고 살아남았다는 건 꽤 유명한 이야기다. 청태종실록이나 만주 문헌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되는데, 이게 그저 "운 좋게 산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다. 당시 만주 사회에서 천연두는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었다.
거의 핵무기급 재앙이었다. 생업은 반농 반수렵이었는데 전통적으로 한족 농경지역보다 천연두 면역력이 낮았음. 한번 전엽병이 돌면 집단이 통째로 무너질 정도. 이때 살아남은 사람은 말 그대로 ‘선택받은 자’ 취급을 받았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생존자 버프를 받은 셈이다.
여진족은 천연두를 극도로 무서워했다. 죽을 확률도 높고, 일단 살아남으면 다시 안 걸린다는 경험칙이 퍼져 있었다. 그래서 병 이긴 사람은 "다시 안 죽는 강한 놈"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 분위기 속에서 홍타이지가 “천연두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건강 자랑이 아니라, 리더 자격을 상징하는 정치적 상징 자산이었다. 《청태종실록》에도 조선 정벌 끝나고 "마마 피하려고 조기 철수함" 같은 대목이 등장하는데, 그 정도로 두려워했던 병이라는 뜻이다.
청태조 -누르하지
누르하치 죽고 나서 후계자 자리 놓고 개싸움 났다. 다이샨, 아민, 몽고얼타이 등 짬 많은 장군들 사이에서 홍타이지는 무공보다 정치력, 정무감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이샨이 “병 이겨낸 것도 크고, 정무 능력도 괜찮더라”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만주 문헌에 나온다. 즉, 홍타이지는 “그냥 튼튼한 애”가 아니라, “병도 이겨내고 정치도 잘함”이라는 점에서 후계자로 낙점됐다는 해석이 강하다.
다이샨 - 누르하치의 차남
물론 "천연두 이겼다 = 왕 됨" 이건 너무 단순한 공식이다. 홍타이지는 그 외에도 외교력 좋고, 리더십 있고, 신중한 성격 등 복합적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연두 생존이라는 상징성은 크다.
전염병 공포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시대에, 그것을 이겨낸 자는 그 자체로 신체적, 정신적 강자로 인식됐고,
그런 점에서 홍타이지는 후계자 경쟁에서 압도적 상징성을 쥐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