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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정부가 위안부를 모집할때는 초기에는 지원자 위주였고, 대상은 일본인 게이샤와 조선인 권번소속 기생들이 대상이였습니다. 일부 천민출신 지원자들도 포함되었죠...


문제는 조선에서는 과거부터 기생은 천한것들이나 한다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 조선시대 기생은 모두 관기이며 천민 - 아주 가난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지원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일본군에서는 계속 위안부를 모집해서 보내줄 것을 일본정부에 요청합니다.


일본정부는 일본 국내에서 촌락 단위로 지원자를 할당해서 모집했고 - 말로는 자원이지만 사실은 할당제라서 어쩔수 없이 지원하게 됨 - 그래서 현재도 일본인 위안부 여성이 존재합니다.


여기까지는 모두 자원이였다고 볼수 있지만, 중일전쟁의 전선이 확대되고 이후 동남아 지역까지 전선이 확대되면서 필요로 하는 위안부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강제로 동원을 하게 됩니다.


<여공>이라는 명목으로 일반인 여성들을 군수공장에 일하면 높은 봉급을 지불하고 가족들의 생활을 지원해준다고 모집한후에 모두 전선 위안소로 잡아갔고, 여공으로 떠난 여성들이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자 조선인들이 슬슬 모집을 피하려고하자 총동원령을 내리고 <정신대>를 만들어서 강제로 마구 잡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애들이 주장하는 고소득, 직업매춘 여성인 위안부와 한국인들이 주장하는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들이 같이 존재하는 겁니다.


물론 초기에 존재하는 고소득, 직업매춘 위안부는 소수였고, 동원된 대다수, 학살된 대다수도 모두 중기, 후기의 위안부 피해자들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문서기록으로는


1) 미국 의회조사국(CRS)보고서에 미군이 미얀마에서 발견한 20 여명의 한국인 출신 위안부의 증언과 호레이스 언더우드 박사가 미국 정부에 보고한 일본군의 한국인 위안부 강제동원 기록, 네델란드 정부문서기록보관소에 보관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자료


2) 일본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요구에 따라 공개된 도쿄 국립공문서관 소유의 <BC급 바타비아(현재의 자카르타) 재판 제 106호 사건>이라는 제목의 문서로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강제 연행해서 위안부로 삼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3) 중국 국가당안국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위안부 - 일본군 성노예 당안선>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문서와 영상이 있습니다. 공개된 자료에는 중국 중앙당안관,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상하이시, 난징시 등 전국 각지에서 확보한 위안부 관련 자료 및 일본군 전범들의 자백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여기에는 소수의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다수의 일본군을 상대로 구타와 폭행에 시달렸으며 심지어 성병과 빚까지 얻어 시름하는 당시의 처참한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조선여성 30여명이 4000명을 상대해야 했다는 내용) 여기에는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과 중국 여성들이 20만 이상이며,그중 대다수가 조선인이였다고합니다.


4) 중국이 공개한 제 890호, 제 1064호 문서는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입니다.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천여명 가운데 일부' 라고 밝히면서 무단장 쑤이양 한충허 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습니다. 끌고 온 방법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데요...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 며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우기 이 문서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 오락시간 ' 까지 적고 있습니다.


5) 최근에 공개된 태국 군부 기밀문서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관련 비밀문서>가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위안부들이 있었던 곳은 콰이강의 다리 영화배경이 되었던 장소로, 현지의 노인들이  "밤마다 여자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태국 아유타야 포로 수용서 한인 위안부 명부 숫자는 천 5백명이며, 태국어와 영어로 작성된 2개의 명부에는 463명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명부에는 위안부가 아닌 간호 조무사로 기록되어 있지만, 종전 무렵 일본 해군 사령부가 위안부를 간호 조무사로 변경 등록하라는 비밀지령이 발견되어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명단을 간호조무사로 바꾸고 해군사령부가 보낸 전보는 즉각 소각하라는 명령이 있어서 바로 소각되었지만... 영국군이 도청해서 해독합니다)


위안부들이 탈출을 자주 시도하여 <도망>이라는 메모가 명부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이 명단에는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가 낳은 아이들의 명단도 발견됩니다.
7 Comments
풍성충 2017.11.03 20:07  
멋진 꼬마다 ㅎㅎ
유명해졌으면
조르주바타유 2017.11.04 02:46  
[@풍성충] https://youtu.be/r2KHXcgBEzc

윗 동영상
하지만없죠 2017.11.03 20:15  
이름이 좀...

럭키포인트 4 개이득

... 2017.11.03 20:21  
안타깝지만 일본이 강제적으로 위안부를 데리고 갔다라는 증거는 아직까지 존재하지않아
맨날 그냥 우리나라에서 위안부=강제 라고 아무 증거없이 혹은 아무런 생각없이 외치기를 반복하니 그런거지

저아이 말대로 위안부는 우리와 일본문제만이 아니야
일본의 식민지는 대부분 다  겪었던 문제이지만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런식으로 왜곡된 정보들이 판을 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그 많은 식민지에서 모든위안부 생존자들이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지않아
왜그럴까? 그리고 저아이도 알고있는지 모르겠지만 위안부엔 일본인 여성도 있었는데 그들은 왜 굳게 입을 다물고있는지
왜 한국의 위안부만 한국의 모든 위안부만 일본에게 시위를 하며 사과를 요구하고 보상을 요구하는지 의구심이 들지않는다는건

