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서양 미의 기준 통일한 이유...jpg
외모는 인간에 있어서 가장 먼저 접하는것중 하나이니만큼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수 없음. 그리고 현대 미의 기준을 표준화하고 정립하는데 최대의 공로자는 바로 미국이고.
그렇다면 왜 하필 미국일까? 하는 지점임. 서구적 미적 기준이라 하더라도 그 이전의 대영제국부터해서 쟁쟁한 유럽 열강들이 매우 많았으니까.
물론 미국이라고 해서 어떤 기반없이 이런 미적 기준을 만들어낸것도 아니고 유럽에서 이어져오던 여러 기준과 미학을 계승했음.
그러나 미국이 유독 차별되는점은 서구 그리고 전세계 전반에 단일하고 표준적이면서 이론을 벗어나 실제 현실 사람으로서 외모 기준점을 만들어냈다는것.
금방 말했듯 미국이라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건 아니고 그 원류를 따라가보자면 고대 로마 그리스 시절 조각들이긴 함. 하지만 현재 어떻게 생긴게 이상적인 미인 / 미남상이라는 구체적 기준은 사실상 미국의 업적이라봐도 무방한데 이유는 밑과 같음.
1. 단일 언어 초거대 시장
위에서 금방 말했듯 미국의 이상적인 외모 템플릿은 제로에서 시작한게 아니고 고대부터 점차 발전해 내려오던거임. 그러나 미국 이전에는 대략 ' 이 정도면 매력적인 외모다 / 아니다 ' 라는 기준에 가까웠음.
어떤 특정한 얼굴의 형질이나 외모가 말 그대로 추구해야할 최고로 우상화되지는 않았고 남유럽 / 북유럽 / 동유럽 / 서유럽 그리고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에 이르기까지 지역별 그리고 국가별로 추구하는 미형 기준은 차이가 있었고.
유럽 왕족과 귀족등 유럽을 통치하는 지배계층 엘리트 사이에서 17-18세기 이후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상처럼 생긴게 그야말로 미의 정수라고 대체로 합의가 있었고 당대 유럽 문화 패권을 주도하던 프랑스의 예술이나 회화등에 영향을 받긴 했음.
그러나 당연히 인간이 완벽하게 조각처럼 생길수는 없었고 실제 인간 대비 어느정도 과장법도 들어가는게 조각이니만큼 그런 3등분 되는 비율이나 깨끗한 피부등을 매력적으로 요기는건 있을지언정 딱 ' 이 얼굴이 미인 / 미남의 전형 ' 이다는 크게 존재하지 않았고.
그도 그럴게 아무리 프랑스가 유럽에서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입지일지언정 궁정 에티켓, 예술, 패션에서지 특정 비주얼 템플레이트를 만들어내지도 않았거니와 베르사유와 파리 살롱의 엘리트들에게 통용된거지 일반 대중들에게는 아니었음.
게다가 초상화를 통해 시쳇말로 보정 효과도 받았기 때문에 얼굴에 큰 결점이 없으면 매력적으로 묘사되었고 여기에 원판이 평균 이상이라면 매우 아름답게 그려지기도 함.
그리고 이런 파편적이고 다원화된 미적 기준은 19세기 와서 영국을 필두로 서구가 세계의 지배자로 등극하고 파리, 런던, 베를린 그리고 빈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예술 흐름을 따라갈때도 여전히 존재했음.
예컨대 프랑스에서 보다 아름답게 여겨지는 얼굴이 독일, 영국, 네덜란드등에서 못생기지는 않다고 평가받을지언정 각국의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와 분위기에 따라 최상의 미인은 아닐수도 있었다는것.
그러나 1920-1930년대 이후 서유럽과 북미 심지어 오세아니아에 이르기까지 소위 백인문명들이라는곳에 점차 단일한 미남상과 미인상이 나타나기 시작.
이는 지난 수백년간 정치, 경제, 군사, 문화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압도적 지배자로 군림해옴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비롯된것이었고 이 중 큰 요인은 단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초거대 시장.
사실 영화산업등의 선구적인면만 보자면 프랑스가 오히려 미국보다 앞서나갔음. 프랑스의 파테 ( Pathé ) 나 고몽 ( Gaumont ) 과 같은 영화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 배급사들로 할리우드보다 빨랐음.
하지만 시장의 규모에서 프랑스는 미국에 현저히 밀렸다는 난점이 존재. 미국은 1870년대 이미 gdp로 영국본토를 넘기고 1910년대에 이르면 미국 gdp는 영국 + 식민지 즉 대영제국 전체를 추월하게 됨.
