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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는 해로운 새다." 역사적 삽질 - 제사해 운동

게짚왕 4 1041 3 0
제사해 운동, 한자로는 除四害运动/除四害運動(네 가지 해로운 것을 제거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사실 이쪽이 정식 명칭이지만, 특별히 참새만을 때려잡는 걸 따로 타마작운동(打麻雀运动/打麻雀運動)이라고도 한다.

독재자의 무개념한 발언이 해당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준 확실한 예시. 
정확히 말해서 대약진 운동의 마무리를 장식한 뭐같은 운동이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1955년 농촌의 현지지도를 가신 大중화인민공화국의 위대한 령도자 마오 동지께서는 
농업지도 중 어느 새를 보시고 그것을 위대하신 검지손가락으로 갓 핑거를 시전하시며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麻雀是害鸟. 마작시해조)."

그리고 며칠 후, 마오와 14개 성의 당서기들은 《전국농업발전강요(全國農業發展綱要)》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농업발전을 위한 정강을 포고하게 되는데 전체 40개로 이루어진 전문에서 제27항이 바로 제사해(除四害)였다. 
여기서 사해는 중국 인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즉 네 가지 해로운 것으로 
이는 각각 모기(蚊子), 파리(苍蝇), 쥐(老鼠) 그리고 참새(麻雀)였다.

제27항: 사해를 제거한다. 1956년부터 개시하여 각각 5년, 7년, 혹은 12년 내에 모든 지방에서 쥐, 참새, 파리, 모기를 소멸시킨다.
(二十七) 除四害。从1956年开始,分别在5年、7年或者12年内,在一切可能的地方,基本上消灭老鼠、麻雀、苍蝇、蚊子。

이 사해를 박멸하겠다는 마오의 의지는 1958년 10월에 전국적인 '제사해 운동'으로 이어졌다. 
마오는 연설을 통해 중국 인민에게 해를 끼치는 사해를 박멸하겠다고 선언했다. 
웃기게도 마오쩌둥의 말은 모순이 있는 것이, 모기와 파리, 쥐는 가뜩이나 박멸하기 매우 어렵다. 
근데 거기다가 마오쩌둥이 고맙게도 참새를 박멸시켜 준 덕분에 
참새의 먹이였던 해충과 모기 그리고 파리들은 더욱 번성해, 도저히 박멸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3. 전개 - 그 한마디로 참새가 전멸되다 

이 말씀에 힘입어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인민들은 다른 세 가지 해악을 비롯한 '그 새'를 잡는 데 동원되었다. 
사회과학원에서는 그 새가 농작물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고, 
농촌에서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그 새를 잡는 데 힘썼다.

인민공사의 동지들이여, 그 새를 박멸하는 것은 마오 주석과 당 중앙이 우리에게 하달하신 정치적 임무입니다. 
우리 대대는 집집마다 총동원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오를 지어 모두 새총을 쥐어야 합니다. 
새총을 쓸 수 없다면 징을 울립시다. 징이 없다면 세숫대야라도 울립시다. 
세숫대야가 없다면 모두 목청껏 함성을 질러봅시다. 모두가 이렇게 한다면 그 새가 박멸되지 않겠습니까?
뭘 하냐구요? 저 X같은 새 놈들을 놀래키기 위해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 새들이 땅이나 가지 위나 지붕 처마에 앉지 못하게 하여 저 양식이나 축내는 교활한 새끼들을 지쳐 죽게 해야 하는 겁니다!
- 당시의 공산당 연설문 중


저 연설문이 농담이 아닌게, 넘쳐나는 인력으로 참새가 앉아서 쉬지 못하게 해 참새가 탈진하여 떨어지게 만들었다. 대단한 잉여력이다! 
말 그대로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세. 참새가 가장 덩치도 크고, 임팩트도 강해서인지 나머지 3종류는 아무래도 묻히고 말았다. 
아니 나머지 3개가 죽일 만한 거잖아!! 해충: 계획대로



 


잡은 참새를 달구지에 매달고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중국 인민들. 
일일전과(一日战果)란 글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 많은 참새를 단 하루 만에 잡았다. 
이런 짓을 전 대륙에서 1958년 한 해 동안 계속했다.스테판 제반니! 참새들을!

