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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게짚왕 9 1629 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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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부터 나무위키에서 부분적으로 퍼옴..       



4. 결말[편집]

장지량 공군참모총장과 강기천 해병대사령관이 현지에 달려갔고, 국방부에서는 합동수사반을 구성하여 현지조사에 나서게 하였으며, 해병 20명과 공군 14명을 연행하여 조사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잊히고 해병대 출신의 회고글 혹은 해병대의 각종 야사 썰들을 모아 놓은 해병대 출신들의 블로그 등에서나 언급되는 정도이지만, 사건이 발생한 당시에는 주요 일간지에 관련 기사가 도배가 될 정도로 엄청나게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정부와 군 상층부에선 처음에 관련자 전원을 군사재판에 회부한다고도 했으나, 당시에는 베트남 전쟁 상황이라 장교들이 많이 필요한데 관련자가 너무 많아서인지 주동자들만 군사 재판에 회부하고 사건을 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그 주동자인 전도봉도 퇴학당했지만 월남전으로 인해 복귀하였으니 실제 처벌 받은 사람은 없다. 전도봉 소위는 일단 이 사건의 주동혐의로 현역부적합전역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전도봉에게 현역 대한민국 육군 병 입영통지서가 발부되었고 이에 전도봉은 "장교로 군복무했던 사람이 뭔 현역병이냐!"고 반박하는 바람에 불명예 전역자 주제에 계급을 그대로 인정받고 복직되었다.

해병대 측의 주동자였던 전도봉 소위와 당시 공군 비행학교 당직사관이었던 이양호 대위는 30년 후 각각 해병대사령관과 국방부장관으로 해후(?)하게 되며, 공교롭게도 둘 다 임기를 채 못 마치고 재직 중 비리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다(…). 근데 여러 해병 출신들이 전도봉 장군은 뇌물혐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여기저기에 우겨대서 정말 무죄 판결을 받은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것 역시 구라다.

전도봉 장군도 엄연히 대법원 최종심에서 뇌물혐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은 해병 예비역들은 전도봉 장군을 진정한 해병, 위대한 사령관 중 한 분으로 추앙한다. 근데 추앙받는다는 분이 해병대사령관 이취임식엔 초대받지 못하는 기수열외를 당하고 있다.[9]

전도봉의 회고록에 따르면, 위 사건을 주도한 똘끼깡을 인정받아, 월남전에서 해병대 수인(囚人, 죄를 지어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로 구성된 해병대 수인소대(...)의 소대장을 맡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수인소대는 깡패 출신들은 깡다구와 용기 하나는 강할거라고 생각해서 위험한 임무를 맡기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해병대 수인소대원들이 하도 말을 안들어 수인소대의 깡패 두목을 영창에 보내자 소대원들이 우리 두목 다시 데려 오라고 전도봉 장군 앞에서 집단으로 안전핀 뽑은 수류탄 들고 설쳤다는데 말빨로 제압했다고 한다. 그리고 깡패 출신들은 깡 하나는 좋아서 전투시에 용감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전투가 벌어지면 해병대 수인소대원들은 제일 겁쟁이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반면 실제 전투시에 가장 용감하게 잘 싸우는 병사는 모범적이고 평범한 부류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도봉의 회고록엔 의심 가는 점들이 많다. 당시 사회의 "문제아"(사회운동가, 사회불량배)들을 "군대 갈래, 깜방 갈래?"라는 반강제 조건으로 소집한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여기서 해병대로 징집된 사람도 있을것이다. 게다가, 당시 해병대에는 징집기수도 존재했다.[10] 다만 월남으로 간 파병장병들은 전원 지원자였다. 오히려 전도봉이 소대장이던 시절에는 파병 보낼 해병대 장교는 모자랐어도 파병을 원하는 병들은 넘쳐났었다. 해병대 뿐만이 아니라 육해공군에서도 해외 파병은 사회 진출시 경력을 인정받기 좋은 기회고 월급도 꽤 나왔기에 가고 싶어도 못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전과가 그렇게 심하지 않을 경우 쉬쉬하는 경향이 많고 전과자를 크게 차별하지도 않았기에 해병대 뿐만이 아니라 육군에도 전과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로만 구성한 "수인소대"가 있었다는건 심히 의심해야할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수인들로만 소대를 만들만큼 많은 전과자들이 파병되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실제로 같은 시기 제2해병여단(청룡부대) 출신 참전용사도 수인소대는 처음 들어본다는 말을 한다. 청룡부대는 당시엔 여단규모라 그리 크지 않았으니 수인소대같은 파격적인 게 있었다면 모를 리가 없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과장되었거나 전도봉이 지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몇몇 전과자 출신 파월장병이 존재했다는 것을 "수인소대" 혹은 "형벌소대"로 과장시켰다면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해병대, 그리고 특히 국가 유공자들인 해병대 파월장병들의 위상을 깎아먹는 비겁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깡"으로 인정받아서 운좋게 파병가는 걸로 끝났다는 식으로 적혀있는데, 워낙 파병 인원이 많았던 육군의 경우는 장교가 부족해서인지 밀수나 비교적 가벼운 범죄로 걸린 장교들 중 일부가 징계나 재판을 받는 대신 파월로 형을 때우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밀수도 심각한 범죄다. [11]