이는 이미 세계 최대의 제조업 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폭발적인 생산력에 기인한것으로 유럽내에서조차 영국이나 독일 대비 공업력과 경제규모에서 딸리던 프랑스가 상대할수 있는게 아니었음.
그리고 이는 당연히도 도시화의 급격한 진전 및 엄청난 부를 창출해냈음. 바로 서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미국에서.
즉 미국은 영어란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면서 가처분 소득이 세계 최상위권의 초대규모 문화 소비자를 보유하게 되었고 유럽에서 출산율이 낮아 19세기 서구 열강중 인구증가율이 가장 더디면서 공업이나 경제 발전도도 상대적으로 낮던 프랑스를 압도할수 있는 기반 마련.
이런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을 보유한 미국은 또 다른 하나의 장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육로 동에서 서까지 다 연결되어있는 거대한 대륙국가라는것.
혹자는 세계 최대의 영토와 최다의 인구를 지닌 영국은 왜 그렇게 하지 못했냐 묻지만 근본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는 바다로 분리되어 있다는게 치명적.
실제로 캐나다만해도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여전히 대영제국의 자치령이던 시점에도 급격히 미국 시장과 문화권에 빨려들어가는데 이는 영국의 자치령이라해도 물적-인적 교류와 영향력은 바로 땅으로 이어져 있는 미국에게 더 받을수 밖애 없기 때문.
캐나다와 같은 그래도 영국 본토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이 장악한 자치령마저 이런판에 아예 인종과 민족 단위로 전혀 달랐음.
그 결과 인구 대다수가 영어조차 못하며 가난해 구매력마저 낮았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들은 미국과 같이 거대 단일 문화 시장으로 거듭나는게 거의 불가능했고. 문화시장 파워에서 단순 인구규모만이 아닌 응집력도 그만큼 중요하거든.
그런데 대영제국은 영국 본토와 자치령, 직접 통치 ( direct rule ) 식민지와 보호령까지 각기 다른 문화 규제안을 지니고 있었고 영화 수입 규모나 상영작 상한도 달랐던데다 워낙에 멀리 떨어지다보니 영화 상영일도 다르고 소비자의 구매력도 달랐지.
그에 비해 미국은 단일한 연방정부 밑에서 단일한 규제와 어느정도 관객의 균질한 구매력에 상영일도 같은 시점에 하는등 훨씬 더 방해물이 적었고 그런만큼 수익성도 극대화될수 있었음.
또 다른 열강이자 유럽 제일 공업대국이던 독일은 통일도 뒤늦게 한데다 철학이나 음악등 일부에서 강세였다 해도 서구와 세계 문화를 리딩하는 입장은 아니었으며 과학 및 대학에서 세계적이었던정도에 그쳤음. 미국 대비해서는 경제 규모도 딸렸고.
하여간 그렇게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훨씬 대규모 자본을 벌어들였고 이것을 또 재투자. 그 결과 미국 영화사들은 압도적으로 비싸고 질이 뛰어난 영화를 일년에 수백개씩 찍어냈음. 유럽에선 그것보다 단가를 낮게 해도 고작 수십개면 많았는데.
그렇게 영국이나 프랑스등 유럽 영화사들은 해외에서도 대박나야 겨우 적자를 면할 수준이었다면 미국 영화 스튜디오들은 그럴 필요조차 없었음.
미국은 가처분소득이 높으면서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억단위 인구에서 나오는 세계 최대 시장을 보유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은 영화의 질적 향상에 엄청난 기여를 했고. 더 나은 조명, 더 우월한 영화 촬영법, 더 고가의 배우 영입, 더 풍부한 음향에 더 많은 광고까지 자본격차는 문화 전반을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만드는데 성공.
2. 문화의 산업화
19세기까지 문화는 주로 엘리트들과 좀 넓혀도 도시 중상층들이 향유하던것이었음. 르네상스기 우리가 보는 많은 미술이나 조각들은 왕, 귀족, 교회등의 후원자 ( patron ) 이 있어야지만 성립했고.
즉 수익성을 위한 대규모 산업이라기보다 위신이나 영예등의 목적이 더 컸음. 다시 말해 표준화된 이론이나 나 회화 예술 학습 훈련과 후원자 네트워크는 존재했으나 반복되는 빈도의 대량 생산도 없었고 인구 다수는 체험하지 못했서 서구 전역에서 미적 기준 동조화는 크게 없었음.