위안부문제에 대해 객관적인 잣대가 아니라 감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거라고 보면되지
그러니 유엔도 우리나라의 위안부문제에 손을 들어주지않아 마치 유엔의 뒤엔 일본이 존재할꺼라는 이상야릇한 상상이
진짜 어처구니가 없지만 실질적으로 거기에 속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얼척이 없지

마치 우리나라가 위안부문제에 대한 선 인냥 말하고 일본은 악 인냥 말하지만 그외 모든 국가는 위안부문제에대해서
우리나라위안부분들처럼 적극적이지 않아.
심지어 국제사회도 일본을 악 으로 이해하지않는데 왜 그걸 진실로 받아드려 일본에 적대적인 감정을 항상 품을려고 노력하지는 궁금하네

누구 일본인 위안부가 시위를 하는 모습이나 심지어 우리나라 언론에서 조명된적 있나? 내가 모르는사이 조명되거나 해도 그게 과연
진실일까 아니면 우리나라 입맛에 맞게 각색한걸까?
백구 2017.11.03 20:34  
[@...] 일본정부가 위안부를 모집할때는 초기에는 지원자 위주였고, 대상은 일본인 게이샤와 조선인 권번소속 기생들이 대상이였습니다. 일부 천민출신 지원자들도 포함되었죠...


문제는 조선에서는 과거부터 기생은 천한것들이나 한다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 조선시대 기생은 모두 관기이며 천민 - 아주 가난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지원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일본군에서는 계속 위안부를 모집해서 보내줄 것을 일본정부에 요청합니다.


일본정부는 일본 국내에서 촌락 단위로 지원자를 할당해서 모집했고 - 말로는 자원이지만 사실은 할당제라서 어쩔수 없이 지원하게 됨 - 그래서 현재도 일본인 위안부 여성이 존재합니다.


여기까지는 모두 자원이였다고 볼수 있지만, 중일전쟁의 전선이 확대되고 이후 동남아 지역까지 전선이 확대되면서 필요로 하는 위안부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강제로 동원을 하게 됩니다.


<여공>이라는 명목으로 일반인 여성들을 군수공장에 일하면 높은 봉급을 지불하고 가족들의 생활을 지원해준다고 모집한후에 모두 전선 위안소로 잡아갔고, 여공으로 떠난 여성들이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자 조선인들이 슬슬 모집을 피하려고하자 총동원령을 내리고 <정신대>를 만들어서 강제로 마구 잡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애들이 주장하는 고소득, 직업매춘 여성인 위안부와 한국인들이 주장하는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들이 같이 존재하는 겁니다.


물론 초기에 존재하는 고소득, 직업매춘 위안부는 소수였고, 동원된 대다수, 학살된 대다수도 모두 중기, 후기의 위안부 피해자들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문서기록으로는


1) 미국 의회조사국(CRS)보고서에 미군이 미얀마에서 발견한 20 여명의 한국인 출신 위안부의 증언과 호레이스 언더우드 박사가 미국 정부에 보고한 일본군의 한국인 위안부 강제동원 기록, 네델란드 정부문서기록보관소에 보관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자료


2) 일본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요구에 따라 공개된 도쿄 국립공문서관 소유의 <BC급 바타비아(현재의 자카르타) 재판 제 106호 사건>이라는 제목의 문서로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강제 연행해서 위안부로 삼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3) 중국 국가당안국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위안부 - 일본군 성노예 당안선>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문서와 영상이 있습니다. 공개된 자료에는 중국 중앙당안관,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상하이시, 난징시 등 전국 각지에서 확보한 위안부 관련 자료 및 일본군 전범들의 자백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여기에는 소수의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다수의 일본군을 상대로 구타와 폭행에 시달렸으며 심지어 성병과 빚까지 얻어 시름하는 당시의 처참한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조선여성 30여명이 4000명을 상대해야 했다는 내용) 여기에는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과 중국 여성들이 20만 이상이며,그중 대다수가 조선인이였다고합니다.


4) 중국이 공개한 제 890호, 제 1064호 문서는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입니다.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면서 '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천여명 가운데 일부' 라고 밝히면서 무단장 쑤이양 한충허 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밝혔습니다. 끌고 온 방법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데요...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 며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우기 이 문서에는 요리점으로 가장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계급별 상대자와 허용된 ' 오락시간 ' 까지 적고 있습니다.


5) 최근에 공개된 태국 군부 기밀문서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관련 비밀문서>가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위안부들이 있었던 곳은 콰이강의 다리 영화배경이 되었던 장소로, 현지의 노인들이  "밤마다 여자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태국 아유타야 포로 수용서 한인 위안부 명부 숫자는 천 5백명이며, 태국어와 영어로 작성된 2개의 명부에는 463명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명부에는 위안부가 아닌 간호 조무사로 기록되어 있지만, 종전 무렵 일본 해군 사령부가 위안부를 간호 조무사로 변경 등록하라는 비밀지령이 발견되어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명단을 간호조무사로 바꾸고 해군사령부가 보낸 전보는 즉각 소각하라는 명령이 있어서 바로 소각되었지만... 영국군이 도청해서 해독합니다)


위안부들이 탈출을 자주 시도하여 <도망>이라는 메모가 명부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이 명단에는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가 낳은 아이들의 명단도 발견됩니다.
ㄱㄱㄹㄷㅎ 2017.11.03 23:04  
인터넷방송의 순기능이네
네오 2017.11.03 23:48  
이름가운데 빼면 전범 ㅋㄷㅋ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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