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쌀이 남아돌아 수출하던 시절 이야기


요즘 일본이 쌀이 모자라 한국쌀 수입한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한때는 일본도 쌀을 수출하던 시절이 있었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실상 일본은 여전히 농업 국가였음. 당시 일본의 주된 수출품은 생사, 차, 쌀, 해산물 등이었으니까
수익이 높았던 건 생사와 차였지만, 대부분의 농산물은 물론 쌀이었음. 결국 일본정부는 쌀생산 증가를 위해 '메이지 농법'이라 불리는 신농법을 도입했음.
별거없음.
관개시설 근대화, 쟁기와 우마보급, 비료 사용 등등등임. 이걸로 일본의 쌀 생산량은 질적으로 개선되어 점차 증가하기 시작함.
1880년대 초까지 일본의 쌀 생산량은 1 헥타르당 2톤을 못 넘었지만 1888년부터는 2.5톤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음.
이건 곧 일본미의 수출로 이어짐.
이전시대의 에도 막부는 쌀의 수출을 엄금했지만, 생산량이 증대되면서 신정부가 수출상품으로 쌀을 이용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 거였음.
1872년부터 수출된 일본쌀은 유럽과 미국에서 절찬리에 소비되었음. 과자나 풀의 재료가 됨. 특히 리조또를 먹는 이탈리아에서는 일본쌀이 하층민들의 식사로 이용되었음.
그렇게 수출이 활성화되며 1880년대 말에 일본은 130만톤의 쌀을 수출했음.
신품종 개발도 이어졌음. 대표적인 3개 품종만 꼽자면
우선 "신리키(신력)"이 1877년 효고현에서 발견됨. 늦게 익지만 그만큼 수확량이 많았음. 앉은뱅이벼라 줄기가 튼튼하지만 병충해에 약했음.
맛도 별로 안 좋아서 지주들은 싫어했지만 생산량 하나는 와따여서 농민들이 좋아함. 이건 일제강점기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에 최초로 도입된 일본종임. 먹으면 든든하고 짚도 질겨서 쓰임새가 많았다나.
간토를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나중에 고시히카리가 재배되기 전까지 가장 넓게 퍼진 품종임. 현대의 일본 내 거의 모든 품종의 유전적 조상 중 하나임.
1882년 시즈오카현에서는 "아이코쿠(애국)" 품종이 발견됨. 발견 당시 품질이랑 맛은 별로 안 좋았지만 수확량이 많았다고 함.
냉해에 강해 혼슈 동북쪽의 도호쿠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나갔지만 밥맛이 나빠 쇼와 시대에 거의 퇴출되었음.
은방주(긴보즈), 육우132(리쿠바 132), 고시히카리 등의 선조이고, 후손들에게 내한성을 물려주었음
마지막은 "가메노오(귀미)" 품종임. 메이지 유신 이전부터 쌀 품종개량에 관심이 많았던 쇼나이 번 지역(야마가타현)의 재래종임.
재미있는 발견 일화를 가진 벼인데, 1893년에 한파가 와서 야마가타현 지역의 논이란 논은 다 얼어 뒤져버린 적이 있다고 함
근데 이때 아베 가메지란 농부 하나가 신사를 가다가 이삭이 다 대가리 처박고 죽어있는 한 논에서 쌩쌩한 이삭 3가닥을 발견했음.
하지만 자기 논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베는 그 땅의 원래 주인에게 사정사정해서 이 3가닥에서 자란 볍씨를 받을 수 있었음.
데라코야(일본판 서당)에서 공부한 거 외에는 무학이나 다름없던 가메지였지만 3년간 개지랄한 끝에 결국 이 셋을 교잡해 자기 밭에서 수확을 거뒀음.
하지만 1896년에도 한파가 와서 다 고개 처박고 얼어죽는 와중에 단 하나의 이삭이 살아남았음. 가메지는 이 녀석을 온 힘을 다해 길렀고, 그게 바로 가메노오 품종임.
(실제 가메노오 쌀임)
가메지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농부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종자를 나눠주면서 재배를 독려했음. 이 덕에 현대 일본 쌀의 주된 선조 중 하나인 가메노오가 널리 퍼져나감. 일개 농부였던 가메지는 이 공로로 훈장을 받았음.
가메노오 쌀은 입자가 크고 단단한데다 밥맛도 좋고 술맛도 좋음. 유명한 고시히카리의 증조할배 뻘 되는 조상이기도 함.
내한성이 뛰어나지만 병충해에 약했음. 호쿠리쿠와 도호쿠에 널리 퍼졌고 양조용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음. 고시히카리도 맛은 카메노오에게 물려받았음.
하지만 1890년대부터 슬슬 일본 인구 증가와 산업화가 시작되었음. 그리고 교통의 개선으로 쌀잡곡 혼식을 하던 지역들도 쌀만 먹기 시작하면서 수요 자체가 크게 늘어남.
일례로 후쿠이현은 조밥에 피밥까지 먹는 지역이었으나 청일전쟁 이후 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쌀만 먹기 시작했음.
이 상황이 되자 일본은 쌀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환했음. 처음에는 식민지 대만에서 쌀을 수탈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대만쌀은 인디카였기 땜에 평가가 아주 박했음.
대만이 자포니카 포밍되는 건 1926년 대만기후에 적합한 자포니카인 펑라이 쌀(봉래미)가 개발되고 나서임. 그외에는 안남미로 불리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쌀이나 타이미로 불리는 태국쌀도 수입했지만 이것들 역시 인디카였음.
어쨌건 1885~89년 일본의 평균 쌀 수입량은 35,368석이었지만, 1890~94년에는 910,465석이 되었고 1905~09년에는 평균 3,613,946석으로 미친듯이 급증함.
그리고 그 중 과반 이상이 조선의 쌀, 일명 조선미였음. 조선미는 일본미와 동일한 자포니카였던데다 기후가 비슷해 일본쌀과 비슷한 미질을 가졌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적극 수입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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