루이 14세 프랑스는 유럽 미적 취향을 보다 중앙화 시키고 하는데 있어 일조는 어느정도 했으나 궁정에서의 왕족 및 귀족에 국한되었을뿐 아니라 위에서 얘기했듯 외모보다는 패션과 에티켓이 중점.
다시말해 초상화드 문화에 영향을 끼쳐도 대중에 대한 반복적인 이미지 노출과 각인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소리.
그럼에도 대영제국의 경우 Illustrated London News, The Graphic, Punch Magazine, 까지 전세계적 언론 배포라는점에서 17세기 프랑스보다는 문화 수출에 유리한 고지도 존재했음.
하지만 한계 또한 분명했다는것. 근본적으로 이런 매거진들은 시사, 정치, 외교, 패션이었지 외모가 아니었거든. 게다가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같이 수직계열화된 외모 필터링 시스템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지리적 분리에 따른 대영제국내 지역별 구매력과 문해율 격차는 기대투자수익이 낮아짐을 의미해 문화를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탈바꿈 시키진 못했음.
그러나 미국은 철강, 조선, 화학, 섬유를 대량생산해내는거처럼 영화의 서사, 배우, 이미지, 엔터테이먼트를 말 그대로 찍어내기 시작했음. 바로 중앙화된 스튜디오 시스템을 통해서.
할리우드 배급사들은 생산 + 배급 + 상영까지 모두 통제하며 마치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문화에 적용된거마냥 행동했음. 이에 소위 스타 시스템을 도입해 스타 브랜딩과 막대한 자본으로 매거진에서 신문에 이르기까지 광고 폭격.
영국이나 프랑스나 그외 유럽 열강은 한번도 이렇게 거대하고 체계적으로 산업화된 이미지 생산을 하지 못했고. 그나마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프랑스의 파테나 고몽이 그나마 근접.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프랑스의 인구 3900만-4000만의 체급적 한계와 그에 따른 상대적으로 약했던 공업과 자본 규모에 할리우드와 같이 수직계열화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한계가 여실했고.
그에 비해 미국의 공업력은 서유럽 열강들의 합보다 더 커져가고 있었고 거기서 나오는 막대한 중산층의 구매력은 할리우드로 쏟아져 들어갔지.
그 자본의 결과물이 방금 말한 스튜디오 계약, 스타 창조, 대중 캠페인, 미적 기준에 대한 반복 노출이며 반복은 곧 기준이 되어갔음.
그도 그럴게 미국은 말 그대로 배급사들이 주단위로 영화를 찍어내다시피해서 연간 수백개 영화를 제작하며 미국 영화는 1930년대에 이르면 세계 영화시장의 7-80% 점유율을 차지하게 되거든.
이는 문화와 막대한 자본이 결합되어 수직계열화될시 얼마나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예시로 루돌프 발렌티노, 클라크 게이블, 캐리 그랜트, 타이론 파워등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미남이나 미인상이 곧 서구의 기준으로 자리잡았고.
그리고 이런 문화의 산업화에는 단순 미국 시장의 막대한 규모나 영화를 마치 공장의 상품처럼 찍어내는 획기적인 상업화 기법에만 있던게 아니라 그걸 본격 시행하는 타이밍도 기가 막혔음.
3. 기술융합을 통한 반복노출
위에서 마치 스탠더드 오일과 같은 방식이 영화등 대중문화에 적용되었다고 했는데 소위 중앙화된 대량양산을 가능케 만들던 기술이 나오던 시대였고 이는 미국이 이전까지 문화에서는 시도할 생각조차 못한걸 가능케 해줬음.
19세기까지 서구 문화의 중핵인 프랑스를 포함해 각 서구 열강들은 이런 중앙화된 생산, 대량 배급, 반복적인 마케팅이나 비주얼 템플레이트 노출을 설령 자본이 있다고 해도 그에 필요한 시대적 기술의 한계에 부딪혀 못했거든.
게다가 영화의 경우 기존 서구에서 따로 문화를 향유하던 대중과 엘리트가 함께 계층과 신분 그리고 국경을 초월해 수출이 가능한 엄청난 문화매체였음. 그렇기에 독일의 히틀러부터 영국의 처칠 프랑스의 드골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까지 미국 영화는 다 접할수 있었지.
그리고 이런 대규모 영화 생산 및 상영은 하나 하나 만드는데 오래걸리고 문화 매체 대량 생산 및 전파하기가 힘들었던 초상화와 달리 미국은 사진과 영상매체 기술이 발전하던 시점에 문화 패권을 휘어잡았고.