즉 병 출신이든 장교 출신이든 골수 해병들의 허풍과 이빨은 믿을 게 못된다. 워낙 허풍 구라 소설들을 잘 지어내기 때문이다.

5. 왜곡[편집]

사건 자체만으로만 보아도 일단 명백하게 해병대 소속 여러 장교들이 군법적으로 심각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이며, 알량한 '자존심'의 논리로 보아도 해병대가 자고 있던 공군에게 비겁한 기습을 했음에도 결국 공군에게 처발린, 해병대로서는 참으로 치욕적인 흑역사 수준의 사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황당한 사실은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도 어처구니없게도 이 사건을 정반대로 왜곡하여 마치 해병대가 이긴 무용담인 것처럼 날조한 여러 버전의 구라 소설들이 예비역 해병들의 블로그 등을 통해서 퍼져졌다.

사실, 왜곡 소재 대부분이 당사자인 전도봉 사령관의 일대기에서 나왔으니 당연하다. 인터뷰를 보면 자신이 소시적에 조폭을 때려잡았다고 주장하거나 월남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 등, 해병대 시절의 믿거나 말거나 식의 허풍스러운 무용담 일대기 중 한 일화로 끼워서 말하였다. 이런 구전 이빨에서 흔히 나오기 마련인 허풍, 왜곡과 변명을 토대로 후대의 해병들이 거기에다 더 보태고 조작하여 쓴 해병대 특유의 정신승리성 소설들인 것이다.

예를 들면, 아래과 같이 왜곡시키는 식인데… 사실 조작과 역사 왜곡은 기본이요, 군범죄 정당화, 상급 지휘관에 대한 하극상, 전우의 죽음에 대한 박대까지 어우러져서 헛웃음이 나오는 훌륭한 무협지블랙 유머가 되어버렸다(…). 자신들은 자랑이라고 이빨까고 있는데, 읽는 입장에서는 너무 빈틈이 많아 오히려 웃기는 글이다. 아래에 나오는 해병측 주장의 신뢰도는 구라와 팩트 왜곡 투성이다. 

35기 소위들의 김해공군기지 습격사건

66년 8월 8일에 발생했던 이른바 해병학교 사관 35기 기초반 장교들의 김해 공군기지 습격사건의 진상을 공개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즉 주말인 8월 6일 부산에서 외박을 한 전도봉(全道奉) 소위를 비롯한 7명의 해병학교(35기) 기초반 소위들[12]이 승차한 부산발 진해행 시외버스가 구포다리 건너 첫 번째 정류장에 정차했을 때 승객이 많아 버스의 앞문으로 승차하기가 어렵게 된 빨간 마후라를 두른 10여 명의 공군소위들[13]이 주먹으로 버스의 후문을 두들기며 문을 열라고 소리쳤는데, 그 때 그 후문쪽 좌석에 윗저고리를 벗은채 앉아 있던[14] 35기 소위 하나가 앞문으로 타 하고 소리치자 공군소위들 중의 하나가 이 새끼들…하며 앞문으로 갔고, 또 차안에서 누군가가 저 새끼가…하며 뒷문을 열어 제치고 뛰쳐 나간 것이 도화선이 되어 결국 그 10여 명의 공군소위들[15]은 윗저고리를 벗고 앉아 있던 7인의 해병소위들에 의해 묵사발이 되어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솜씨를 발휘했던 그 7인의 소위들은 '황 우'라는 두목을 굴복시켜 부산바닥의 주먹계를 평정[16]한 패기만만한 투사들로 알려지고 있었다.[17] 그런데 공군소위들을 길바닥에 뉘여 놓고 버스에 올라타고 졸면서 가고 있던 그 7인의 소위들은 한참을 달리고 있던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는 순간 진퇴양난의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버스를 앞뒤에서 가로막은 2대의 공군 닷지차에서 뛰어 내린[18] 수 십 명의 공군장교들[19]이 손에 든 몽둥이로[20] 소위들이 앉아 있는 뒤쪽 창문을 박살을 내며 문을 열라고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와중에 35기 소위 2명은 머리를 다쳤고, 승객들 중 진해여고 학생 1명[21]과 해군소위 1명[22]도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도 냉정을 잃지 않았던 해병소위들은 운전기사로 하여금 군용트럭 옆을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가게 함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공군장교들도 그 이상의 보복은 하지 않았다.