일반적으로 참새를 잡는 방법은, 총이나 새총과 같은 물리적인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늘을 날도록 하여 탈진시켜 잡는 것이었다. 
잠자리채, 올가미, 새총 등은 참새를 잡기엔 너무 비효율적 이였고, 그렇다고 인민들에게 총을 풀었다가는 
내전 우려 및 치안불안 등의 이유로 다른 문제가 생기는 데다가, 참새는 총으로 잡기엔 표적이 너무 작았다. 
고로, 특정한 날을 정해 참새가 앉을 만한 곳에 사람을 풀어놓고 계속 시끄럽게 하거나 무언가 휘둘렀다. 
참새들은 착륙을 못하고 탈진할 때까지 날다가 추락했다. 
물론 이런 방법 말고도 여러 다른 방법이 이용되었으나 이렇게 탈진시켜 사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일본 만화 창천항로 1권 中


의도는 좋았다?

이런 참새사냥을 포함한 제사해 운동은 사실 전반적인 위생개선운동과 같이 실시된 것이며 의도는 좋은 것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요즘도 그렇지만 위생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여름만 되면 쉽게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마오는 이를 근절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각급 학교에서 위생 검사, 양치질하기 운동, 집이나 거리 청소하기 운동, 여러 방역구제가 실시되었고 
화장실이 따로 없던 농촌 지역에서는 재래식이지만 화장실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도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도 저런 데가 있었으며 쥐약을 배급해서 쥐잡기 운동을 하기도 했고 
파리, 모기를 없애기 위해 DDT 등의 소독약을 뿌리는 방역 조치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저런 최소한의 위생 조치를 취하면 평균수명이 제법 올라가긴 한다. 
장기간 경제난에도 평균수명이 69세를 기록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가 좋은 예.

문제는 이런 운동에, 위생과는 별로 상관없는 애꿎은 참새를 끼워넣은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이 1960년대에나 깨달은 사실이었지만, 참새는 곡식만 훔쳐먹고 사는 새가 아니며 
사실 곡식 낟알 보다는 농사에 해를 끼치는 각종 곤충과 벌레들을 훨씬 더 많이 잡아먹고 사는 동물이었다!


 
끝은 창대하리라 

이러한 항쟁의 결과는 59년에 나타났다. 
무려 1958년 한 해 동안만 참새 2억 1,000마리가 학살당해 거의 멸종의 위기에 이르자 
참새가 잡아먹고 살았던 메뚜기 떼등 각종 해충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역사에 길이 남을 대흉년이 발생해 공식발표 1,000만 명, 평균 2,000만 명, 최대 4,000만 명의 기록적인 아사자가 발생했다. 
이는 독소전쟁의 소련인 전사자보다 많다. 우리나라의 인구가 사라져도 평화로운 대륙의 패기...
심지어 숫자가 약 2,000만에서 4,000만 사이고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한 게 독소전쟁과 똑같다.
(독소전쟁 1941-1945 : 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전쟁 중 하나로, 독일 제3국이 소련을 대규모로 침공하면서 발발했다.
인류역사상 규모와 피해가 가장 큰 전쟁으로 꼽힌다.)


이래도 감이 안 잡힌다면 흑사병 때문에 죽은 유럽의 인구가 대략 2 ~ 3,000만 정도다! 
근데 지금 중국 인구가 13억을 넘는다. 거기에 1979년부터 1가정 1자녀 정책을 시행했는데도 그 정도인 걸 생각해 보면 당시 출산율이...

결국 당의 지도부는 소련 서기장인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빌어 연해주에서 20만 마리의 참새를 공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후 참모들이 마오 주석에게 이 '참새전쟁' 을 지속할지에 대해 물으니, 
이 모든 사태를 시작한 장본인이신 마오 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算了(쑤안러): 됐어.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구사할 수 있는 이 단순한 두 글자가 주석님의 입을 통해 발표됨으로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무의미한 도살극은 마침내 종료되었다.




결국, 한 지도자의 병크였다.

4 Comments
dfsfef 2018.05.30 15:33  
다르게보면 정말 소름끼치는게

60년전에 4천만명이나 굶어죽었는데 지금 인구수 15억명

저 4천만이 굶어죽지않고 새끼를 쳤다면 생각만해도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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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셧제 2018.05.30 17:53  
현시대의 해로운새 파란색 짹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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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2018.05.30 18:49  
저거때문에 일베 충이 생기게 된거임

나비효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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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사냥꾼 2018.05.30 23:52  
마오찡 문화나 역사도 더 파괴시켜주고 가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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