여기에 위에서 말했듯 도시화 수준과 교통 기술에 따른 도농격차 그리고 그에 기인한 한정적이고 거주지역내로 국한되는 문화 전파와 상호비교 때문에 파리에서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외모가 타국은 물론이요 자국의 리옹이나 브르타뉴에서도 동일하게 평가받을 보장은 없었음.
이걸 위해선 일상적으로 반복적인 시각적 노출이 존제햐아하나 애초에 그렇게 할 기술 기반이 존재치 않았거든. 그러나 미국은 앞서 말한 대량생산 체제를 문화계에 접목시켜 산업으로 만들고 주단위 전세계 영화배급과 광고기술의 발전과 함께 매거진에도 침투.
미국은 막대한 자본을 통한 문화의 산업화와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나온 기술을 적극 적용하며 매우 높은 빈도의 지속적 외모상을 서구 전반에 각인시키는데 큰 성공.
이는 미국이 단순 미학과 후원자들의 요깃거리에 머물렀던 아름다움이란것를 서사 + 생산 + 배급 통제를 통한 외모상 노출 통제에 이른 서구 역사상 최초의 국가였기에 가능했던 일.
1900년대 이전 초상화 몇개, 사진 몇장, 지역 엘리트의 담화에서 가끔 논해지던 아름다움의 기준은 1920년대 이후 미국 영화에서 보고 포스터에서도 다시 마주치며 매거진과 광고에 이르기까지 몇년 아니 몇십년에 걸쳐 보는 ' 그 얼굴 ' 이 되버림.
이는 미국이 산업화된 외모 필터링을 국적을 초월해 매일 보는게 가능케 하는 여러 분야에서의 기술 발전이 합쳐진 기술의 정수였고.
영화 기술이 무르익었고, 라디오가 일반 중산층들에게도 보급되었으며, 광고가 대량 생산되며 사진 기술도 보다 향상되었음. 이런 기술적 변곡점에 미국의 압도적 체급이 합쳐지니 그야말로 막을수 없게된것.
이런 기술을 통해 위에서 말한 수천명의 지원자를 엄격히 걸러내는 스튜디오 캐스팅, 라이팅을 통한 비대칭 얼굴 필터링, 클로즈 업 사진을 통한 외모 강조 그리고 이게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주 심지어 일단위로 지속적으로 서구 문화매체에 등장.
적당한 크기의 이어지는 코, 어느정도 각진 턱, 전방으로 나온 앞턱, 균형적인 중안부, 깊게 들어갔으나 푹꺼지지는 않은 눈, 조명하에서도 깨끗한 피부까지 이런것은 사진, 럭셔리 마케팅에 이르는 기술의 발전 없이 모두 일일히 강조해서 만들어낼수 있는 기준이 아니었음.
그리고 이토록 세세하고 정교한 기준은 서구 전반에서 인지되고 반복되며 추구되는 국적과 계급을 초월한 미의 기준으로 자리잡았고 미국, 서유럽, 중남미, 심지어 아시아에까지 퍼지기 시작.
그 시대 다른 열강들도 기술 자체야 있었음. 그러나 프랑스는 문화를 가졌으나 체급이 모자랐지. 영국은 제국을 보유했으나 산업화된 매스 미디어가 없었으며, 독일은 공업대국이었으나 문화수출과는 거리가 멀었던데다 오스트리아는 독창적이었던 반면 공업력이 부족.
게다가 위에서 몇차례 얘기했듯 미국은 육로로 연결된 대륙에 단일 언어를 쓰고 최상위권 문해율과 구매력을 갖춘 인구를 서구권 최대 규모로 단단한 덩어리를 형성했고 이는 세계 여러곳에 느슨하게 분산이되어있으며 균일성이 떨어지던 영국이나 프랑스등 식민제국 대비 압도적 장점.
다시말해 식민제국은 단순히 넓은 면적은 제공했을지언정 반대로 통합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낮췄거든. 즉 식민제국은 광대했을지언정 미국만큼의 응집성은 없었음. 그런데 미국은 본토 하나만으로 대륙급이라 거의 프랑스 식민제국 규모에 맞먹었고.
즉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이란 체급과 그로부터 나오는 막대한 자본의 투하를 통한 문화의 산업화 그리고 타이밍 좋게 발전하던 영상, 생산, 통신기술 발전까지 겹치며 그리스때 정립되고 프랑스때 중앙화된 미학을 현실 템플레이트로 제조해 서구 그리고 세계 미의 기준을 정립하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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