한편 귀교후 머리에 중상을 입은 1명의 동료장교를 진해병원으로 실어 보낸 35기 기초반 장교학생회에서는 취침시간을 이용하여 중대장학생 김도삼 소위와 부중대장학생 김무일 소위, 군기부장 전도봉 소위 등 3인의 간부와 각 근무자들과 소대장 등 13인이 참석한 비상대책회의를 개최하여 자존심에 관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의한 끝에 다음과 같은 행동계획으로 그 다음날 이른 아침 김해 공군기지를 습격하되 일절 무장은 하지 않고 복장은 정모와 카키 근무복을 착용키로 결정했다.
즉 전체인원 142명 중 입원환자와 당직자 등 13명을 제외한 129명이 8일(월) 새벽 2시에 기상하여 은밀히 철조망을 타넘고 경화역에 집결, 04시에 출발하는 열차에 승차하여[23] 진영역에서 하차, 역전 도로변에서 3개 제대로 나누어 시계나 돈을 주고 화물트럭이나 버스를 타고 공군기지 정문 앞에 집결하기로 했는데, 결국 화물트럭을 타고 6시 10분 전에 공군기지 정문앞에 도착했던 1.2제대는 서둘러 제대별로 대오[24]를 정비하여 정문으로 진입을 헀으나 낌새를 챈 2명의 공군 헌병이 당직실 보고 운운하며 제지를 하는 바람에 지체할 겨를이 없었던 한 장교가 이 새끼 말이 많아하며 아구통에 일격을 가한 다음[25] 그들의 무장을 해제시켜 그들을 앞세우고[26] 비행학교 조종반중대의 막사가 있는 곳[27]까지 기상나팔 소리를 들어가며 질서정연하게 구보를 해 갔다.[28]

그리하여 6시에 기상하여[29] 막사[30] 안팎에서 내무정돈과 세수를 하고 있는[31] 약 50명의 조종반 장교들[32]을 닥치는 대로 주먹과 내무실에 있는 운동기구 등으로 가격하여 일방적인 완승을 거두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33], 그 현장에 버스를 타고 왔던 약 40명의 3제대 장교들이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에 갑자기 터진 연막탄을 신호로 전 기지의 장사병은 즉시 상의를 벗고[34] 중앙연병장에 집합하라는 방송이 사방에서 들리자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기초반장교들은 몇몇 간부장교들의 의견에 따라 즉시 비행학교 당직실이 있는 학교본부로가서 정열을 했다.

그런 다음 당직실로 들어간 간부장교들이 당직사관 이양호 대위에게 양측 학교장[35]에게 사태 수습을 건의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하자 이양호 대위[36]는 학교장이 7시에 출근하니 그 때 가서 이야기하자고 하기에 기초반 장교들은 당직실밖에 정열하여 왼쪽 손을 왼쪽 허리춤에 갖다대고 오른손을 흔들며 '나가자 해병대'가와 '청룡은 간다'등의 군가를 부르고 있었는데, 어느 새 구름떼처럼 연병장에 모인 갈고리와 쇠스랑 같은 소방기구와 돌멩이를 손에 쥔 약 2000명의 병력[37]이 일제히 돌멩이를 던지며 접근해 오는 바람에 누군가의 제의로 격납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연습기의 날개 밑에 피신을 했으나 새까맣게 날아온 돌멩이가 격납고 속으로도 날아드는 바람에[38] 어쩔 수 없이 철수를 단행, 활주로 끝에있는 철조망 지대까지 공군들의 추격을 받는 가운데 약 2키로를 구보하여 견고하게 가설돼 있는 철조망을 부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타 넘었으나 철조만 바깥쪽에 있는 70~80 야드[39] 너비의 수초가 우거진 천연늪을 헤엄을 쳐서 건너는 과정에서 이 소위가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맨 뒤쪽에 쳐져 맥없이 껍북거리고 있는 이 소위를 발견하여 늪 밖으로 끌어낸 사람은 김무일 소위와 이무수 소위였고, 이강오 소위를 비롯한 3~4명이 그를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을 시도해 보았으나 이미 입과 항문이 열려 있는 그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40] 결국 공군기지 내의 의무중대로 운반이 된 이 소위는 7시 50분 그를 검안한 군의관에 의해 사망이 확인되었는데, 그 때 그 의무중대 병실에는 부상을 당한 20여 명의 비행종대 피교육 장교들과 12~13명의 해병학교 기초반 장교들이 엠불란스에 실려 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음은 이 사건이 남긴 사법적인 처리문제와 관련된 비화이다. 진해교육기지사령부에서는 전도봉 소위를 비롯한 6명의 주동자를 구속하는 한편 35기 기초반중대의 중대장 송모 대위와 구대장 3명도 구속하여 군법회의에 회부했다. 그런데 그러한 조치와는 달리 약 한 달 전[41]에 제7대 사령관으로 취임했던 해병대사령관 장기천 장군은 엄벌에 처할 경우 특히 35기 장교들과 그 후배 장교들의 사기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하여 사고를 낸 35기 장교들과 비행학교 피교육 장교들 간에 자매결연[42]을 맺게 하는 방안을 구상하여 공군참모총장이던 장지량 장군의 동의를 얻은 다음 그러한 수습방안을 장 총장과 함께 김성은 국방부 장관과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시하여 쾌히 승인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강기천 사령관은 장지량 총장과 함께 김해 공군기지와 진해 해병교육기지사령부를 차례로 방문하여 유감표명을 했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쌍방 간의 자매 결연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군법회의에 회부된 그 10명의 장교들[43]에 대해서는 강기천 장군이 군법회의의 설치권자인 교육기지사령관 박성철[44] 준장에게 선고유예를 하도록 지시를 했으나 박성철 장군은 자신이 임명한 재판장[45]에게 2년을 선고해주면[46] 자기도 생색을 좀 내고 강기천 장군도 감형을 할것이라고 했으나 처음부터 형을 선고할 생각을 갖지 않고 있던 강복구 대령은 군법회의의 사회자가 "재판장의 선고가 있겠습니다"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회전의자를 뒤로 돌려 면벽[47]을 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바람에 여러 차례의 선고공판이 유회되는 별 희한한 해프닝이 벌어지곤 했다.[48]

