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에 등장한 인해전술 카운터.jpg
사실 인해전술이라고 하지만 1.4후퇴 이후 서울을 뺏길 때까지 한반도에 투입된 중공군의 숫자는 남한과 UN군의 숫자보다 적었다
우회기동으로 전선 중 약한 곳을 집중 공격시켜서, 전투가 열리는 전장에선 중공군이 항상 더 많았었고 이러한 충격 때문에 '인해전술'이라는 명칭이 붙게된 것
괜히 6.25 전쟁사 연구하는 학자들한테 펑더화이(팽덕화)의 군재가 굉장하다는 소리를 듣는게 아니다.
여담으로 펑더화이는 무모하게 전쟁을 일으키고 나서 개같이 쳐발리고 남아있는 군대도 제대로 없는 주제에 뻗대는 김일성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이후 펑더화이는 중국 내에서 군대 서열 2위인 국방부장 자리를 맡아서 중국 인민군 개혁에 앞서다가 동향 사람인 마오쩌둥에게 대약진 운동에 관련하여 직언을 했는데
이게 문제가 되어 문혁 당시 홍위병들에게 정말 미친듯한 고문과 조리돌림을 당하다가 1978년 사망했다.
하여튼간에 마오쩌둥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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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갈아버림
처음 넘어온게 30만
그때는 국군+un군보다 적었고
종전까지 투입된 병력만 240만
전사자가 거의 백만
중공군이 제일 무서워 했던게
미군의 포사격이랑 융단폭격
실제 전쟁터에서 포탄에
대한 공포가 엄청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