일이 그렇게 되자 해병대사령부 법무감 이양우 해군 법무대령[49]은 사건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 직접 진해로 내려가 핵심 주동자로 지목되고 있던 전도봉 소위에게 병역을 필하게 해 주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을 것을 권고하기에 이르렀고, 그러한 권고를 받은 전도봉 소위는 함께 기소된 자기 이외의 모든 장교들을 석방시켜 준다면 기꺼이 군복을 벗겠다고 말함으로써 6개월 간 진해 해군헌병대 영창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아왔던 10명의 장교들은 전원 풀려나게 되었고, 그들 중 모든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었던 전도봉 소위만은 민간인의 신분이 되어 실의 낙향헀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일 후 전도봉씨는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라는 병무청의 입영통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으나 그 입영통지서를 들고 해병대사령부 법무감을 찾아갔던 그는, 잘못 처리된 것을 사과한 이양우 제독의 권고로 국방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솟장을 낸 것이 기사회생[50]의 전기[51]가 되어 월남전선으로 가는 조건 부로 소위의 계급을 되찾는 충격적인 홍복을 누렸다.[52]

그리고 그런 운을 타고 났던 전도봉 소위는 그로부터 30년 후[53] 제 22대 해병대사령관이되어 합참의장을 거쳐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한 왕년의 김해비행학교 당직사관 이양호 대위와 숙명적인 재회를 했다. 전해지고 있는 바에 따르면 구속 기소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던 이양호 대위도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했다고 하니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써 남긴 '必死卽生'이란 글귀를 새삼 되씹어 보게 한다.

한편 그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게 된 김해공군기지 당직사령 최 모 중령은 그 후 대한항공에 취업했으나 69년 12월 11일 그가 조종한 강릉발 서울행 KAL기가 승객 47명 및 승무원 4명을 태운 채로 납북되는 바람에 그를 악운을 타고난 사람으로 기억되게 했다.[54]


차리리 공군이 전투기 몰고 기습했는데 해병들이 전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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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1 게짚왕  
개병대
9 Comments
게짚왕 2018.05.02 00:26  
개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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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짚왕 2018.05.02 00:32  
어디 마린새끼들이 레이스 편대한테 깝침
황소 2018.05.02 00:39  
개병대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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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모굴라스 2018.05.02 09:27  
개병대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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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선이 2018.05.02 11:25  
어휴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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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투베 2018.05.02 12:07  
주동자란 놈들이 사령관, 국방부 장관까지 올라가?????? ㅅㅂ 진짜 조선군 존나게 잘돌아가겠네 저딴놈들이 뇌물수수하고 세금 야금야금 해쳐먹는거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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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2018.05.05 12:35  
사건 재미있게 봤는데 처리가 진짜 웃기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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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코인 2018.05.08 04:02  
수어사이드 스쿼드 플랜이 있었네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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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 2018.05.16 14:43  
ㄹㅇ개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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